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라] Lucas

복음사가. 축일은 10월 18일. ‘사랑하는 의사’(골로 4:14)요 바울로의 ‘동료’(필레 1:24)로서 바울로의 죽음 직전 함께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2디모 4:11)이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셋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이다.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이며(골로 4:11 · 14 참조) 자신이 저술한 내용을 목격하지 않았으므로(루가 1:2) 일흔 두 제자의 하나도 아니고(루가 10:1) 엠마오로 가는 길에 글레오파와 동행한 자도(루가 24:18) 아니다. 토로아스에서 처음으로 바울로를 만났고(사도 16:10) 수년 뒤 필립비에서 다시 합류했으며(사도 20:5) 바울로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고(사도 21:1-18) 체사레아와 팔레스티나와 로마에서 구금된 바울로와 함께 머물렀다(사도 27:1-28:16).

전승에 의하면, 루가는 미혼이었고 84세를 일기로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이집트)에서 별세했는데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는 대개 저술가 또는 소(牛)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의 상징(에제 10:14, 묵시 4:7)으로 표현한 것은 루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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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 [원] Roth, Lucius

Roth, Lucius(1890~1950). 독일 상트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수도회 덕원교구 선교사. 한국명 홍태화(洪泰華). 독일 바이에른(Bayern)에서 출생하여 1917년 로마의 성 안셀모대학에서 철학 ·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923년 내한, 베네딕토회가 담당하던 한남 덕원교구에서 전교활동을 벌이는 한편, 1936년 미사경본 (彌사經本)을 저술하였고 그밖에 <가톨릭청년>지(誌)에 많은 호교론과 공산주의비판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해성학교장을 역임하고 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49년 5월 사우어(Sauer, 辛) 주교, 수도원 부원장 쉴라이허(Schleic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Klingseiz, 吉) 신부 등과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원산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평양으로 이송되었고 잔혹한 고문과 형벌을 참아내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950년 11월 3일 공산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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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 [원] Locke, John

Locke, John(1632~1704). 영국의 계몽철학 및 경험론의 창시자. 사마센토샤의 린튼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 자연과학 ·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1700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그는 데카르트 철학과 뉴턴에 의해 완성된 당시의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스콜라철학에 반대하였다. 1690년에 출판한 ≪인간오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제4권은 경험론, 내재적 현상론(內在的 現象論)의 입장에서 인식론을 철학의 근본과제로 삼아 버클리와 흄에 영향을 미쳤고, 그의 근대 인식론이 칸트에 의해 완성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제1권에서는 데카르트와 케임브리지의 플라톤 학파가 주장한 본유관념(本有觀念)을 부정하였다. 제2권에서 사람의 지식은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경험을 통해 얻어진 단순관념에서 복합관념으로 나아간다고 주장, 인간의 마음은 출생시엔 백지(白紙)와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백지 위에 관념이 새겨짐으로써 인간은 지식을 갖게 되는데 이 관념의 원인을 감각과 반성을 통해 인식되는 물성(物性)이라 하였다. 물성을 객관적인 제1성(형태, 크기, 수 등)과 주관적 제2성(빛깔, 향기, 맛 등)을 구별하였다. 제3권 언어론은 스콜라적 실체형상(實體形象)을 비판하면서 개념론, 또는 유명론적 보편개념을 정의, 설명했다. 제4권에서는 주로 이상의 것을 포함하여 지식의 확실성 · 종류 · 가능성 등을 논하였다. 그는 이성론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지식을 관념과 대상 사이의 관계로 파악치 않고 관념과 관념 사이의 일치. 불일치 관계로 규정하였다. 또 그는 쾌락주의 · 행복주의적 경향의 윤리관을 가졌고 도덕은 신의 법, 자연법, 국법과 일치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로크의 유명한 정치사상은 계약설(契約說)로 홉즈의 전체주의를 자연상태보다 더욱 악하다고 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했고, 대의제에 의한 민주주의, 삼권분립, 이성적인 법에 의한 통치, 국민의 자유 등을 강조하여 프랑스혁명, 미국의 독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그의 사상은 서양의 민주주의의 근본사상이 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690),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1673), ≪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169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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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양식 [한] ∼樣式 [영] Rococo art

18세기초에 파리에서 시작되어 곧 프랑스 전역과 독일, 오스트리아로 확산된 장식적인 미술양식을 나타내는 용어. 일반적으로 로코코 양식은 웅장하기보다는 아름답고 장식적이며, 공간보다 선(線)이 강조된다. 특징은 표면의 장식적 처리(당초 무늬, 소용돌이 무늬, 조가비 세공 등)로 좌우 대칭보다는 비대칭이 규칙이다. 회화에 있어서는 와토(Antoine Watteau)와 부세(Fransois Boucher)의 작품들이 가장 전형적이며, 건축에 있어서는 샹티니의 푸티 샤토 내의 황태자의 살롱과 파리의 오델 드 수비즈의 살롱이 좋은 예이다. 또한 로코코 양식의 모든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일부는 독일에서 발견되는데, 바이에른의 리히텐펠스 부근에 있는 피르테하일리겐 교회와 뮌헨 근방의 비스키르케 교회가 가장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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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원] Roze, Pierre Gustave

Roze, Pierre Gustave(?-?).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해군소장. 중국명 노세(魯勢). 중국 천진(天津)에서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 1866년 7월 병인(丙寅)박해로 조선을 탈출하여 천진에 온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리델(Ridel, 李福明 후의 6대 조선교구장) 신부를 만나 조선에서의 박해상황과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포함한 프랑스 선교사 7명의 처형소식을 전해 듣고 이를 프랑스 해군성(省)과 북경주재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Belonnet)에게 보고한 후 프랑스 선교사들의 처형과 천주교 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조선정벌을 결심, 해군성의 허락을 얻어 이해 9월 조선해안 정찰차 3척의 군함을 이끌고 양화진(楊花津)에 이르렀다(병인양요). 이어 10월에는 다시 7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江華島)에 상륙, 강화도를 점령했으나 결국 문수(文殊)산성과 정족(鼎足)산성의 전투에서 패하자 강화성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였다.

결과적으로 로즈 제독의 강화도 점령은 그 뒤 오페르트(Oppert)의 남연군(南延君)묘 도굴사건과 함께 조선 정부로 하여금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를 더욱 더 가열시키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참고문헌] 敎會史硏究 2,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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