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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는 모델개념의 하나로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민주화의 진전에 따른 대중의 등장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칭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종전의 시민사회는 기술의 진보에 의한 조직기술의 혁명적인 변화에 따라 노동자의 수를 급격히 증대시켰다. 또한 유통과 관리의 임무에 노동자가 참가함으로써 ‘화이트 컬러’라고 불리는 신 중간계층이 대량으로 사회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노동자의 발언권 증대와 함께 보통선거권이 노동자에게 주어짐으로써 정치적인 평등화는 사회저변으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대중사회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대중의 세력이 커짐과 동시에 소수 엘리트에 의한 대중조작의 가능성도 아울러 증대되었다. 말하자면 중간집단의 해체에 의해 개인차원에서는 원자화, 비합리화의 경향이 나타나고 사회차원에서는 조직화, 관료화의 경향이 심화되어 인간소외, 파시즘의 등장 등 현대사회 특유의 병폐현상이 노출됨으로써 인간의 개성이 상실되고, 획일화에 의한 정치에의 무관심과 현실도피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중사회에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교회 자체는 과거 시민사회에 적합했던 생활양식과 선교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대중사회에 적합하지 못한 교회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대중사회 고유의 병폐를 깊이 통찰하여 문제를 설정,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 셋째, 대중사회의 중심이 되면서도 소외당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선교가 필요하다. (⇒) 사회
[참고문헌] 바오로 6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1967 / 사목헌장, 서론 / W.J.H. Sprott and A.H. Stewart, Living in Crowds, 1949.
한 개의 교구나 그 이상의 교구를 통치하는 주교. 4세기나 5세기에는 총대주교와 다른 특별한 교구를 다스리는 성직자에게 적용된 칭호였으나 뒷날에 와서는 하나의 교회 구역을 다스리는 대교구의 장(長)에 해당하는 말이 되었다. 대주교는 관구 회의에 주교를 소집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그의 관구 주교 중 한 사람이 내린 판결에 대한 첫 상소심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행정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그 자신의 교구에 한한다.
이 본당은 일제 하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 대전지역 최초의 본당으로 신설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당시의 관할구역은 대전을 비롯하여 충남의 대덕군(大德郡), 연기군(燕岐郡), 충북의 청주(淸州), 영동군(永同郡), 보은군(報恩郡), 옥천군(沃川郡) 일원이었다. 초대 본당신부는 한국인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 2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루블레(Rouvelet, 黃惠中) 신부였다. 이후 현재의 21대 권용희(權龍喜, 도미니코) 신부에 이르기까지 5명의 한국인 본당신부를 제외한 16명의 역대 본당신부가 외국인이었다.
1921년 초대 이종순 신부는 이미 매입해 둔 목동(牧洞) 소재 1만여 평 대지 위에 성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926년 루블레 주임신부는 현 대흥동(大興洞) 성당을 준공 낙성하고 그 곳으로 이전했으며, 목동의 구 성당은 철폐하였다. 1941년 소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본당 주임신부 코르미어(Pierre Cormier, 高) 신부를 비롯한 3명의 신부가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1945년 8.15광복 때 석방됨). 1945년 10월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는 목동의 성당을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당으로 전용(專用)케 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대흥동의 본당이 전소되고, 1952년 그 자리에 임시성당이 신축되었다. 대전 본당은 6.25 이후 8년간 대흥동본당에 합병되어 있다가 1958년 5월 본당이 재부활 되면서 목동의 구성당으로 이사하였고, 본당 명칭이 목동본당으로 정착되었다. 한편 1948년 대흥동본당에는 서울에서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상주하면서 주교관 살림과 희망의원(현 성모병원)의 일을 돌보기 시작했고, 1956년에는 대덕군 산내면(大德郡 山內面)에 교회묘지를 조성, 1957년에는 소화(小花)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71년 현재의 목동 본당이 신축 축성되었고, 한편 대흥동 본당은 대전교구 주교좌 성당으로서 1962년 대규모의 성당건물(523평)이 신축되었다. 목동 본당의 주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현재 본당 주임은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권용희 신부, 신자수는 1,647명(1983년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