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 [원] Vacant, Alfred

Vacant, Alfred(1852-1901). 신학자. 모르퐁텐(Morfontaine)에서 출생하여 낭시(Nancy)에서 별세. 메츠(Metz)에 있는 소신학교 및 대신학교에서 고전과 철학을, 파리의 생 쉴피스(SaintSulpice)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876년 6월 10일 사제가 되고 1879년 신학교수 자격을 얻은 뒤 낭시에 있는 신학교에서 호교론과 교의신학을 가르쳤다. 철학에 관하여 많은 논문을 썼고 조제(Jaugey)의 ≪Dictionnaire apologetitique≫에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Etudes theologiques sur les constitutions du Concile du Vatican d’apres les Actes du Concile≫(2권, 1895)이다. 신학 연구에 있어서 역사적인 방법을 개발시킨 학자 중의 하나이며, ≪Dictionnaire de Theologie Catholigue≫의 창간자이자 펀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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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공의회 [한] ∼公議會 [라] Concilium Basileense [영] Council of Basel [관련] 공의회 공의회수위설

바젤 공의회(1431-1442). 제17차 공의회. 교황 마르티노(Martinus) 5세(재위 : 1417-1431)에 의하여 바젤에서 소집되었고. 그의 후임 교황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재위 : 1431-1447)에 의해 추인(追認)되었다. 원래 바젤 공의회는 교회 내의 개혁을 위해 소집되었으나 교황권과 공의회 수위설을 주장하는 공의회 측의 대립으로 파쟁(派爭)에 휘말렸다. 2년간의 분쟁에서 승리한 공의회 측은 공의회 수위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여러 가지 칙령을 반포하여 교황권을 축소시켰다. 특히 교황청에 납부하던 여러 가지 세금의 납부정지는 교황청 재정을 크게 압박하였다. 1437년 교황청과 공의회 측은 동방교회와 합동 공의회를 어디서 개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대이교를 수습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던 공의회 수위설이 바젤 공의회에서는 오히려 이교의 원인이 되었다. 즉 공의회를 페라라로 이전하려는 교황의 결정에 불복한 공의회 측은 1439년 대립교황 펠릭스(Felix) 5세를 추대하였다. 물론 이번 이교에는 아비뇽 교황시대(1309-1377년) 이후 잔존해 있던 프랑스와 독일의 입김이 공의회 수위설 주장자들에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437넌 페라라로 이전된 공의회는 1439년 피렌체, 1442넌 로마로 각각 이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바젤 공의회 16회기 이후 결정된 사항들은 보편교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교황이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의회의 결정사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공의회, 공의회수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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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덴 [원] Weyden, Rogier van der

Weyden, Rogier van der(1399?-1464). 플랑드르의 종교화가. 프랑스명은 Roger de La Pasture. 북부 르네상스 화가로는 아이크 형제(Hubert van Eyck와 Jan van Eyck)말고는 가장 영향을 많이 준 화가였다. 1426년 브뤼셀의 여인과 결혼한 뒤부터 투르네이(현재 벨기에에 있음)에 있는 캄핀(Robert Campin)의 공방(工房)에 들어갔다. 그 뒤 독립해서 브뤼셀에 정착, 명성이 높아지면서 메디치가를 위시하여 많은 부르간디 궁정으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게 되었으며, 그의 미술은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의 제자로는 멤링(Hans Memling)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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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리노 [라] Paulinus, a Nola

Paulinus, a Nola(353-431). 성인. 축일 6월 22일. 정식 이름은 Pontius Meropius Anicius Paulinus. 프랑스 보르도에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이탈리아 놀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보르도에서 오소니오(Decimus Magnus Ausonius)에게 학문을 배운 후, 379년경 캄파냐(Campania)의 행정장관이 되었다. 그 후 스페인의 재산가의 딸과 결혼했었다. 389년 보르도에서 영세한 후 바르셀로나(Barcelona) 부근에 정착, 빈민구제에 힘썼다. 395년 사제로 서품, 409년 놀라의 주교가 되어 많은 성당을 세우고, 최초로 성당에서 종(鍾)을 사용케 하였다. 만족(蠻族)이 캄파냐에 침입했을 때 놀라시(市)를 구제하였다.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등과 친교가 있었다. 교부시대의 라틴 시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시 · 서간이 많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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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로특전 [한] ∼特典 [라] Privilegium Paulinum(fidei) [영] Pauline Privilege

비(非)세례자 부부간에 성립된 혼인에서 부부중 한 쪽이 세례를 받은 후, 상대방이 평화로운 동거생활을 거부할 경우 세례자는 혼인의 해소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그 근거는 1고린 7:12-15인데, 4세기 이래 대다수 가톨릭 주석가들은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였다. 이 특전의 성립요건은 네 가지로 구분된다. ① 비세례자 부부 쌍방의 혼인이 유효해야 한다. 유효하지 않다면 이를 논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유효성에 관한 의문은 조사하여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 ② 부부의 일방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 특전을 행사하기 이전에 세례를 받아야 하므로 예비신자 부부에게 적용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또 부부 쌍방의 세례가 의심스러울 때 신앙교리성성에 의뢰하여 해결할 수 있다. ② 비신자 측의 물리적 혹은 도덕적인 떠남(departure)이 있어야 한다. 비신자 측이 신자인 배우자와 동거 생활을 거부하거나 질병. 재혼 등으로 동거가 불가능할 때는 물리적인 떠남의 경우이며, 비신자 측이 동거를 동의하나 평화롭게 혹은 창조주를 거스림이 없이 동거를 하려는 의도가 아닐 때는 도덕적인 떠남의 경우이다. ④ 떠남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비신자 측에게 질문을 하여야 한다. 그가 세 례받기를 원하는지, 그가 적어도 이미 세례받은 배우자와 동거를 원하고 평화롭게 창조주를 거스림이 없이 살고자 하는 지를 명백하게 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부정적이면 이 특전의 성립이 가능하나 적어도 하나가 긍정적이면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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