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두스파 [한] ~派 [영] Waldenses

13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단. 이단의 발단은 리용의 발두스(Petrus Waldus, ?~1217)에 의해 야기되었다. 발두스는 마태오 복음 10장 5절 이하를 읽으면서 청빈(淸貧)이 그리스도교의 이상(理想)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청빈을 실천하기 위해 그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지지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들’(pauperes Christi) 혹은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리용의 주교는 평신도들에게 신앙문제를 언급할 자격이 없음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설교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발두스는 교황에게 호소하였다. 교황 레오 3세는 그를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 출두시켜 그의 청빈생활을 치하하고 신앙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리용의 주교는 발두스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설교를 금지시켰다. 발두스는 다시 교황에게 호소하였다. 이에 교황 루치오 3세는 1184년 그의 설교활동을 완전히 금하였고, 그간 과격했던 운동전체를 비난하였다. 그러자 발두스는 교황에게 반항하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청빈생활을 하는 자만이 그리스도교를 설교할 자격이 있다고 하였다. 마침내 교황청은 그를 파문하였다. 이에 지하로 들어간 발두스는 이단적인 신조를 채택하고 교회를 적대시하였다. 1217년 발두스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승된 그의 사상은 청빈과 더불어 교황권위의 부정, 연옥의 부정, 평신도에 의한 사죄(赦罪)의 인정, 죄에 빠진 사제가 거행한 미사의 성사성(聖事性) 부정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어쨌든 이들 사상은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지로 확산되어 종교개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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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펠라지우스주의 [한] 半~主義 [영] semi-Pelagianism

하느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관계에 관한 몰리나(Molina, 1535~1600)의 학설로 몰리나주의라고도 한다. 스페인의 예수회 소속 신학자인 몰리나는 하느님의 은혜를 충족적(充足的) 은혜와 효과적(效果的) 은혜로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 2개의 구분은 본질적 차이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구분이다. 즉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은혜는 충족적 은혜인데, 이를 받아들인 각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이 은혜가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협력할 때 이 은혜는 효과적 은혜가 되는데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은혜와의 협력을 거부한다면 하느님의 은혜는 계속 충족적 은혜로만 남아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학설이 펠라지우스의 주장과 유사하다 하여 이를 반(半)펠라지우스주의라 이름 붙였다. 이들 비평가들은 반펠라지우스주의가 인간의 자유의사를 높게 평가한 나머지 은혜의 우위성을 부정하고 있다 하여 몰리나주의에 빠져 있던 당시의 예수회원들을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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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종교개혁 [한] 反宗敎改革 [라] Contrareformatio [영] Counter Reformation [관련] 가톨릭개혁

1522년에서 1648년 사이에 일어났던 가톨릭 개혁(Catholic Reform)을 일부에서는 반종교개혁이라 불렀다. 종교개혁에서 제기된 문제를 가톨릭교회 나름대로 극복하고 참된 개혁을 통해 프로테스탄티즘의 사조를 종식시키려 한 운동이었다. 예를 들면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Loyola)는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를 창설하여 참된 가톨릭 생활을 부흥시키려 하였고, 아빌라의 데레사(St. Teresa of Avila)에 의한 가르멜회의 부흥운동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반종교개혁이 계속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던 것은 교황과 트리엔트 공의회의 영향 때문이었다. 밀라노의 가롤로 보로메오(St. Calolus Borromaeus)는 공의회의 모든 결정사항을 실행에 옮겼고, 제네바의 프란치스코 살레지오(St. Francis de Sales)는 참된 가톨릭 교의(doctrine)와 신심을 부흥시키는 데 전력을 쏟았다. 세속군주 중에서도 스페인의 필립 2세와 그의 왕비인 영국인 메리 튜더(Mary Tudor) 같은 이는 이 개혁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영국과 스페인, 폴란드와 스웨덴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거의 2세기에 이르는 기간의 종교전쟁에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반종교개혁의 결과 가톨릭교회는 제도와 조직이 강화되었고, 세속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복음전파사업에 전념하였다. (⇒) 가톨릭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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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후축문 [한] 飯前後祝文 [관련] 식사전후기도

식사전후 기도의 옛 말. ⇒ 식사전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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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아리우스주의 [한] 半~主義 [영] semi-Arianism [관련] 아리우스주의

니체아 공의회(325년) 이후 그리스도와 성부가 같은 실체라는 교리와 아리우스주의 주장과 타협한 일부 신학자들의 견해. 안키라(Ancyra)의 주교 바실리오(Basilius)를 지도자로 하는 반아리우스주의는 ‘homoiousios’란 말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가 성부와 비슷하다고 했지만 정통신학에 완전히 이반(離反)하지는 않았다. 성 아타나시오도 반아리우스주의의 생각에 동정심을 갖고 있었으며, 반아리우스주의의 영향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의 니체아 신경에서도 발견된다. (⇒) 아리우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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