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한] 滿洲

중국 동북부의 속칭으로 중국인들은 동삼성(東三省)[遼寧省, 吉林省, 黑龍省]이라고 부른다. 면적은 129만 3,341㎢이고, 주민의 대부분은 만주인이며 그 외 중국인, 조선인들도 적지 않다. 만주 지방에 복음이 전파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838년 이 지역이 북경 교구로부터 분리되어 만주 대목구로 설정된 점에 비춰보아 그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북경 교구로 분리 독립한 만주 대목구는 파리 외방전교회에 맡겨졌고, 초대 대목으로는 동 회원인 베롤(Emmanuel Verrolles)이 취임하였다. 1840년 몽고 지방이 분리되어 무원죄성모회에 위탁되었고, 1893년 만주 대목구는 봉천(奉天)을 중심으로 한 남만(南滿) 대목구, 길림(吉林)을 중심으로 한 북만(北滿) 대목구로 분리되었다.

만주 지방의 선교 조건은 상당히 열악하였다. 철도나 도로 등 교통시설이 빈약할 뿐 아니라 지방 관리들의 선교방해 등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의화단(義和團) 사건이 일어난 1900년경이었다. 이 사건으로 동몽고에서는 사제 세게르(Seghers)가 순교했고, 신자들과 선교사들은 추방당하였다. 북만주에서는 수비네(Souvignet) 등 4명의 사제가 순교하였고 성당은 파괴되었다. 남만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였다. 주교 기용(Guillon)을 포함한 1,000여명의 교인들이 순교했고, 교회가 운영하던 모든 건물들이 불타 없어졌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만주 교구는 꾸준히 성장하여 1928년 치치하얼(齊齊哈爾), 의란(依蘭), 연길(延吉) 3대목구를, 1929년 쓰핑(四平) 대목구를, 1932년 푸순(撫順), 적봉(赤峰) 두 지목구를, 1937년 임동(林東) 지목구를 각각 분리 독립시켰고, 1928년 하얼삔(哈爾賓) 총대리구를 설치하였다. 이리하여 1862년에서 1938년까지 76년 동안 주교가 1명에서 11명, 선교사 10명에서 268명, 신자가 6,000여명에서 18만 5,140명, 소학교가 12개교에서 163개교, 중학교가 1개교에서 7개교로 늘어났고, 만주인 사제가 100명, 만주인 수녀 144명, 성당 595개소가 새로이 탄생되었다. 1934년 교황청은 서한을 통하여 만주 전지역의 대표자로 길림교구장이었던 가스페(Augustin Gaspais) 주교를 임명하여 관할토록 하였다. 1945년 소련군이 만주로 진주함에 따라 연길의 베네딕토회와 치치하얼의 베들레헴회는 수난을 당하였다. 1946년 봉천 대교구가 설립되었고 푸순, 열하, 지린, 쓰핑, 연길 등 5대 지목구가 교구로 승격되어 1951년에는 대교구 1개, 교구 7개, 지목구 3개 및 하얼삔 총대리구 등 12개의 교구가 설립되어 있다. 한편 1952년 만주는 중국으로 반환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은 종교문제를 지방자치에 맡겼다. 그 이후의 사정은 자세히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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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진원 [한] 萬物眞原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중국 선교사 알레니(Julius Aleni, 艾儒略, 1582-1649)가 저술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천주교의 입장에서 자연과학을 논한 것으로 1628년 북경에서 초간되었다. 1791년(정조 15년) 진산사건(珍山事件) 당시 ≪만물진원≫, ≪성교천설≫(聖敎淺說) 등의 서학서가 예산 촌민 중에서 발견되었다는 글이 홍낙안(洪樂安)의 <장서>(長書)에 나타나며 김건순(金健淳)도 1801년 의금부(義禁府)에서 ≪교요서론≫(敎要序論)과 함께 ≪만물진원≫도 읽었다고 자백하였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비판한 학자는 홍정하(洪正河)로서 ≪만물진원증의≫(萬物眞原證疑)를 저술하여 동양의 오행(五行) 사상으로 비판하였다. ≪만물진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論物皆有始 / 論人不能自生 / 論天地不能自生人物 / 論元氣不能自分天地 / 論理不能造物 / 論凡事宣據理而不可據目 / 論天地萬物有大主宰造之 / 論天地萬物主宰攝之 / 論造物主非擬議所盡 / 論天主造成天地 / 論天主爲萬有之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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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라] manna [영] manna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그들은 만나를 먹었던 것입니다.(탈출16,35) 만나는 자연현상에 따른 것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자연현상이라면 일정 기간 일정 장소에서 볼 수 있겠지만 40년 동안 먹었고, 엿샛날 거둔 양이 두 배가 되는 것은 결국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나이 지방에서는 다마리스 마니페라(만나를 맺는 위성류의 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무성히 자라 있습니다. 봄에는 이 나무에 달고 황백색의(31; 민수기 11:7 참조) 비즈옥 같은 짙은 시럽형 액체가 붙어 있습니다. 그 구슬은 고체로 되어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아침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오늘의 베두인족들은 그것을 모아 꿀과 같이 감미료로 사용합니다. 그것이 액체일 때는 태양열을 받으면 땅에 흘러내리지만, 한 번 굳어지면 열에 녹지 않고, 삼거나 구울 수 있고, 맷돌에 갈 수도 있습니다(23; 민수기 11:8 참조). “태양이 뜨거워지는오전 9시경에는 그것을 볼 수가 없는데, “듀데라고 하는 특종 개미가 날라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느 학자는 이 지역의 베두인이 쓰는 이 듀데라고 하는 말과 20절의 구더기의 히브리어와는 어원 면에서 연관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또 황백색의 액체는 수액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빨아 먹고 사는 몇 가지 벌레가 분비하는 잉여탄수화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만나고 자연현상에 왔다면 일정한 시기에는 이스라엘인이 지나간 길에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대한 양, 사람마다 거둔 적정량(17-18), 특히 안식일과 관련된 예외적 현상(22-27)은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만나를 보관하도록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그것을 한 오메르 가득 채워 대대로 보관하여라. 그리하여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낼 때, 광야에서 너희를 먹여 살린 이 양식을 자손들이 볼 수 있게 하여라.”(탈출16,32)

