베르나데타 [프] Bernadette, Soubirous

Bernadette, Soubirous(1844-1879). 성녀. 프랑스 루르드의 출생. 세례명이 ‘마리 베르나르드’(Marie Bernarde)였으나 베르나데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4세가 되던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타는 루르드 근방의 마사비엘(Massabielle) 동굴 가까이서 흰옷을 입고 로사리오를 손에 든 젊은 여인을 보았다. 이 성모발현(聖母發顯)의 사건을, 그 곳 사제였던 페이라멜(M. Peyramale) 신부는 믿지 않았고 베르나데타는 많은 오해를 받았다. 성모영보 대축일에 있은 16번째 발현 때 그 여인은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된 자’(Immaculate Conception)임을 밝혔다. 이 사건 직전인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Pius) 9세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에 물듦 없이 잉태되었음을 믿을 교리로 반포하였다. 또한 성모는 기적의 샘물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과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가르멜산의 성모 마리아 축일’(7월 16일)에 18번째의 마지막 발현이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1866년 니베르(Nevers)의 노트르담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 1933년 시성되었다. 프랑스에서는 2월 18일이 축일이지만 일반적으로는 4월 16일이 축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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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노스 [원] Bernanos, Georges

Bernanos, Georges(1888-1948) 프랑스의 가톨릭 작가. 작품의 주제는 주로 신(神)과 인간과 악마 사이의 상극(相剋)이며, 특히 인간 악의 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다루면서 인간의 고투(苦鬪)와 고뇌를 극명하게 묘사하여 현대인의 정신적 용모를 부조(浮彫)시키고 있다. ≪시골 사제의 일기≫, ≪악마의 태양 아래서≫ 등의 소설 외에 르 포르(Gertrud von le Fort)의 소설에서 취재한 각본 ≪가르멜회 수녀의 대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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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롤 [원] Verolles, Emmanuel Jean Francois

Verolles, Emmanuel Jean Francois(1805-1878).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원. 초대 만주(滿洲) 교구장. 주교. 중국성(姓)은 방(方). 프랑스 출신으로 1830년 이후 중국 사천(四川)에서 선교하였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가 교황청에 건의한 만주교구 설정이 받아들여져 1838년 조선 교회의 선교를 지원하기 위한 만주지역의 포교권이 포르투갈의 보호권에서 파리 외방전교회로 이임(移任)되고 동시에 만주교구가 북경교구로부터 분할, 창설되자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1849년 만주지역의 박해 때 잠시 본국으로 피신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만주에 머무르면서 만주, 요동, 몽고 등의 선교에 힘쓰는 한편, 조선의 선교를 적극 지원하여 조선 교우들이 보내 온 박해상황과 소식들을 교황청에 보고하였고, 1843년 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Ferreol, 高) 주교의 성성식과 1854년 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의 성성식을 주례하였으며 메스트르(Maistre), 프티니콜라(Petitnicolas), 푸르티에(Pourthie),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신부 등의 입국을 도왔다.

[참고문헌] A. Launay, Memorial de la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Paris 1916 /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社, 上 · 中 · 下, 분도출판사 1979-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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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네제 [원] Veronese, Paolo

Veronese, Paolo(1528-1588).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기 베네치아파 화가. 베로나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서 죽었다. 본명은 Paolo Cagliari. Veronese는 ‘베로나 태생’이란 뜻. 부친은 조각가였다. 1552년 만토바 근처의 대사원에서 화재(畵才)를 인정받았다. 1553년 이래로 베네치아에 거주하며 동시(同市)의 유행작가로 활약하였다. 그의 스승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였고 동료화가로는 틴토레토(Jacopo Robusti Tintoretto)가 있었다. 1560년 로마를 방문, 1566년 베로나 시절의 은사의 딸과 결혼, 두 아들을 얻었다. 그의 동생 베네데토(Benedetto)는 그가 죽은 뒤 거대한 그의 화방(畵房)을 계승, 지휘하였다. 그는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을 비롯한 여러 성당의 벽화장식에 종사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카나의 향연>(루브르 미술관),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유로프의 약탈>,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색채가 화려하고 구상이 웅대했으나, 장인적(匠人的) 작가로 종교적 신비적인 점이 부족하다. 베네치아의 풍속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화가로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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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렌가리우스주의 [한] ∼主義 [영] Berengarianism

프랑스의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 999~1088)가 제창한 학설로 1050년 이후 이단으로 배척당하였다. 투르 지방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고, 그 지방의 마르티노 학교장으로도 재직했던 베렌가리우스는 당시의 결혼제도와 유아세례에 대해 이론(異論)을 제기했고, 특히 실체변화(實體變化, transubstantiation)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1050년 로마 교회회의, 1051년 파리 교회회의에서 잇달아 이단으로 배척당하였다. 1079년에는 로마 교회회의로 불려가 성체에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선언을 하였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그 선언을 철회해 버렸다. 그의 저작으로는 ≪란프랑쿰을 반박하기 위한 성찬론≫(De sacra coena adv. Lanfrancu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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