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실리외 [원] Richelieu, Armand Jean de Plessis

Richelieu, Armand Jean du Plessis(1585-1642). 프랑스의 추기경, 정치가. 루손의 주교(1606년)로 시작해서 삼부회(三部會)에 선출되었으며 태후(太后) 마리 드 메디시스의 총애를 받고 그의 고문관이 되어(1616년), 태후와 루이 13세와의 불화를 조정하였다(1620년). 추기경(1622년), 재상(宰相)이 되고(1624년), 프랑스의 사실상의 지도자가 되었다(1629년∼). 그의 정책은 안으로는 위그노(프로테스탄트)를 탄압하고 귀족들을 억압, 지방행정을 개혁해서 중앙집권을 확립하는 것이었고 밖으로는 함스부르크가(家)의 세력을 타파함으로써 유럽에서의 프랑스 세력의 신장을 꾀하는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에 대해서는 위그노의 난(亂)(1625년)을, 라 로셀(La Rochelle)에서의 포위전에 의해 진압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특권을 소멸시켰다(1628년). 도한 재정 · 군제 · 법률 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개혁을 하여 상공업을 장려했고, 식민지 개척에도 힘썼으며, 문예(文藝)를 보호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창립자이다. 주요 저서로는 ≪Memoire du cardinal de Richelieu≫(1623), ≪Testament politique≫(1687) 등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리샤르 [원] Richard, Pierre Eugene

Richard, Pierre Eugene(1842-1880). 파리 외방전교회원. 한국성 채(蔡). 조선교구 선교사. 차부제(次副祭)로서 1865년 9월 7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들어가, 1866년 12월 22일 사제품을 받고, 1867년 12월 15일 한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박해가 심해 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그는 만주지방의 차쿠(岔溝)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곳 신자들을 돌보는 한편 선교사업의 경리를 맡아보았다. 규율에 엄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겸비한 그는 그곳 교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끝내 조선 입국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880년 9월 28일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리브와 [원] Libois, Napoleon

Libois, Napoleon(1805-1872).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 극동지역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장. 프랑스에서 출생. 1832년 선교사로 중국에 입국하여 마카오의 극동지역 경리부 부경리로 활동하였다. 1837년 마카오에 유학온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 등 3명의 조선 신학생에게 교회음악을 가르쳤고, 1842년 르그레즈와(Legregeois) 신부의 후임으로 극동지역 경리부장이 되어 극동지역에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을 지원하였다. 1842년부터 1846년까지 김대건 신부로부터 김대건 신부의 입국과 조선교회의 상황을 알리는 15통의 편지를 받고 이를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고하는 한편, 조선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을 돕고, 조선 전교를 적극 지원하였다. 1847년 극동지역 경리부를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옮기고 각 포교지의 경리부 신설에 노력하여 1857년 싱가포르, 1864년 상해(上海)에 경리부를 신설하였다. 1866년 프랑스로 귀국하여 그 후 사망할 때까지 교황청 포교지 경리부장으로 재직하였다.

[참고문헌] 李元淳 · 許寅 編著, 金大建의 편지, 정음사, 1975 /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下, 분도출판사, 1980 / 林忠信 · 崔奭祐 譯註, 崔良業神父書翰集, 韓國敎會史硏究所, 198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리베리오교황사건 [한] ∼敎皇事件 [영] Case of Pope Liberius

아리우스파 논쟁이 초대교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을 당시 교황 리베리오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다. 즉 교황 리베리오는 아타나시오를 배척하는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거부하였는데, 이에 따라 교황은 아리우스파였던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로부터 미움을 받아 355년 추방당하였다. 2년 후인 357년 교황 리베리오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아리우스파의 신앙선언에 서명했다고 전해져 교황의 무류성과 관련된 토론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문서가 위조문서라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한 때 교회를 위태롭게 한 논란은 종식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리베라 [원] Ribera, Jose

Ribera, Jose(1588-1657). 스페인의 화가, 동판화가. 나폴리파의 지도자의 한 사람. 스페인 발렌시아주(州) 하티바에서 태어나 나폴리에서 죽었다. 발렌시아에서 그림공부를 한 뒤 이탈리아로 가서 북부 이탈리아를 여행, 로마에서 수년간 체재한 다음 1616년경 나폴리에 정착하였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 시민들과 스페인 본국의 후원자들로부터 풍성한 지원을 받으며 작업하였다. 대체로 이젤화(畵)를 많이 그렸으며, 때로는 그룹을 이룬 인물화를 그렸지만, 그의 본령은 단독인물화였다. 그것은 어두운 배경 앞에 집주관선(集注光線)을 받은 입체적인 인물상이었다. 베로네제(Paolo Veronese)의 영향이 뚜렷한 1630년대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은 단색적(單色的) 경향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인물은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의 인물화처럼 품위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 <무염시태>, <십자가에서 내리심>, <양치기들의 기도>, <피에타>, <막달레나>, <루클레티아>, <성모승천> 등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