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천 [한] 朴順天

박순천(1898-1983). 정치가. 2 · 4 · 5 · 6 · 7대 국회의원. 세례명 요안나. 부산 동래(東萊)에서 출생. 1917년 부산 일신(日新)여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의신(義信)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부산지역의 연락 · 조직업무를 맡아 활약했고, 일경에게 체포되어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東京)여대 사회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이 때 변희용(卞熙容, 요한, ?~1966, 前 成均館大 總長)과 만나 결혼하고 동경여대를 졸업 한 후 귀국해서는 시가(媤家)인 경남 고령(高靈)에서 야학 · 유치원 · 탁아소 등을 운영하며 사회사업을 벌였다. 그 후 상경하여 금강전구공장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다가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40년 황신덕(黃信德)과 함께 경성의숙(京城義塾)을 설립했고, 광복이 되자 7명의 동료를 모아 전국 부녀자 동맹위원회를 조직하고 활동했으나 자유당(自由黨) 정권이 이를 산하기구로 만들자 탈퇴하였다. 1954년 국회의 사사오입사건(四捨五入事件)을 계기로 정계에 투신, 야당인 민주당(民主黨) 창당위원으로 활동했고, 5.16 군사쿠테타 후 1962년 부군과 함께 영세 입교하고 1966년 통합야당인 민중당(民衆黨) 당수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야당생활을 청산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후, 1976년 육영수(陸英修)여사 추모사업회 이사장, 1980년 국정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아현동본당, 양화진본당 등에서 사목위원으로 교회활동에 헌신하였다. 1983년 1월 9일 뇌일혈로 사망,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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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집 [한] 朴順集

박순집(1983~1911). 세례명 베드로. 1868년 3월 23일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한 부친 박 바오로는 1839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와 모방(Maubant, 羅佰多祿) 신부의 시신을 노고산(老姑山)에 매장하였다가 삼성산(三聖山)에 이장한 뒤, 순교하기 직전 아들 순집에게 그 묘소를 알려 주었으므로 훗날, 즉 1901년 11월 2일 세 성직자의 유해를 찾을 때, 그의 고증으로 유해는 발굴될 수 있었다. 16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철저한 천주교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1866년 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와 4명의 성직자 그리고 다른 치명자의 시체를 목숨을 걸고 새남터에서 와고개[瓦署峴, 현재 용산우체국 뒤]로 이장했을 때의 주동인물이었다고 ≪병인순교복자증언록≫(丙寅殉敎福者證言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문헌인 우포청(右捕廳) 박순지(朴順之)의 초사(招辭)[문초기록]에는 박순집의 이름은 보이지 않아, 그 진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는 말년에 인천으로 이사하여 인천교회 창설에 여생을 바치다가 1911년 6월 10일 82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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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종 [한] 朴成鍾

박성종(1925-1983). 서울교구 신부. 초대 한국 가톨릭 노동청년회(J.O.C) 지도신부. 세례명 프란치스코.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출생. 파리 성 술피스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된 뒤 로마 성 그레고리오 대학에 진학하여 1958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성신대학(聖神大學)[가톨릭大學의 前身] 교수를 거쳐 1958년 11월 J.O.C 창설자 카르딘(Cardijin) 추기경의 내한을 계기로 창설된 한국 J.O.C의 초대신부로 임명되어 1969년 7월까지 지도신부로서 J.O.C의 근본정신 · 이론을 정립하고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는 등 한국 J.O.C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 J.O.C 지도신부로 있으면서 1960년에는 군종신부단장, 1962년 이민회(移民會) 지도신부, 1966년 한국 청소년 문제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겸임했고, 1969년 J.O.C 지도신부직을 물러난 뒤로는 1970년 도림동본당 주임신부, 1974년 후암동본당 주임신부, 1979년 수색 본당신부 등을 역임하였다. 수색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 중이던 1983년 3월 14일 심근경색증으로 사망,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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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한] 朴士儀

박사의(?~1839). 순교자. 세례명 안드레아.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 순교자 박보록(朴保祿)의 아들.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자인 아버지를 본받아 신심생활에 열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이 들어 누우면 그 곁을 떠나는 일이 없이 간호를 하면서 빨리 낫도록 정성으로 기도 드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신앙생활에 전념코자 고향을 떠나 단양(丹陽) 산골 마을로 이사하여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살았다. 그러던 중 1827년에 박해가 다시 심해지자 경상도 상주(尙州) 산골로 피신하였는데 그해 4월 예수승천 대축일에 이웃 신자들과 함께 첨례를 보고 있을 때 배교자의 밀고로 상주포졸들에게 함께 잡히고 말았다. 감옥에서 자신이 받는 고문의 아픔보다도 아버지가 받는 고통을 보고 더욱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국법에 의거, 부자를 떼어 각각 다른 감옥으로 격리 수용하여 심문하려고 하자, 관장에게 같은 장소에 있기를 애원하므로, 그의 효심에 감동한 관장은 이를 허락하고 함께 대구감영으로 이송하였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옥사하였고, 박사의는 여러 해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839년 5월 26일(음 4월 14일)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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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베리오 [한] 朴~

박 사베리오(1872~1966). 한국 최초의 수녀. 세례명은 글라라, 수도명 사베리오. 아명은 황월(黃月). 서울 홍제원에서 박순집(朴順集, 베드로)의 3녀로 출생하였다. 조부 박 바오로는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순교했고, 부친 박순집은 병인박해로 순교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등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의 유해를 거두어 용산에 안장하고, 1901년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모방(Maubant, 羅) 신부, 샤스탕(Chastan, 鄭) 신부 등의 안장지를 삼성산(三聖山)에서 발견해 낸 인물이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신앙에 힘입어 박 사베리오 수녀는 1988년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하자 곧 입회, 1898년 첫 서원을 했고 1916년 종신서원을 하였다.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인천분원에서 지원자를 가르친 기간을 제외하고는 수도생활의 전부를 명동본원에서 보냈는데, 항상 겸손과 청빈과 극기로 후배 수녀들의 존경을 받았고, 또 신교(信敎)의 자유가 보장된 뒤 한국교회와 함께 구한말, 일제시대를 겪은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산 증인으로 추앙을 받았다. 1966년 3월 18일 95세의 노환으로 사망, 용산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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