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령동본당 [한] 大領洞本堂

1926년에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세자 요한. 창설 당시의 소재지는 만주 간도성 연길현 대령동(滿洲 間島省 延吉縣 大領洞)이었으나 1935년 연길현 다조구(茶條溝)시로 이전되었고 이때 본당명이 다조구본당으로 개칭되었다. 대령동은 1910년 이래 팔도구본당의 공소였다가 1926년 팔도구본당 보좌 에머를링(P. Emmerling, 嚴) 신부가 주임으로 파견되어 본당으로 창설되었는데 당시의 교세는 10여개의 공소에 교우수 1,500여명이었다. 1937년 랍(C. Rapp, 朴)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3년간 사목하면서 성당, 사제관, 사무실을 건축하고 청년회와 소년회를 조직한 후 1931년 명월구본당을 분리, 신설시킴과 동시에 명월구본당으로 옮겨갔고 이어 3대 주임 아쇼프(S. Aschoff, 安) 신부와 보좌 뮐러(E. Muller, 穆)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934년 둘 다 병사, 콜러(S. Koller, 李)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935년 공산군의 습격으로 성당과 부속건물이 소실되자 콜러 신부는 본당을 가까운 다조구로 이전시키고 본당명을 다조구본당으로 개칭하였다. 콜러 신부는 공산군과 마적의 습격, 그리고 본당 이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정체된 본당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교세신장에 주력하는 등 본당 재건을 위해 노력, 1년 후인 1936년에는 옛 상태를 회복하여 공소 8개소에 교우 수 965명으로 교세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1946년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어 현재까지 침묵의 교회로 남아 있다. 본당 내 심신단체로 청년회, 소년회 등을 포함한 7개의 단체가 있었고 이외에 해성학교, 야학 등의 교육기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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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랍자본당 [한] 大拉子本堂 [관련] 삼원봉본당

삼원봉본당의 후신. ⇒ 삼원봉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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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정로 [한] 大東正路

구한말 유생(儒生)인 허칙(許侙)이 편집하여 1903년 간행한 문집(文集). 6권(卷) 5책(冊)으로 구성되어 있고 조선조 후기에 저술된 유교(儒敎)관계의 여러 글들이 실려 있는데, 5책을 이루고 있는 5권(卷之五)과 6권(卷之六)에는 영조(英祖) 때의 처사(處士) 홍정하(洪正河)가 ≪증의요지≫(證疑要旨)라는 제하(題下)로 ≪천주실의≫(天主實義) · ≪만물진원≫(萬物眞源) · ≪진도자증≫(眞道自證) · ≪성세추요≫(盛世芻蕘) 등에 관한 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朴鍾鴻, 西歐思想의 導入 批判과 攝取, 韓國天主敎會史論文選集, 第1輯,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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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도 [한] 大祈禱 [라] litaniae majores [관련] 삼천기도

4월 25일 ‘모든 성인의 호칭기도’를 노래하며 장엄한 행렬로써 거행하던 기원제(祈願祭). 새 교회력(1970년 개혁)에서는 이것이 폐지되었다. 같은 종류의 기원제로 예수승천 축일전 3일간에 걸쳐 거행되던 것을 소기도(litaniae minores)라고 하였는데 이 소기도를 한국교회에서는 삼천기도(三天祈禱)로 불렀다. (⇒) 삼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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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대부 [한] 大君大父

옛 교우들이 하느님의 별칭(別稱)으로 사용하던 말로 가장 높은 임금이며 가장 높은 아버지라는 뜻. 조선왕조가 천주교를 말살하려고 한 윤리적인 이유로서 천주교인들을 소위 ‘무부무군(無父無君)하다’ 즉 아비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긴다고 하여 박해를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박해자들의 용어에 대응하여 순교자들은 ‘대군대부’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이는 바로 하느님이 천지의 창조자이므로 ‘대군’이고, 인류의 아버지이므로 ‘대부’가 된다는 뜻이며, 따라서 당시의 상황이 ‘대군대부’를 배반하는 것이 될 때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였던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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