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튼 [원] Merton, Thomas

Merton, Thomas(1915-1968). 트라피스트회 수사. 시인이자 저술가. 뉴질랜드 출신의 예술가와 미국 여성을 양친으로 하여 프랑스의 프라드(Prades)에서 출생. 유럽과 미국에서 문학수업을 하였으며 특히 시에서 최초의 재능을 보였다. 사회적인 강한 관심 속에서 자선과 서도생활에 매력을 느껴 1938년 가톨릭에 입교하였으며 1941년 켄터키주에 있는 트라피스트회 게세마니의 성모 대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948년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을 발표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잇달아 영성적 주제의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명상적 생활의 근본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것을 견고한 학문과 사회적 관심 속에 융해시킨 보기 드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트라피스트회(혹은 베르나르의 시토회)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멜회의 명상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동북 아시아의 영성적 근원과 이념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1968년 수도원생활의 장래에 대한 국제회의에 참석중 영성적인 최성숙기에 전기사고로 사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Asian Journal≫(New York 1972),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Garden City 1968), ≪Faith and Violence≫(South Bend 1968), ≪New Seeds of Contemplation≫(New York 1972), ≪No Man in an Island≫(Garden City 1955), ≪Selected Poems≫(Garden City 196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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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 [한] 盟誓 [라] jus jurandum [영] adjuration, sworn oath

‘맹서’(oath, 盟誓)에서 온 말인 ‘맹세’에는 ① 목표나 약속을 꼭 실현 또는 실천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며, ② 특히 신불(神佛) 앞에 약속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 신 앞에 또는 성인의 이름을 입에 올림으로써 어떤 일을 행하도록 명령 또는 요청받음을 말할 때 이를 ‘adjuration’이라고 하며, 이러한 맹세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신의 이름 또는 성인의 이름을 사용해야 하며, 둘째 그 목적이 합법적인 것이어야 하고, 셋째 신 또는 성인명을 부를만한 중요한 기회라야만 한다. 교회가 그 신자에게, 특히 사제로부터 이따금씩 요구되는 선서(宣誓)를 맹세라고 할 경우인데, 이때는 ‘sworn oath’로 지칭된다. 예를들면 신학교에서 배우는 자에게 ‘근대주의 반대선서’가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의무적으로 요구되어 내려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서약’(誓約)의 뜻으로서의 맹세는 ‘oath’로 사용하는데, 이 경우 진술 그 자체가 죄여서는 안 되고, 밝혀서는 안 될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가톨릭적으로 볼 때, ① 하느님을 과거 또는 현재의 사건(어떤 범죄가 범해지지 않았다는 것)의 증인으로서 호출되었을 때 성실함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는 맹세 즉 ‘선서’는 단언적 선서(斷言的宣誓, assertive oath), ② 장래 행위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행하거나 행치 않거나 하는 의향에 대하여 하느님을 증인으로서 부를 때, 예컨대 자신의 직무상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약속의 증인으로서 하느님을 부를 때의 맹세는 약속선서(約束宣誓, promissory oath)이다.

맹세는 또한 기구(祈求, invocatory)의 선서와 저주(咀呪, imprecatory)의 선서로도 나누어지며, 전자는 하느님을 진실의 증인으로서 부를 때, 후자는 거짓에 대한 보복자로서 부를 때의 맹세이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용법은 “주님이 저를 도와주시도록 비나이다”(so help me God)가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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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가르멜회 [한] ∼會 [라] Discalceati [영] Discalced

16세기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St. Teresa of Avila)와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에 의해 구(舊) 가르멜회에서 개혁되어 나온 수도회. 그 전 2세기 동안 약화되어 온 가르멜 원시회칙을 고수하여 관상과 봉쇄생활을 한다. 맨발에 샌들만을 신기 때문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역사는 데레사 성녀가 원시회칙을 따르는 정주수도원을 총장의 인가를 얻어 두루엘로(Duruelo)에 세웠던 15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발의 회에 대한 호응도는 높았으나 새 개혁 수도원의 설립은 스페인의 카스틸랴(Castilla) 관구로 한정되고 개혁운동은 구 가르멜회 내에서만 이루어지게 한 교회규정 때문에 그 전파는 크게 통제되었다. 1593년 개혁 가르멜회를 자체의 총장과 경영권을 갖는 독립적 수도회로 발족시킨 글레멘스(Clemens) 8세에 의해 맨발의 가르멜회는 비약적 성장을 약속받게 되었다. 1582년부터 스페인의 가르멜회는 아시아 · 아메리카 선교활동에 나선다.

엄격한 봉쇄를 지키며 관상생활을 하는 맨발의 가르멜회는 사도적 활동도 수도회의 관상적 이상에 부합되는 선에서만 허용한다. 또한 데레사 성녀와 요한의 영성신학의 관리자로서, 이에 대한 많은 서적과 정기간행물들을 내고 있다. 1983년 현재 전세계에 약 3,300명의 종신 서원자가 있다. 한국에 진출한 남녀 가르멜회는 모두 ‘맨발의 가르멜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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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폴린 [원] McPolin, Owen [관련] 광주대교구

McPolin, Owen(1889-1963). 아일랜드 출신 골룸바노 회원으로 광주교구 초대 교구장. 한국성은 임(林). 1933년 10월, 성 골룸바노 신부들 10명이 입국할 때 함께 내한하여 1934년 전남 감목대리구가 설치되면서 감목대리로 임명되었고, 목포 · 제주 · 나주 · 광주 · 순천 등 본당의 2,844명의 교우들을 사목하였다. 1937년 전남 감목대리구가 교황청으로부터 광주지목구로 설정되면서 맥폴린 신부는 초대 지목(知牧)에 피임되었다. 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맥폴린 신부는 당시 거주지인 목포에서 광주부(光州府)에 교구시설을 갖추기 위해 광주와 목포를 내왕하면서 전교사업에 전념하였다.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적대국인 아일랜드의 성직자들을 스파이로 몰아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맥폴린 신부를 비롯한 11명의 아일랜드 신부들은 목포 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1942년 4월 맥폴린 신부는 지목교구장직을 사임하여 본국으로 귀국했다가 8월 15일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다시 광주교구장직을 맡아보면서 일제의 독소에 파괴된 교구의 재건에 힘쓰다 1948년 교구장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3년 미국에서 선종하였다. (⇒) 광주대교구

[참고문헌] 김구정 · 김영구, 천주교 호남발전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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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튼 [원] McNaughton, William J.

McNaughton, William J.(1926~ ).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원. 주교. 초대 인천(仁川) 교구장. 한국명 나길모(羅吉模).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로렌스(Lawrence)에서 출생. 1944년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53년 동(同)회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았고, 이어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예일(Yale) 대학에서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후 1954년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충북 장호원 본당 보좌신부, 1955년 청주 북문로 본당 주임신부, 1957년 청주 내덕동 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59년 청주(淸州) 대목구 부감목으로 임명되었고, 1961년 인천(仁川) 대목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대목으로 임명되어 이해 8월 24일 자신의 고향인 미국 로렌스에서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1962년 3월 10일 교계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인천교구장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인천교구장으로서 인천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고 있고 이외에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상임위원회 위원, 주교회의 전국위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 : 인천교구 초대 교구장인 나길모 굴리에모 주교는 2002년 4월 24일 교구장직을 은퇴하였고, 동년 4월 25일 제2대 교구장으로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가 착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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