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한] 南~共和國 [영] Republic of South Africa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줄여서 남아프리카라고도 부른다. 면적 122만1,037㎢에 인구 약 3,101만명(1982년 추계)인 이 나라는 1961년 이래 공화국이 되었다. 1910년부터 1961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영국의 자치 식민지였다. 인구의 약 6할이 아프리카인, 네덜란드인 후손, 위그노 후손, 독일 출신 정착자들이고, 아프리카아어(Afrikaans)를 쓰고, 나머지 약 4할은 영어를 사용한다. 15세기 말엽에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동방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른 것을 계기로 하여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돌로 된 십자가(padroes)를 세우고, 곶, 만, 항구 등에 가톨릭식 이름을 붙였는데, 아직까지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1951년에 남아프리카 교계제도가 설정되었으며, 4개의 관구, 18개의 주교구, 3개의 지목구 등 27개의 교구로 이루어져 있다. 가톨릭 신자는 약 214만명(1982년 현재)에 이르고, 본당이 628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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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철 [한] 南相喆

남상철(1891~1978). 성인 남종삼(南鍾三)의 손자. 평신도. 세례명 프란치스코.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 갈전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생후 1개월 만에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외가(外家)에서 자랐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통신강의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한 후, 충북 장호원(현재의 감곡)본당에서 운영하던 매괴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1921년부터 충북 음성군 감곡면 면장 겸 도(道)의회 의원으로 20여년 동안 재직했으며 광복 후 1947년에는 영친왕(英親王) 환국추진위원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영친왕의 귀국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교회사와 교회사적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어사강학(走魚寺講學)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한국 천주교의 요람지 주어사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경향잡지> 1962년 11월호에서 1963년 1월호까지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5명의 순교 선조를 가진 순교자의 후손답게 항상 봉사하는 자세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자손들에게는 사심 없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따르라고 가르쳤다. 1978년 7월 13일 노환으로 서울 삼양동 자택에서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의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족으로는 3남 5녀가 있는데 이들 중 3명은 현재 수녀로 있다. 주요저술로는 위에 언급한 <한국 천주교의 요람지 주어사의 발견>(경향잡지, 1962년 11월호~1963년 1월호)이 있다.

[참고문헌] 가톨릭시보, 제1111호, 1978.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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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교 [한] 南尙敎

남상교(1783~1866).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성인 남종삼(南鍾三)의 아버지. 충청북도 제천군 백운면 화당리(忠北 堤川郡 白雲面 花堂里) 출신.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충청목사(忠淸牧使), 돈령부사(敦寧府使)를 역임한 그의 입교시기는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는 않으나 일찍부터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을 지켜온 것 같다. 그의 아들 남종삼이 이른바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大院君)에 진언한 사실을 말했을 때, “너는 충성스러운 국민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너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네 사형선고 서명을 요구하면 천주교에 욕된 표현을 일체 지우도록 명심하라”고 하며 천주교 신앙에 대한 굳은 신념을 보였다. 아들이 서소문 네거리에서 순교하자 그는 고향에서 잡혀 공주(公州)감옥에 수감되었다가 84세의 고령으로 아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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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본당 [한] 南山洞本堂

대구 대교구 소속 본당. 현 소재지는 대구직할시 중구 남산 3동 225-1이며, 본당주보는 성 요셉이다. 1926년 5월 29일 당시 대구본당(현 계산동 주교좌) 관할이던 대명동과 남산동의 일부를 분할하여 주교관 구내에 있던 명동회관을 성당으로 개축하여 남산동본당을 신설하고 초대(1926~1928년) 주임신부로 석종관(石鍾寬,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1937년 2월 9일 대명동본당(大明洞本堂)으로 개칭하고 현 효성 여자중학교 자리에 2층으로 된 성당 건물을 신축, 이전하였다. 그 뒤 1952년 그 자리에 효성 여자대학이 설치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1953년 다시 남산동본당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2년 본당 관할 구역은 남산동 일부와 대명동 전역, 그리고 내당동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신자수는 1,641명으로서 이 중 180명이 공소 신자였다.

역대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2대(1928~1933년) 델랑드(Deslandes, 南) 신부, 3대(1933~1940년) 파이예(Pailet, 方) 신부, 4대(1940~1941년) 코르데스(Cordesse, 孔) 신부, 5대(1941~1945년) 파이예 신부, 6대(1945~1948년) 장병화(張炳華, 요셉) 신부, 7대(1948~1953년) 이종필(李鍾弼, 마리아) 신부, 8대(1953~1955년) 강찬형(姜贊亨, 파스칼) 신부, 9대(1955~1960년) 이성만(李性萬, 이냐시오) 신부, 10대(1960~1962년) 서정도(徐廷道, 벨라도) 신부, 11대(1962~1966년) 박재수(朴在秀, 요한) 신부, 12대(1966~1967) 강찬형 신부, 13대(1967~1972년) 신현옥(申鉉玉) 신부, 14대(1972~1976년) 박원출(朴元出, 토마스) 신부, 15대(1976~1977년) 김규태(金圭泰, 디모데오) 신부, 16대(1977~1982년) 최병선(崔炳璇, 요한) 신부, 17대(1982~1983) 장병보(張炳補, 베드로) 신부, 18대(1983~현재) 박상태(朴相泰, 루도비코) 신부로서 현재 신자수는 4,19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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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혁 [한] 南明赫

남명혁(1802~1839). 성인(聖人). 회장. 세례명 다미아노. 일명 문화. 성녀 이연희(李連熙)의 남편. 축일은 9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려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30세경 입교한 후로는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했고,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고는 더욱더 열심을 더해 이광헌(李光獻)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를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는 한편 ‘성의회’에 가입하여 신부를 보좌하며 신심운동을 일으키는 등 열심히 교회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 초 한 예비교우의 밀고로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고, 이 때 집에 숨겨둔 제의류(祭衣類) · 경본(經本) ·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서양신부를 체포하기에 혈안이 된 포청과 형조의 관헌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모든 형벌과 고문을 참아 냈고 아내 이연희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主)를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오”라는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후 5월 24일 이광헌을 포함한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려지길 원했던 남명혁은 자신이 순교한지 86년 후인 1925년 11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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