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집 [한] 金~

김사집(1745~1802).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충청도 덕산(德山) 베방고지[菲芳]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청주(淸州)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과거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천주교가 들어오자 곧 입교, 그 후로 세속영화를 위한 학문을 버리고 오직 기도와 독서에 전념하였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교회서적을 베껴 나누어 주며 무지한 교우들과 외교인을 모아 교리를 가르쳤다. 1901년 신유(辛酉)박해 대 그가 베낀 많은 교회서적 때문에 체포되어 청주에서 교향인 덕산관아로, 덕산관아에서 다시 해미진영(海美鎭營)으로 이송되면서 잔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이겨냈고, 1802년 1월(음 1801년 12월) 해미진영에서 청주병영(淸州兵營)으로 이송된 뒤 사형선고를 받아 1802년 1월 25일(음 1801년 12월 22일) 청주 장터에서 곤장 81도를 맞고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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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일 [한] 金~

김사일(?~1815).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경기도 출신으로 청송(靑松)의 노래산(老萊山)에서 살았다. 1815년 부활축일을 지내던 중 고성대(高聖大) · 고성운(高聖云) 형제를 비롯한 35명의 마을교우와 함께 체포되어 경주진영(慶州鎭營)으로 이송된 후 그 곳에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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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건 [한] 金思健

김사건(?~1839). 순교자. 세례명 안드레아. 중인으로 충청도 서산(瑞山)출신. 1815년 을해(乙亥)박해를 피해 큰아버지 김강이(金綱伊), 아버지 김창귀(金昌貴)와 함께 경상도 머루산으로 피신해서 살고 있던 중, 하인의 밀고로 함께 잡혀 안동 진영에 수감되었다. 그의 큰아버지는 순교하고, 아버지는 보성으로 유배되었으나, 그만은 나이가 어려 석방되었다. 1827년 정해(丁亥)박해로 다시 체포되어 상주(尙州)진영으로 압송, 모진 고문을 받다가 다시 대구, 전주 등 감옥으로 끌려 다닌 끝에 기해(己亥)박해 때인 1839년 5월 26일(음 4월 14일) 대구에서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中, 분도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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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록 [한] 金保祿 [관련] 로베르

로베르 신부의 한국명. ⇒ 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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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 [한] 金範禹 [관련] 을사추조적발사건

김범우(?~1786).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 세례명 토마스. 서울의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다. 1784년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李檗)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입교한 후 매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가족과 역관 친구들을 가르쳐 입교시켰다. 1785년 봄 명례방(明禮坊, 현재의 明洞)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벽, 이승훈(李承薰), 정약전(丁若銓) · 정약종(丁若鍾) · 정약용(丁若鏞) 3형제 및 권일신(權日身) 등과 함께 종교집회를 갖던 중, 형조(刑曹)관리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함께 체포된 교우들은 모두 명문의 양반들이라 형조로부터 훈방되었으나 김범우만은 그대로 갇혀 온갖 형벌로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킨 끝에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도 공공연하게 신앙을 실천하며 전교하다가 1786년 가을 형조에서 받은 형벌과 고문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이로써 김범우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현 을지로 2가 명동성당 부근)은 한국 천주교회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의 장소가 되었다. 김범우가 체포된 사건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라 한다. (⇒) 을사추조적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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