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덕동본당 [한] 內德洞本堂

청주교구 주교좌 본당. 주보는 성 가정. 충북 청주시 내덕동(淸州市 內德洞) 172의 2번지에 대지와 구가옥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개축하고, 1957년 7월 31일에 맥노튼(W. Mcnaughton, 羅吉模)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충청북도에 있는 많은 본당들의 경우와 같이 내덕동본당도 메리놀회 신부에 의하여 창설되었으며, 청주본당(수동본당의 전신)으로부터 분할된 성당이다. 1958년 청주교구의 설정과 동시에 그 관할로 된 이 성당은 당시 1,705명의 신자를 가지고 있었다.

1959년 대지를 더 사들여 교회부지를 2천 6백여 평으로 늘리고, 1961년 10월에는 272평의 현대식 대성당을 완공, 청주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또 이 해에 현 학생회관 자리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원 분원을 설치하고, 1977년 6월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김원택(金元澤, 프란치스코)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으며, 1983년말 현재 신자수 4,395명에 4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그 동안 이 본당을 맡았던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초대 맥노튼, 2대 설리반(R. Sullivan, 반예문), 3대 송신부(P. Reilly), 4대 설리반(재임), 5대 크람퍼트(F. Krampert), 6대 이중권(李仲權, 마태오), 7대 김광혁(金光赫, 베드로), 8대 권오정(베드로) 신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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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기도 [한] ~祈禱 [라] hora media

낮에 바치는 성무일도(聖務日禱)를 말한다. 3시경, 6시경, 9시경 중에서 낮시간에 가장 잘 맞는 시간경을 택하여 하나만 바칠 때에 이를 낮기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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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트칙령 [한] ~勅令 [라] Edictum Namnetense [영] Edict of Nantes

1598년 4월 13일 프랑스의 국왕 앙리 4세에 의해 선포된 칙령. 시민의 자유와 권리 및 위그노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으며, 1598년 4월 3일 왕에 의해 비준된 92개의 일반 조항과 5월 2일에 비준된 56개의 특별조항 및 3개의 칙령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신교와 구교의 대립으로 국내가 분열되고 혼란이 극심했으며, 앙리4세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스스로 구교로 개종한 뒤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는 한편 신교에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부여하여 종교 전쟁을 무마시킬 목적으로 선포한 칙령이다. 이 칙령은 신교도의 입장을 옹호하고 인정해 주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으나 이로 인하여 루이 14세 때에 다시 신교도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1685년 10월 17일 이 칙령의 폐지하고 그들을 박해하였다.

[참고문헌] J. Vienot, Historie de la reforme Francaise, t. 2, Paris 1926~1934 / J. Faurey, L’Edit de Nantes et la question de la tolerance, Paris 1926 / J. Orcibal, Louis XIV et les protestants, Paris 1951 / W.J. Stankiewicz, Politics and Religion in Seventeenth-Century-France, Berkeley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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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라] romanticismus [영] romanticism [독] Romantik [프] romanticisme [한] 浪漫主義

