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윤 [한] 金玉允

김옥윤(1905~1978).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 한국연합회 3대 회장. 세례명 세자 요한. 수도명 요한 보스코. 1927년 경성전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경성 전기주식회사에 입사, 8.15광복 대까지 근무하였다. 1946년 중앙기공주식회사를 설립, 대표 이사에 취임하고 이어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대한 전기공사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교회활동으로는 1938년 장면(張勉), 정지용(鄭芝溶), 조종국(趙鍾國) 등과 혜화동본당에서 창설된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에 입회하여 1945년 종신서원을 했고, 6.25 전쟁 후 정체된 재속형제회의 재건을 위해 노력, 1961년 임시회장, 서울수련장에 선입되었다. 1962년 혜화동본당 총회장에 임명되어 1964년까지 혜화동본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1972년부터 1974년까지 프란치스코 서울형제회 회장, 1978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 한국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평생을 교회활동과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의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1980년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의 수련교재 《작은 형제들의 길》을, 1983년 노인용 큰 글씨 기도서를 발행하고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 새 수련교재의 간행을 준비하던 중 1984년 7월 25일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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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 [한] 金英烈

김영렬(?~1931). 간도(間島)지방의 첫 천주교인. 세례명 요한. 함경북도 온성(穩城)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공부,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곧 회의를 느끼고 오직 진리탐구에만 전념, 강도의 벽지인 서학대(棲鶴臺)에 은거하여 도학자(道學者) 김이기(金以器)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895년 스승 김이기가 동학당으로 몰려 체포되어 회령(會寧)감옥에서 옥사할 때 참다운 진리는 천주교에 있다는 유언을 듣고 즉시 천주교에 대해 알려고 남하, 원산에 이르러 베르모렐(Josephus Vermorel, 張若) 신부를 찾아가 천주교에 대한 토론 끝에 3주일 동안 세례준비를 한 수 1896년 성신강림절에 영세, 입교하였다. 영세 후 많은 성물과 성서를 갖고 서학대로 돌아가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에게 전교, 1896년 가을에 친척 2명을 원산으로 데리고 가 입교시켰고, 이어 1897년 초봄 ‘북관(北關)의 12종도(從徒)’로 불리는 12명의 예비자를 원산으로 인도하여 입교시켰다. 그 후 다시 간도로 돌아가 교우촌을 세우고 전교에 힘써 간도지방 천주교 발전의 초석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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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이 [한] 金連伊

김연이(?~1801). 순교자. 세례명 유리안나.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영세, 입교하여 강경복(姜景福) 등 주로 궁녀(宮女)들과 모임을 갖고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체포되어 그해 7월 2일(음 5월 22일)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을 비롯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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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상 [한] 金~ [관련] 김순성

⇒ 김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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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삼 [한] 金汝三

김여삼(?~?).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밀고자(密告者). 4형제의 3남으로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모두 교우로 박해를 피해 서울로 이주한 후로는 형제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냉담, 불량배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같은 고향 출신 교우 이안정(李安正) 등 많은 교우들을 위협, 금품을 갈취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총회장 최창현(崔昌顯)을 비롯 많은 교우들을 밀고하였다.

[참고문헌] 黃嗣永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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