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모 [라] Didymus

Didymus(313?~398?). 신학자. 4세 때 실명(失明), 각고노력 끝에 성서 · 신학 대가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Athanasius)에 의해 그곳의 교리문답학교 교장에 취임, 수십년간 재직하였다.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엄정한 정통파였으나, 영혼의 선재(先在)와 만물의 부흥에 관해 오리제네스(Origenes)설을 채택했기 때문에,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오리제네스주의자로 비난당하였으며, 따라서 다수의 저서가 소실되었다. 잔존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은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성령론≫(De spiritu Sancto), ≪마니교도 반박론≫(Contra Manichaeos) 등이다. 그의 인격과 박학에는 교부(敎父) 예로니모 (Hieronymus)도 경복했다고 한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디도에게 보낸 편지 [관련] 사목서간

⇒ 사목서간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디도 [라] Titus

Titus(?~96?). 성인. 축일 2월 6일. 초기교회의 주교(主敎), 증거자(證據者), 성 바울로의 제자이며 수행자. 양친은 그리스인(갈라 2:1-5), 안티오크(Antioch, 현재 터키령)에서 태어난 것 같다. 사도행전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성 바울로의 서한에는 그에 관한 정보가 많이 보인다. 바울로에 의해 개종(改宗)(디도 1:4), 두 번 고린토 교회로 파견되었다. 바울로를 따라 크레타섬에 전도를 갔다가 나중에 교회를 조직하기 위해 그 곳에 남아 있었다(디도 1:5). 후에 바울로는 그를 니코폴리스(Nicopolis)로 소환(디도 3:21), 다시 달마티아로 파견 하였다(2디도 4:10). 전설에 의하면 디도는 그 후 크레타섬에서 주교로 여생을 보내고 93세에 별세했다고 한다. 유해는 고르티나(Gortyna)에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에 옮겨졌다. 디도는 결단력 있고 유능하고 열심한 신자였으나 원만한 성격도 있었기 때문에 바울로는 그를 말썽 있는 곳에 파견하곤 했다고 한다. 디도서(書)는 성 바울로가 주교인 디도에게 보낸 서한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디다케 [그] Didache

① 디다케는 ‘가르침’ 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이며, 성서에 기록된 계시 내용의 교훈적인 부분 혹은 그러한 측면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아울러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역할과 교도권의 행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② 사도시대 직후에 저술된 문헌. 본래의 제목은 ‘12사도를 통해 제민족(諸民族)에게 전달된 주님의 가르침’이자만 간단히 ‘12사도의 가르침’ 또는 ‘디다케’로 불리어진다. 이는 당시 보급되거나 실천되고 있는 전례문헌들을 모아서 저술한 것으로, 교회규율에 관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초대교회 때 ‘교회의 규범’이나 ‘교령’의 전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문헌이 있었다는 것은 옛날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벌써 기원후 300년에 제1장부터 제 6장까지가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그 밖에도 부분적으로 아시리아어, 아라비아어 등으로 번역되고 교부들의 저서 속에 인용되었다. 그러다가 1873년 니코메디아의 대주교 브레니오스(Bryennios)가 예루살렘의 희랍 대주교관 도서관에서 1056년에 작성된 디다케 전문이 씌어 있는 희랍어 수사본을 발견하였다.

디다케는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두 개의 길, 즉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에 대한 묘사, 둘째 세례 · 고해 · 성체 등 성사에 관한 가르침, 셋째 성직자에 대한 언급이 그것이다. 그 안에는 윤리적 계명과 당대에 사용되던 전례의 기도문을 인용한 전례에 관한 여러 가지 지침,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와 세상 종말에 관한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디다케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생활과 신앙을 잘 묘사해서 전달하고 있다.

디다케의 저자는 미상이며 저술된 지방은 시리아(Syria)임이 거의 확실하고 저술년도는 기원후 60년에서 4세기까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콰스텐(Quasten)과 그 밖에 많은 학자들은 100년에서 150년 사이를 저술년도로 보고 있다. 디다케의 내용을 보면 사도시대의 글이 아님이 확실하다. 사도들은 교회의 생활을 유태인들의 관례에 따라 실천했는데 유태인들이 월요일과 목요일에 재를 지킴에 반하여 디다케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재를 지킨다. 그밖에 그 저술시기가 사도시대 이후라고 볼 수 있는 요소로는, 디다케가 침수식 세례만이 아니라 이마에 물을 붓는 세례를 인정하고 또 신약시대의 ‘예언자’의 직책이 약화되는 것을 쇄신하려는 노력을 들 수 있다. 한편 사도시대로부터 가까움을 지적해 주는 내용도 있다. 전례에 대한 묘사가 단순하고 간략하다. 세례는 흐르는 물에서 주는 것이 원칙이고 이마에 물을 붓는 방식은 예외이며, 아직 신앙고백을 한 신경의 흔적이 없고 신약성서의 정경목록도 확정되지 않고 있는 점 등이 주목된다. 따라서 디다케는 사도시대 직후의 문헌이라 할 수 있으며 100년부터 150년 사이에 저술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드브레 [원] Devred, Emile Alexandre Joseph

Devred, Emile Alexandre Joseph(1877~1926). 서울교구 보좌주교. 한국명 유세준(兪世俊). 1877년 1월 7일 루쿠르(Roucourt)에서 태어나 1898년 9월 1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간 그는 1899년 9월 23일 사제품을 받고 1899년 11월 15일 임지인 한국으로 출발하였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원주(原州)본당의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6년간 전교에 전념함으로써, 강원도 지방의 교세신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에 이웃 풍수원(豊水院)본당 신부와 협의해서 1904년에 용소막(龍召幕)본당을 새로 탄생시켰다. 1906년에는 드망즈(Demange) 신부가 경향신문사 사장으로 전임되자 그의 후임으로 신학교를 맡아 정성껏 신학생들을 돌보았고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에 돌아갔으나 그 동안 제2의 조국인 한국을 잊지 않고 때때로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 동료와 제자들을 걱정하였다.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뮈텔 주교는 모든 성직자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드브레 신부를 계승권을 지닌 그의 보좌주교로 추천, 교황청의 승인을 얻었다. 이에 1921년 5월 1일 주교성성식을 갖고 이후 5년 동안 서울교구 지도서를 출판하는 한편 1866년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한 자료수집 등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많은 공적을 남기고 1926년 1월 17일 갑자기 졸도하여 그 이튿날 깨어나지 못하고 선종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