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동본당 [한] 玫花洞本堂

1896년 7월 안악군 용문면 매화리(安岳郡 龍門面 玫花里)에 설립된 본당. 르장드르(Le Gendre, 崔昌根) 신부에 의해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 함께 관할되다가 1896년 성직자 연례 피정 때 분할되어, 빌렘(Wilhelm, 洪錫九) 신부가 황해도 지역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다. 몇 개의 공소(公所) 중 마렴(安岳郡 文山面 麻簾) 공소를 본당으로 설정한 후 1897년 마렴과 머레[遠川] 사이에 있는 언덕으로 이전함에 따라 매화동(玫花洞)이라는 새로운 동네 이름과 함께 매화동 본당이 시작되었다. 이 동명(洞名)은 본당주보인 ‘로사리오’를 한자(漢字)로 표기한 것이었다. 또한 이 본당은 황해도 내에서 제일 처음 설립된 본당이기도 하다.

1898년 4월에는 청계동(淸溪洞) 본당이 분할됨과 아울러 빌렘 신부가 청계동 본당신부로 부임되고, 우도(Oudot, 吳保祿) 신부가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해왔다. 우도 신부는 1899년 9월 조선식 기와집 성당을 준공하는 한편 봉삼학교(奉三學校)를 설립하여 황해도 내에서는 최초로 사학(私學)을 시작하였다. 1909년 10월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의 수녀가 파견되어 본당 내 수녀원이 개설되어 본당 사목활동을 도울 뿐만 아니라 교육활동도 전개하였고, 소화시약소(小花施藥所)도 운영하였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당시 본당신부인 샤보(Chabot, 車麗松) 신부가 본국으로 소환되어 1914년부터 1919년까지 재령(載寧) 본당 멜리장(Melizan, 梅覆霜) 신부가 매화동 본당을 같이 관장하였다. 한국인 신부에 의한 본당 사목은 1931년 신인균(申麟均) 신부가 부임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가, 1950년 7월 17일 이여구(李汝球) 신부가 납치되어 매화동 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고 말았다. 한편, 봉삼학교는 4년제에서 6년제로 연장되고, 1934년 8월 15일에는 보통학교로 승격되었는데 1945년 8월 15일 공산당의 인민학교로 흡수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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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축일표 [한] 每日祝日表

교회력(敎會曆)에 따른 축일과 주일 및 연중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월일(月日)별로 표시한 소책자. 1924년 서울교구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 이전부터 간행되어 온 한 장짜리 축일표인 <첨례표>(瞻禮表)와 함께 사용되었다. 처음 간행 당시의 서명(書名)은 <매일첨례표>였고 그 뒤 매년 같은 서명으로 간행되어 오다가 1966년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에서 ‘첨례’라는 용어를 ‘축일’로 개정하자 <매일축일표>라는 서명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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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첨례표 [한] 每日瞻禮表 [관련] 매일축일표

매일축일표의 전신. ⇒ 매일축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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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위원회 [한] ∼委員會 [영] Mass Communication Committee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사회주교위원회 산하 전국 위원회 가운데 하나로 홍보매체를 이용하여 선교활동을 기획, 조정, 협력함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을 통해 “대중전달수단(mass media)을 복음 전파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교황청이 우선 매스컴위원회를 설치하고, 각국의 주교단에도 동 위원회의 구성을 권장하였다. 한국 주교단은 1967년 매스컴위원회의 구성을 결의하고, 김수환 추기경을 총재로 선임하였다. 기존의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을 주축으로 체제를 정비한 매스컴위원회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매스 미디어를 통하여 가톨릭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진력하였다. 매스컴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에 부응하여 산하에 여러 단체가 결성되었다. 1970년 가톨릭연예인클럽과 가톨릭문우회 및 가톨릭 방송인협회(UNDA KOREA), 1974년 가톨릭영화시청각협회(OCIC), 1977년 가톨릭출판협회(U.C.I.P.), 1981년 가톨릭사진작가협회 등이 각각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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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지 엔카운터 [영] Marriage Encounter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를 새롭게 하여 결혼생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케 함으로써 가정, 나아가 교회와 사회를 쇄신시키려는 운동으로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Gabriel Calvo) 신부와 몇몇 평신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청소년 지도 신부로 일하던 칼보 신부는 문제 청소년의 대부분이 가정문제로 인해 탈선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부부의 참된 만남(marriage encounter)만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길임을 인식하여 이 운동을 제창하게 된 것이다. 방법은 25쌍 내외의 부부와 지도신부가 한 팀이 되어 2박 3일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성실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부부가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 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운동은 그 후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1976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초창기 이 운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사람은 도널드 매키니스(Donald Maclnnis) 신부.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54번지에 한국 매리지 엔카운터 본부가 있고 각 교구별로 매리지 엔카운터가 조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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