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레오와 아킬레오 [라] Nereus et Achilleus

생몰연대가 불명인 로마의 두 순교자. 성인. 축일은 5월 12일. 아마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 284~305) 박해 때의 순교자인 것 같다. 그들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숭경되어, 그 이름이 5세기 로마의 축일표(祝日表)에 기재되었고, 젤라시오 사크라멘타리움에는 그들의 축일 미사전례문이 수록되어 있다. 교황 다마소 1세(재위 : 366~384)가 쓴 묘비명(墓碑銘)의 단편(斷片)에는, 그들은 참주(僭主)의 ‘무신(無神)의 진영’을 떠나 순교자로서 영광되게 순교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병사였다. 이 기록은 역사적 전승에 입각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의 무덤이 도미틸라(Domitilla, 베스파시아노의 손녀,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 교도라 해서 추방)의 카타콤바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전설적인 순교기록은 그들을 도미틸라 및 같은 카타콤바에 매장된 순교성녀 페트로닐라와 결부시키고, 그들의 생시를 서기 1세기라고 해서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들 묘소위에 4세기 때 카타콤바를 밑바닥으로 하여 매우 흥미있는 삼신랑(三身廊)의 성당이 세워졌다. 이것은 로시에 의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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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원] Netherlands

유럽 북서부에 위치하는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 동쪽으로는 서독, 남쪽으로는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 4만 844㎢, 인구는 약1,431만명(1982년 추계)이다. 종교는 가톨릭 40.4%, 네덜란드 개신교 23.5%, 칼빈파 7.2%, 기타 5.3%, 무종교 23.6%의 분포를 보인다. 왕실은 네덜란드 개신교에 속하고, 위트레히트에는 가톨릭 대주교가 있다. 네덜란드는 종교개혁 이래로 칼빈주의가 깊이 뿌리를 내렸고 30년 전쟁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개신교 국가로 전환하였으나 그 후 네덜란드 개신교는 형식화되어 생명력을 잃어갔으며 18세기 중엽에 뮈퍼의 개혁 운동이 시작되어 독자적인 개신 교회가 설립되었다. 네덜란드에서 가톨릭은 오랫동안 적대시되어 왔으나 1795년 이래 개신교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남부 지방에 특히 우세하게 분포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8개의 교구가 있으며 가톨릭 신자수는 약 558만 1,000명(1982년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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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한] 內浦

충남 아산(牙山)에서 태안(泰安)까지의 평야(平野)지대를 일컫는 지명(地名)으로, 삽교천(揷橋川)과 무한천(無限川)의 두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중서부 지역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이 지역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내포의 사도(使徒)’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천주교가 널리 전파되어 그 후로 교세가 크게 번창했었고, 이존창, 김진후(金震厚), 성인 김대건(金大建)을 비롯하여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해 낸 곳이다. 김대건의 출생지인 합덕(合德), 이존창의 출생지인 여사울 등 유서 깊은 교우촌과 본당들, 그리고 해미(海美), 덕산(德山), 면천(沔川) 등의 순교지들이 이 지역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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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본당 [한] 內坪本堂

1896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 내평리(咸鏡南道 安邊郡 衛益面 內坪里)에 창설된 본당. 주보는 순교자의 모후(母后). 함경남도와 강원도 경계에 위치한 내평본당은 원산본당의 공소로 출발하여 1896년 불라두(T. Bouladoux, 羅亭黙)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의 총 교우수는 1,000여명으로 안변군과 강원도 평강, 회양, 강릉 등지를 관할했고, 1898년에는 1,400여명의 교우수에 총 공소수는 20개에 달하였다. 1899년에 불라두 신부가 사망한 후 투르니에(F. Tournier, 杜啓昌)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고, 1909년 뤼카(F. Lucas, 陸嘉恩)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 1920년 원산교구가 설정되어 내평본당이 원산교구로 이관될 때까지 11년간 사목하였다. 서울교구에서 원산교구로 이관되었을 때의 총 교우수는 1,076명이었는데 1921년 다페르나스(C. d’Avernas, 羅) 신부가 부임, 수년간 사목하였다. 그 후 1930년 교통이 편리한 고산역(高山驛, 地名은 新高山)으로 본당이 이전되어 이때 본당명도 고산(高山)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33년 포교 성 베네딕토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동(同)회의 수녀들이 본당 내에 시약소를 개설하여 운영했고, 노이기르크(P. Neugirg, 兪)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36년 4월 성당신축을 시작, 이듬해 6월 2,500평의 부지에 건평 122평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노이기르크 신부의 뒤를 이어 오트(C. Ott, 吳)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8.15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로트(L. Roth, 洪)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A. Schleic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R. Klingseis, 吉) 신부 등이 체포되고 이어 5월 11일 본당 주임 오트 신부, 포교 성 베네딕토수녀회 수녀들과 지도신부 다페르나스 신부가 체포되고 성당, 수녀원을 비롯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고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고산본당 관내에는 14개의 공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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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원 [한] 內赦院 [라] Sacra Poenitentiaria Apostolica [관련] 교황청법원

양심문제를 취급하는 교황청의 내정(內廷)법정. (⇒) 교황청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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