 

그래서 모세는 항아리 하나를 가져다 그 안에 만나 한 오메르를 가득 담아서, 주님 앞에 두어 대대로 보관하십시오.”(탈출16,33)라고 명령하였고,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언판 앞에 놓아 보관하게 하였습니다(탈출16,34).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백성을 굶어 죽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앞에 있는 배고픈 군중들을 위해 빵을 많게 하시어 그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굶주림 속에서도 주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주님께 신뢰를 두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주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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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성체대회 [한] 萬國聖體大會 [관련] 국제성체대회

⇒ 국제성체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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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과 [한] 晩課 [관련] 저녁기도

성무일도(聖務日禱)의 저녁기도(vesperae)와는 별개의 기도로, 매일 저녁 교우들이 바치던 기도. 1864년 초간 이후 1972년까지 한국 교회의 공식 기도서로 쓰였던 ≪성교공과≫에 그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만과에는 제1양식과 제2양식이 있는데, 제1양식은 성호경(聖號經), 성신강림송(聖神降臨誦), 죄를 알게 하심을 구하는 경, 고죄경(告罪經),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 사하심을 구하는 경, 소회죄경(小悔罪經), 호수천신송(護守天神誦), 성모덕서도문(聖母德敍禱文), 형제·친척·친구·은인을 위하여 외는 경, 성영(聖詠),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하여 외는 경, 신 · 망 · 애 삼덕송(三德誦), 오사례(五謝禮) 등의 순서로 되어 있고, 제2양식은 제1양식에서 소회죄경, 형제 · 친척 · 친구 · 은인을 위하여 외는 경, 성영 등이 빠진 것으로 제1양식보다 조금 간략하게 되어 있다. 만과는 1972년 ≪가톨릭 기도서≫가 간행되면서 이름이 저녁기도로 바뀌었고, 기도의 순서도 매우 간략화되어 반성의 기도, 통회의 기도, 신망애 삼덕송 5개 부분으로 축소되었다. (⇒) 저녁기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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