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그] Diakonia

‘봉사’를 뜻하는 그리스어. 이는 어느 행위 주체가 교회전체나 특정개인의 선익(善益)을 위하여 수행하는 모든 공적인 직무나 사적인 협력을 지칭한다. 최근에 와서 이 용어는 제한적으로 쓰여져 왔는데, 교회를 위하여 사제와 부제처럼 특별히 서품받은 자, 수도자처럼 축성된 자, 환자나 빈자에게 봉사하고 가르치는 평신도처럼 선임된 자 등이 등이 교회 안에서 이행하는 봉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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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라] diaspora [영] diaspora

‘이산’(離散, diaspora)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말. 헬레니즘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 세계로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을 가리킨다. 기원전 8세기경 아시리아(기원전 734~721년)와 바빌론(기원전 598~587년)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이 함락되면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사후(기원전 323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치하에서 이집트로의 이민이 활발하였다. 처음에는 아시아지역, 특히 아르메니아와 이란에 한정되었었으나 나중에 이집트,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 로마제국 전역으로 펴져나갔다. 신약시대의 필로(Philo)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에만 100만명 가량 되는 유태인들이 있었다. 특히 이곳은 학문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유태인 학자들이 참여하여 ‘70인역’이라고 불리는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을 완성하였다. 필로와 요셉(Josephus)에서 보이듯이 헬레니즘문화가 디아스포라의 유태인들의 사고에 침투하고 있었음을 물론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성전세를 내고 그들의 종교와 율법을 따랐다. 디아스포라의 유대 회당은 최초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설교하던 첫 무대였다(사도행전). 그들은 대체로 배타적이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더불어 주위의 비(非)유대문명으로부터 점차로 단절되어 모세 신앙을 탈무드적인 유대이즘으로 발전시킨 팔레스티나의 랍비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태인들의 상승하는 지위와 그들의 특권은 주위 민족들의 반목을 사게 되어 여기서 최초의 반(反)유대주의가 싹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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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 [원] Diaz, Junior Emmanuel

Diaz, Junior Emmanuel(1574~1659).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중국명 양마락(陽瑪諾). 1610년(明 萬曆 38년) 중국에 입국. 남경(南京)에서 전교하던 중 1611년 동림당(東林黨)의 정쟁(政爭)이 발발하자 마카오로 피신하였고 1621년부터는 북경(北京)에서 중국 주재 예수회 부책임자로 3년을 일하였다. 그 후 남경 · 송강(松江) · 상해(上海) · 항주(杭州) 등지에서 전교했으며 영파(寧波)를 개교(開敎)시켰다. 1634년 남창(南昌), 1638년 복주(福州)에서 전교하였고 그 후 다시 박해를 피해 마카오로 피신하였다가 164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연평(延平)에서 전교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1659년 3월 1일 항주에서 사망, 항주성 밖의 대방정(大方井)에 안장되었다. 저서로는 ≪千問略≫(1614), ≪聖經直解≫(北京1636), ≪天主聖敎十誡直詮≫(北京1642), ≪代論≫(北京1622), ≪聖若瑟行實≫(1674), ≪經世金書≫(2권, 北京 1640), ≪天學擧要≫, ≪袖珍日課≫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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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 [관련] 사목서간

⇒ 사목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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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테오 [라] Timotheus

Timotheus(?~97?). 성인. 축일 1월 26일. 순교자. 로마의 속주(屬州)인 리카오니아(Lycaonia)의 리스트라(Lystra)에서 그리스인 부친과 유태인 모친 사이에 태어났다. 성 바울로의 제1차 로마 식민지 전도여행 때 디모테오와 모친, 조모가 그리스도교에 귀의(歸依)한 것으로 보인다(사도 14:7-9, 2디모 1:5). 기원후 50년 성 바울로의 제2차 여행 때 디모테오는 바울로의 전도여행을 충실하고도 열심히 도운 수반자로 시종하였다. 디모테오는 데살로니카서(書), 고린도후서, 필레몬서의 공동 집필자이다. 히브리서 13장 23절에는 그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성 바울로는 그를 에페소에 있는 어느 그리스도교 학습소 선생으로 파견(1디모 1:3), 그러나 후에 성 바울로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디모테오를 급히 로마로 소환하였다.

성 요한 다마셰노(Johannes Damadcenus, 645?~750?)에 의하면, 에페소 주교 디모테오는 성모 마리아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로마황제 네르바 치세 때인 기원후 97년에 순교했다고 한다. 356년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그의 유골을 콘스탄티노플로 이장하였다. 디모테오는 비교적 소심하면서도(1고린 16:11, 2디모 1:7-8), 심성이 자애로웠다(2디모 1:4). 그는 병약하고(1디모 5:23), 성 바울로의 마지막 피체(被逮) 때(63년경) 아직 젊었었다(2디모 2:22). 성 바울로는 그에게 보내는 2통의 사목서간(디모테오서)에서 그를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며 그를 염려하였고(1고린 4:17), 충실한 모방자(필립 2:19-20), 협력자(로마 16:21), 절친한 친구(2디모 1:4)라고 칭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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