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수녀회 [한] ~修女會 [영] 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Notre-Dame

1848년 아델곤드 월브링(Adelgonde Wolbring)과 리제테 퀼링(Lisette Kuhling)이 독일에서 창설한 수녀회. 1789년 프랑스의 아미앙(Amiens)에서 줄리 빌리아르(St. Julie Billiart)가 창설한 여자교육활동 수녀회의 수족중 독일의 베스트팔렌(Westfalen)의 코스펠트(Coesfeld)에 본부를 둔 수녀회(Sisters of Notre-Dame of Coesfeld)가 1967년 한국에 진출하였다. 여성 교육사업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형제사랑으로 돌보면서 더욱 건설적인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 수녀회는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崔再善) 주교의 요청으로 내한하였고 한국인 지원자를 1962년 서독으로 보냈다. 1967년 서울 계동(桂洞)에 서울 분원을 설치하고 1971년 국내에서 한국인의 지원자를 받았다. 1972년 부산 부민동(富民洞)에 부산분원을 설치하면서 한국지부가 설정되었다. 1975년과 1977년에는 인천 송림동(松林洞)과 경기도 오산(烏山)에 각각 분원을 설치하였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는 여대생들을 위한 기숙사업을 비롯한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교양교육사업 등을 전개하는 한편 1972년 10월에는 부산 부민동에 유치원을 개원하고 1975년부터는 인천의 박문여자중고등학교를 위임 경영하였다. 1975년 9월부터는 농어촌유치원 교육을 위하여 오산에 마을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1977년 오산유치원과 1979년 3월 안내양교양센터를 각각 개원하여 한국지부장 마리아 알렉산드라(Maria Alexandra) 수녀 외에 76명의 회원들이 1983년 12월 현재 4개 지역의 분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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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대성당 [한] ~大聖堂 [프] Cathedrale de Notre-Dame de Paris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성당. 공사는 1163년에 시작되어 1250년에 완성되었다. 쉴리 주교의 지휘로 착공하여 루이 9세 때 완공된 것이다.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에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겨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때 건물은 많은 파손을 입어 19세기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이 건물은 130m의 장대한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오랑식(五廊式)으로 된 웅대한 건축이며, 중앙통로의 양측에는 열주(列柱) 등으로 명쾌한 3중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서쪽 정면에는 하층에 <최후의 심판> 부조(浮彫)로 유명한 중앙 출입문 등 3개의 출입구가 있고, 6.9m 높이의 직사각형 쌍탑은 이 성당의 위용을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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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한] 盧天命

노천명(1912~1957). 여류시인. 초명은 기선(基善), 세례명은 베로니카.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黃海道 長淵郡 蓴澤面 碑石浦里)에서 장연본당 회장 노계일(盧啓一)의 차녀로 출생, 1930년 진명여고보(進明女高普), 1934년 이화여전(梨花女專)문과(文科)를 졸업하고 잠시 <중외일보>(中外日報), <여성>(女性)지의 기자로 있다가 극예술연구회의 신극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1935년 <시원>(詩苑)의 동인으로 동지(同誌) 창간호에 시(詩) ‘내 청춘의 배’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고 그 후 <매일신보>, <서울신문>, <부녀신문> 등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작품의 대부분은 서정시(抒情詩)로, 초기에는 감상적이고 여성적인 서정성을, 김동명(金東鳴)과의 실연(失戀) 이후에는 비현실적인 내면세계의 고독을, 1954년 입교를 전후한 말기에는 승화된 사랑, 종교적 참회 등을 표현하였다. 비교적 초기의 작품에 속하는 대표작 ‘사슴’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珊瑚林≫, ≪窓邊≫, ≪盧天命詩集≫,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遺稿集)와 수필집 ≪산딸기≫, ≪生活의 白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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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성체 [한] 路資聖體 [라] Viaticum

라틴어 어원은 ‘긴 여행을 위한 준비’라는 뜻으로 이 말은 일찍부터 삶과 죽음 의 두 가지 대(大)여행을 위한 영적인 준비, 즉 세례와 마지막 영성체를 의미하였다. 또한 초기 교회에서는 임종하는 이를 위한 다른 종교적 의식과 기도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죽음의 위험에 처한 신자에게 마지막으로 영해 주는 성체만을 뜻한다. 노자 성체의 분배는 특히 사제와 부제의 의무이다. 그 밖에 합법적으로 시종직을 받은 사람도 비통상 성체 분배자가 된다. 교구장은 사제나 부제나 시종이 없을 때 신자들의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체 분배의 특권을 부여할 수 있다.

노자성체에 사용되는 성체는 미사 후에 남겨 두었던 성체이며, 병자의 가족들은 병자가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에 노자성체를 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노자성체의 경우에는 공복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죽을 위험이 임박한 병자에게는 먼저 고백성사를 주고 임종 전 대사를 베풀고 필요하면 견진성사를 집전하고 병자성사를 준 후 노자성체를 영해 준다. 노자성체는 병자성사처럼 한 번 이상 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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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문답 [한] 老人問答

노인용(用) 교리문답. 크기는 가로 12.4㎝ 세로 18.7㎝, 면수는 43면, 편집 겸 발행인은 라리보(Larribeau, 元亭根) 신부. 1934년 서울 성서활판소에서 간행되었다. 11가지의 주요 기도문과 76개 조목의 교리문답이 수록되어 있는데 76개 조목의 교리문답은 같은 해 간행된 ≪천주교요리문답≫에서 발췌한 것으로, ≪천주교요리문답≫의 어느 부분에서 발췌했는가를 표(表)로 만들어 밝혀 주고 있다. ≪노인문답≫은 ≪천주교요리문답≫과 함께 1964년 ≪가톨릭교리서≫가 나올 때까지 한국 교회의 공식교리서로 널리 사용되었다. ≪노인문답≫ 이전의 노인용 교리서로는 ≪성교요리문답≫을 간추린 ≪진교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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