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인 [한] 文榮仁

문영인(?∼1801).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년) 때의 동정 순교자. 세례명은 비비안나. 중인 출신으로 6세 때에 궁중에 들어가 15세에 궁녀가 되었다. 총명함과 빼어난 미모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졸도하여 중병을 앓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본집에 돌아온 문영인은 여회장인 강완숙(姜完淑)과 독실한 교우였던 어머니의 감화로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자 그 다음 날 신기하게도 병이 완쾌되었다. 문영인에게 미련을 가진 궁중에서는 의사를 보내어 문영인을 치료코자 했으나 궁중에서 보낸 사람이 집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다 나았던 병이 다시 도져 반신불수상태에 빠짐으로써, 하는 수 없이 궁중에서 제적되는 몸이 됐다. 이렇게 해서 자유의 몸이 되자 문영인은 더욱 신앙을 굳게 지켜 주 신부를 도와서 교우간의 연락을 취하고, 박해 때에는 교우들을 숨기는 등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한편 전교에도 힘써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던 중 포졸들의 가택수색으로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어 강완숙 등 4명과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옥중에서도 밤낮으로 심령의 수업에 힘쓰면서 모진 형벌과 감언이설을 이겨내 끝내 배교치 않으므로 1801년 5월 22일(음) 형장으로 끌려나가 순교하였다. 형장에서 모여드는 구경꾼을 쫓으려는 군졸에게 문영인은 “가만 놔두시오, 짐승을 죽일 때도 구경하거늘, 하물며 사람 죽이는 걸 왜 못 보게 하느뇨?”라 말하면서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목을 내미니, 잘린 목에서 젖같은 횐 피가 흘러 형리들이 대경실색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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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본당 [한] 文山本堂

마산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소재지는 경남 진양군 문산면 소문리. 1867년경 함안(咸安)에 살던 신자 구한선(다태오)이 문산으로 이사하여 처음으로 전교, 소문리에 공소가 설립, 처음에는 대구(大邱)의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후에는 영도(影島)에 주재하던 조조(Moyse Jozeau, 趙) 신부가 전교하였고, 1901년 마산(馬山) 본당이 설립되고부터는 타케(J. Taquet, 嚴) 신부, 무세(G. Mousset, 文) 신부가 전교하여 신자가 많이 늘게 되었다.

1905년 문산 본당으로 승격, 초대 주임으로 줄리아(Julien, 權) 신부가 부임, 1907년 소문리에 대지 2,400평과 기와집 10여 동을 매입하여 본당의 기틀을 굳히고 1909년 부산 초량(草梁) 본당으로 전임, 2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김신부는 하동(河東), 순천(順天), 남해(南海), 사천(泗川), 고성(固城) 등지를 돌아다니며 공소를 설립, 교세를 크게 신장시킨 후 1916년 황해도 감목대리직을 받고 황해도 장연(長淵) 본당으로 전임하였다. 김명제 신부는 재임 중 성당을 신축하고 지방 계몽사업으로 배명 학교(培命學校)를 설립하는 업적도 남겼다. 3대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1929년까지 14년간 재임하면서 전남 순천 본당, 경남 거제(巨濟) 본당, 진주(晋州) 본당, 통영(統營) 본당 등을 분리 독립시켰다.

5대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는 1931년부터 1944넌까지 재직하면서 특히 현대식의 현 성당 · 사제관 · 성모당 · 수녀원을 건축하였다. 현재 주임사제는 23대 허성학(許盛鶴, 아브라함 1982~ ) 신부, 신자수는 1,132명(1983년말 현재), 공소는 3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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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한] 問答 [관련] 교리서

교리서(敎理書)를 가리키던 옛 말. ≪성교요리 문답≫(1864), ≪성교백문답≫(l884년), ≪고신경 문답≫, ≪천주교요리 문답≫(1934년) 등 한국 천주교회 대부분의 교리서들이 제목 그대로인 질문과 대답의 문답형식으로 주요 교리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옛 교우들은 문답이란 말을 교리서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67년 ≪가톨릭교리서≫의 간행이후 문답이란 말은 교리서라는 말로 대치되어 현재 문답이란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 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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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 [한] 聞敎

옛 교회용어. ≪한불자전≫(韓佛字典)에 따르면 ① 천주교의 수용, ②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음, ③ 천주 교회로의 입교의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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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본당 [한] 墨湖本堂

소재지는 강원도 동해시 동호동 232. 1940년 강릉(江陵) 본당 소속 묵호공소가 설정되었고 1948년 묵호 본당으로 분리, 독립 초대주임으로 한(韓) 프란치스코 신부가 부임하였다. 2대 주임 나 바드리치오 신부는 1949년 3월에 부임, 1950년 6.25 동란이 발발하자 공산당에게 끌려가 그 해 8월29일에 피살 순교하였다. 휴전 성립 후 1954년 이번에는 삼척(三陟) 본당 소속 목호공소로 지정 1957년 본당으로 복귀하면서 3대 한(韓)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58년 현 위치에 본당건물이 준공되었다. 11대 현 주임 박영근(요한) 신부는 1981년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회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본당주보는 바다의 별, 신자수는 1,484명(1984년 현재), 공소는 1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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