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한] 巫堂 [관련] 무속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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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 [한] 無敎會主義

일본의 종교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가 시작하고 그의 문인(門人)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는 신앙과 주장. 의식, 전례, 교회당 등 교회의 제도에 매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은 성서에 의해서만 주어지고,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신봉하는 독특한 그리스도교 운동을 형성한 것이 이 무교회주의이다. 1878년 우찌무라는 삽뽀로(北海道 札幌) 농학교(農學校)에 다닐 때 감리교 선교사 해리스(M.C. Harris)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선교사들의 교파주의적인 경쟁심에 실망하고, 미국 유학을 통하여 복음신앙의 재발견 시기를 거쳐 귀국하였다. 그는 타고난 깊은 애국심과 그리스도교를 연결시키려고 한 것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배척을 받게 되자, ≪그리스도 신도의 위안≫(1893)에서 비로소 “나는 무교회가 되었다”고 해서 ‘무교회’란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1901년 잡지 <무교회>를 창간하여 그 제1호에서 무교회주의 그리스도교는 결코 교회를 부정함을 목표삼은 것이 아니라, ‘교회 없는’ 사람들의 교회라고 선언, 이보다 한 해 앞서 창간한 잡지 <성서의 연구>(聖書之硏究)의 발행을 통하여 성서연구의 그룹적 활동을 계속, 성서강의에 힘써 각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무교회주의의 성립 배경은, 일본적인 주체적 그리스도교의 모색, 교회의 형식과 경화에 대한 도전이요, 따라서 주체성 확립과 개혁 의지가 그 기축을 이루고 있다. 우찌무라는 “나는 직접 그에게로(즉 그리스도에게로) 향한다. 교회, 교황, 감독, 기타 유상 무상의 거간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직접 그에게 향한다. 그리스도교가 역사이기를 그칠 때 – 그리스도교는 역사가 아니다 – 교권을 갖는 교회란 것은 소멸된다”고 결론을 맺었다. 서구 그리스도교에서 독립하고자 한 욕구에서 볼 때, 동양적인 체질의 무교회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접 접함에서 일본적인 그리스도교의 바탕을 보고 있었다.

[참고문헌] 土肥昭未, 內村鑑三, 東京 敎團出版局, 1962 / 內村鑑三 信仰著作全集, 東京 敎文館, 1961-1964 / 萬有百科大事典(Genre Japonia), 小學館,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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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주의 [한] 無關心主義 [영] indifferentism

무차별주의라고도 번역되는 무관심주의란 어느 하나의 특정한 견해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배척하고 모든 견해가 똑같이 진리라는 생각을 견지하는 주의나 주장을 가리킨다.

보통 종교와 관련된 분야에서 많이 나타나는 무관심주의는 다음과 같은 바탕 위에 서 있다. 즉 ① 어떤 종교라도 그것이 신봉자들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한 선(善)이고, 각 종교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똑같이 진리이고, 가치를 지닌다. ② 종교적인 가르침은 이성에 의해 연역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종교의 가르침만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다. ③ 모든 교회와 그 신조(信條)는 동일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 개인이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그 종교가 갖고 있는 신조, 율법, 문화가 다른 종교의 그것에 비해 타당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지 그 종교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무관심주의는 무신론에서 파생되었고 모든 종교를 무용한 것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반종교적(反宗敎的) 무관심주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신만을 인정하여 초자연적인 계시를 부정하는 자연적 무관심주의, 모든 계시종교는 모두 신의 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은 특정한 종교집단만을 구원하고 다른 종교집단은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집단을 동시에 구원한다는 초자연적 무관심주의 등이 파생된다.

한편 무관심주의는 종교적 관용, 반종교주의, 종교적 중립, 실천적 종교무관심주의와 구별되며 신크레티즘(Syncretism, 諸說混合主義)은 무관심주의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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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재 [한] 山尺

초기교회 유적지. 배론 부근의 묘재는 성인 남종삼(南鍾三, 요한)의 아버지 남상교(南尙敎,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이사한 곳. 1866년 남종삼이 체포되어 죄인의 호적을 찾아내어 가족은 물론 첩까지 색출, 엄벌하는 형(刑)인 노륙지전(孥戮之典)에 처해지자 아버지 남상교는 공주로 유배되고, 장남 명희(明熙)는 전주감영에 투옥, 부인 이소사는 노비가 되어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창녕으로 가게 되었다. 현재 묘재에는 남상교의 유택이 있다.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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묄러 [원] Mohler, Johann Adam

Mohler, Johann Adam(1796-1838).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 교회사가. 튀빙겐 대학 강사(1823년), 동 교수(1828년), 뮌헨대학 신약학 및 교회사 교수(1835년), 가톨릭 튀빙겐 학파를 형성한 한 사람. 실라이에르마허(F.E.D. Schleiermacher) 등과 접촉을 가지고, 처음에 교회의 영적·신체적 일치에 중점을 둔 내재적 교회관을 내세워 고대 교부의 정신을 존중하고 교황의 존재를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나, 후에 역사와 전통의 이해를 존중한 비교신조학을 표방하면서, 가톨리시즘에서야말로 합리주의와 초합리주의의 종합이 가능함을 주장하여,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가톨릭의 우월성을 논증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근대주의와 울트라몬타니즘의 양면에서 선구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비교신조학은 프로테스탄티즘과의 대립점을 밝히는 데 급급한 나머지 그 타당성이 결여되는 폐단이 많지만, 후에 양자의 논쟁신학을 발전시키는데 중요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서로 ≪Die Einheit der Kirche≫(1825), ≪Symbolik order Darstellung der dogmatischen Gegensatze der Katholiken und Protestanten≫(183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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