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 [라] cinctura [영] cincture [관련] 장백의

사제가 장백의(長白衣)를 입을 때 길이가 긴 장백의가 끌리거나 벌어지지 않게 허리에 매는 끈. 띠의 길이는 3~4미터이며 양쪽 끝에 장식술이나 고리가 달려 있다. 띠의 색은 보통 흰 색이나, 그날에 해당하는 제의색(祭衣色)과 일치하는 것은 환상적으로 안 좋다. 띠는 일 · 싸움 등 결의의 상징으로 악마와의 투쟁, 극기의 필요성을 각성케 한다. 사제는 띠를 매면서 입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다. “주여, 조찰함의 띠로 나를 매어 주시고 내 안에 사욕을 없이 하시어 절제와 정결의 덕이 있게 하소서.” (⇒) 장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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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벨라 [관련] 타벨라

⇒ 타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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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께 [원] Taquet [관련] 타케

⇒ 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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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도로 [라] Diodorus

Diodorus(378~?). 그리스 교부. 신학자. 타르소의 주교. 394년 이전에 죽었다. 안티오키아(현재 터키령)에서 태어나 고향 및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은 후 타르소의 실바노(Silvanus) 및 에메사(Emesa)의 에우세비오(Eusebius)에게서 고전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안티오크 근교의 수도원학교에 입학, 후에 교장이 되었으며, 당시의 제자로 크리소스토모(Johannes Chrysostomus) 및 몹수에스티아(Mopsuestia)의 테오도로(Theodorus)가 있었다. 안티오크학파의 성서주석 등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이교 · 이단을 배격하고 니체아신앙을 옹호, 오티오크에 체류 중이던(362~363년)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와 논쟁을 벌여 그를 통박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인 발렌스 황제에 의해 372년 아르메니아로 유배당했다가 378년 황제가 죽은 후 안티오크로 귀환, 키리키아의 타르소의 주교로 취임하였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 출석, 정통파의 주석(柱石)으로 찬양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Cyrillus 376~444)는 네스토리우스 뿐 아니라 그도 공격, 후일 콘스탄티노플 교회회의(499년)에서 이단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여러 분야에 걸친 저술가로서 성서강해 · 변증론 · 논쟁서 · 교의서 · 우주론 · 천문학 · 연대기 등에 관한 교서가 있었으나, 아리우스파 및 이단문제 등으로 인해 대부분이 파기되었다. 성서해석에 있어서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비유적 해석에 반대하여 역사적 · 문법적 해석법을 취했고,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도 율리아누스 황제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神性)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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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시오 [라] Dyonysius [영] Dyonysius [그] Dyonysios

Dyonysius(190/200~264/265). 교부(敎父),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인.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 태생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다 개종하여 오리제네스(Origenes)의 제자가 되었다. 232년, 헤라클라스(Heraclas)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우두머리를 지냈고, 247년 주교가 되었다. 250년 데치우스(Decius) 박해 때 은신생활을 했고, 257년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박해 때는 공적인 신앙고백 뒤에 리비아로 추방당하였다.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뒤 시민전쟁과 기근, 페스트 등을 겪었고 264년 사망하였다. 축일은 11월 17일. 디오니시오는 죽은 뒤에 ‘대’(大, Magnus)란 칭호를 받게 된다. 즉 생전에 지녔던 그의 굳센 믿음과 항구심, 용기 있는 그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그는 신학이론 및 윤리실천 부문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그 일부가 전해질 뿐이다. 에우세비오(Eusebius of Caesarea)의 《교회사》 7권은 거의 모두 디오니시오에 관한 내용이다.

디오니시오의 주요 저서로는 《자연론》(自然論, De Natura), 《약속론》(約束論, De Promissionibus), 《반대와 옹호》(Refutatio et Apologia) 및 몇 편의 서간 등이 손꼽힌다. 특히 성삼론(聖三論)과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는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및 유주론(唯主論), 성부학잡설(聖父學雜說), 양상론(樣相論), 천년왕국설 등을 거부, 올바른 교리 정립을 위하여 공헌한 바 크다. 다만 설명과정에서 삼위의 구별을 너무 강조한 결과 오히려 삼신론(三神論, Tritheismus) 및 또 다른 형태의 종속론에 떨어지는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천년왕국설을 부인함에 있어 그 저자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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