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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헤로데의 명령으로 살해된 남자 어린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축일(마태 2:16-18). 축일의 기원은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12월 28일에 지내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예수를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교회의 최초의 순교자로 생각되어, 이날 미사에는 붉은 제의가 착용되고 대영광송이 외어진다. 특히 베들레헴(Bethlehem)에서는 성대히 기념된다.
교황청내의 사무국의 하나로 무종교자, 특히 여러 형태의 무신론자들과의 접촉과 연락을 담당하며 1965년 창설되었다. (⇒) 교황청사무국
극단적으로 정치권력과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는 사상과 그 운동. 무정부주의는 국가와 법, 감옥, 재산, 그리고 사제(司祭)도 없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는데, 요즈음은 혼란과 무질서 등을 상징하는 의미의 말로도 쓰인다. 무정부주의는 하나의 사회철학이며 정치이념으로,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힘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정부주의는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제논(Zenon)으로부터 자유주의자인 훔볼트(W. von Humboldt)나 밀(J.S. Mill)등의 사상에서도 발견된다.
무정부주의는 대개 다섯 가지의 특징으로 규정해 볼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선(善)의 능력을 가진 착한 존재인데, 관습 · 제도 · 권력 따위가 타락하게 만든다. ②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할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따라서 이러한 사회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국가는 그에 반대되는 것이다. ③ 사회의 여러 제도 가운데 사유재산과 국가는 인위적인 것 중에서 으뜸이며 사람을 서로 타락시키고 착취하도록 만들었다. 모든 권위적인 요소들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다. ④ 모든 사회변화는 자생적이고 직접적이며 대중적인 기반을 둔 것이라야 하며, 이와 반대되는 모든 조직화된 운동은 권위의 조직에 의한 산물에 불과하다. ⑤ 산업문명은 생산수단의 소유형태가 어떻든지 간에 인간의 정신을 파괴한다. 기계는 인간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든 산업문명 위에 서는 것은 인간의 내적인 힘을 누르는 것이다. 이런 사상적 요소를 가지는 무정부주의는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대표되는데, 내용이 각기 다르기는 하나, 개인의 자유와 경제생활의 유대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매한가지이다.
고드윈(W. Godwin)은 권력과 불평등에 반대하여 자율적인 협동을 강조하였고, 재산을 도둑으로 규정한 프루동(P.J. Proudhon), 마르크스(K. Marx)에 맹렬하게 반대한 바쿠닌(M.A. Bakunin), 다윈의 적자생존 원칙에 반기를 든 코로포트킨(P.A. Kropotkin), 개인의 개성을 철저하게 주장한 슈티르너(M. Stirner), 상디칼리즘을 내건 소렐(A. Sorel)등은 모두 이 계통의 거장들이다. 모든 폭력에 반대하여 무저항주의를 내건 톨스토이(L.N. Tolstoi)는 또한 종교적인 무정부주의를 주장, 교회법적 조직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하여 주로 사랑에만 의존하는 무교회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무정부주의는 가톨릭에서 늘 배척을 받는 사상이며, 1864년 비오 9세 교황의 실라부스(謬說表)에 의해서도 지적되었다.
폭력을 절대악이라 하여 세상의 악과 불의와 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도 폭력의 사용을 부정하는 사상과 실천을 가리키는 말. 영어의 nonviolent resistance를 무저항주의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 비록 폭력은 사용하지 않지만, 악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는 투항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악을 종국에는 퇴치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폭력의 사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폭력주의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비폭력주의를 내세운 사람들이나 집단들은 많지만 실제로 악의 세계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하여 실천한 사람으로는 간디, 마르틴 루터 킹, 돔 헬더 카마라 등이 대표적이다. 간디는 자신의 비폭력주의가 예수의 가르침과 이 가르침을 실천하려 했던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에게서 사상적인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 26:2), “바른 뺨을 치면 왼편 뺨을 돌려대라”(마태 5:39),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4), “악한나무에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 7:18),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루가 6:27) 등에 사상적인 원천을 두고 있다. 간디는 악의 세력들은 언제나 사실을 왜곡시키면서 자기들에게만 유익한 신화를 만들어 민중을 기만하고 착취하는데, 이러한 악의 세력들의 허위를 꿰뚫어볼 수 있는 참된 진리를 깨달아 악의 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불의한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방법은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비폭력이라는 것이 수동적이거나 무행동적인 현실순응주의나 현실도피주의여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러한 경향은 오히려 악의 세력들의 불의한 제도에 동참하여 협조해 주는 데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그 근거로서 악한 제도를 통하여 군림하고 있는 악의 세력들이란 민중의 맹목적인 순종 속에서 그들의 존립기반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비폭력적인 항거가 확대되면 될수록 그 제도는 무력해지고 악의 세력들도 힘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도 이 비폭력주의를 도입하여 흑인해방운동을 전개하였고, 라틴아메리카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도 폭력을 퇴치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한다면 폭력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면서 ‘정의 · 평화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비폭력주의에 대해 “여유 있는 자들이 희롱하는 사치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바야흐로 악이 온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려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려는 악한 제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방법의 도덕성만을 논하고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폭력 불가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느냐”는 물음은 잘못된 질문이며 오히려 “그 방법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상시의 도덕률을 비상시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도 역시 지배자의 불의에 공범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차 대전 때 나치학정에서의 본 회퍼나, 알제리 혁명전선에서의 프란츠 파농이나 미국의 흑인 해방신학자인 제임스 콘이나 제3세계의 많은 혁명가들의 반론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비폭력주의의 한계는 명백하게 구획지어진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