18세기 후반에 발생하여 19세기 전반 사이의 유럽을 지배한 모든 문화영역의 시조이며, 정신적인 태도이다. 이것은 감정을 억압하여 이성(理性) 중심의 보편적 인간성을 존중하다는 고전주의(古典主義, classicism)에 반대하고, 자아의 감정을 해방하되 인간과 공동체와 문화의 성장에 알맞는 전체성을 추구했으며, 넓은 의미로는 자연으로 돌아가 현실을 도피한 주관적 공상적인 세계로의 비약을 강조하였던 탓으로, 민족정신 또는 민족문화에 대하여 자신의 이념을 정치적으로 관철하는 현실감과 실행력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낭만주의라는 말은 고대와 분명히 한 금을 긋는 라틴계 여러 민족의 문학인 ‘로맨스’(Romance), 혹은 영국에서부터 사용된 말인데, 18세기 초기부터는 ‘소설에 나타난 것’, ‘중세적인 것’, ‘공상이 풍부한 것’ 등의 의미를 얻게 된 이 경향이 독일로 건너가서, 낭만주의 하면 독일이 고향인 것처럼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른바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그리고 자유주의사상의 발달로 문명 개화, 진보, 번영 추구의 사상이 번창하자, 그때까지 팽배해 있던 인간의 감정을 누르고 이성의 우위만을 긍정하는 고전주의의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문화적인 유행이 대조적으로 고개를 쳐들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啓蒙主義)와도 대립관계를 이루어, 빈켈만(J.J. Winckelmann)이나 레싱(G.E. Lessing)같이 정적(靜的)이고도 유행적인 것을 따랐던 것과는 달리 개성적인 직관에 의거한 감정과 공상을 존중하였다. 낭만주의는 또한 사유나 오성(悟性)에 의한 세계인식보다는 비합리적인 위력, 즉 생명의 실감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에 반대되는 낙천적이며 자기도취적인 시대 사조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칸트를 그 출발점으로 하여, 실재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계시와 이성 두 가지를 다 부정하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주관적이며 직관적인 경험에 의지하였다. 그들은 자연은 가시화(可視化)한 정신이며, 인간의식 속에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의 배경에서 작용하고 있는 창조적 힘인 절대정신(絶對精神)이, 자연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음을 믿었다. 헤겔은 인간 역사 속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정(正) · 반(反) · 합(合)의 변증법 위에서 이 절대정신을 창안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이 절대정신은 논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예술적인 것이었다. 종교적으로 보면, 낭만주의는 중세로부터 가톨릭적인 세계 즉 ① 그 보편주의, ② 국가나 교회에 대한 총괄적인 사고방식, ③ 가톨릭 문학과 예술 등을 섭취하였다. 루소, 비코(G. Vico, 1668~1744), 레싱, 그리고 디드로(Diderot)의 사상은, 후기 낭만주의자들의 밑바탕을 이루어 주었다. 더구나 실레겔(A.W. Schlegel, 1767~1845),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실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 등과 같은 중요한 낭만주의자들 중에서도 셀링(F.W.J. Schelling, 1775~1854)이 아마도 가장 대표적이고 심오한 철학을 말한 인물로 들 수 있겠다. 낭만주의는 사상으로는 관념론을, 윤리와 정치에서는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상징이라든지 신비사상에 의거하여 세계 해석을 시도하는, 즉 어떤 보편적인 형식보다는 자유로운 약동을 주로 하였기 때문에, 미래의 이상향을 상상의 세계에서 추구하였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이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는가 하면, 칸트, 괴테, 헤겔의 관념론 철학은 철학적으로 심화된 낭만적인 개념을 발달시켰는데, 특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피안적 염세적인 낭만주의가 당시의 유럽을 휩쓸었다.

낭만주의가 종교상에 끼친 영향 가운데 두드러진 업적은, 중세의 양식인 로마네스크 또는 고딕을 모방하면서, 일부는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1세(LudwigⅠ, 1825~1848)나 ‘옥좌의 낭만주의자’인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iedrich Wilhelm Ⅳ, 1840~1861)의 보호로, 새 교회건축물이 건조되고, 쾰른 대성당 같은 낡은 건물이 수리되었다는 점과, 나자레(Nazare)파가 종교적 및 그리스도교적인 회화의 혁신을 꾀했다는 점 등이다. 실라이에르마허는 낭만주의를 종교사상 위에서 전개하여, 종교의 본질은 사유라든지 합리적 행위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고, 유한 가운데서 무한을 포착하는 직관과, 우주만유의 인간심정, 즉 절대귀의(絶對歸依)의 감정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횔덜린(J.C.F. Holderlin, 1770~1843)은 “꿈꾸는 인간은 사유하는 인간보다 신에게 더 가깝다”고 갈파하여 인간의 고독을 슬퍼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찬양하였다.

[참고문헌] M. Joachimi, Die Weltanschauung der deutschen Romantik, 1905 / L. Avercrombie, Romanticism, London 1926 / L.A. Willoughby, The Romantic Movement in Germany, Oxford 1930 / M. Brion, Genie et destinee: Schuman et l’ame romantique, Paris 1954 / B. Brink 편, Deutsche Gedichte der Romantik, Heidelberg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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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회인 [한] 南懷仁 [관련] 페르비스트

페르비스트(Verbiest)의 한국명. ⇒ 페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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