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한] 騎士道 [영] chivalry

중세 유럽사회의 윤리적 이상이 되었던 바람직한 기사의 정신과 예의 등을 기사도라 하였다. 중세의 기사들은 전시에는 전쟁터에 나가 무공(武功)을 세움을 자랑으로 삼았고, 평화시에는 예의 바르고 용기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려 하였다. 특히 기사들은 신앙심이 깊어서 그리스도교의 모든 덕을 고루 갖추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기 위하여 가(假)그리스도들과 싸웠고, 필요하다면 칼도 들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정결을 지키고, 용기를 가졌으며, 부인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고, 관대한 아량을 가졌다. 기사도를 주제로 한 전형적인 문학작품은 영국의 ≪원탁의 기사≫, 프랑스의 ≪에렉과 에니드≫(Erec et Enide), 독일의 ≪그레고리오≫(Gregorius) 등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기사 수도회 [한] 騎士修道會 [라] Ordo militaris [영] military Order

일반적인 중세의 기사단이나 수도 단체와는 달리 이교도로부터 그리스도교 왕국을 수호할 군사적 임무와 수도자로서의 의무를 함께 서약한 중세의 특수한 수도 단체이다. 전투에 대한 게르만적 전통을 고수해 온 중세의 기사들은 그들의 무력을 선용하도록 촉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십자군전쟁을 일으키자 곧 기사 수도회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십자군에 의해 탈환된 성지를 수호하고 스페인에서는 이슬람 교도들을 몰아냈으며 동유럽에서는 이단자들을 개종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보기 드물게 근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 요한 기사수도회(Orders of the Hospital of St. John of Jerusalem)는 성지에서 병자와 순례자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기사 수도회는 1119년 위그 드 페이앙(Hugh de Payens)에 의해 창설되어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성전 기사수도회(Order of the Temple)와 역시 성지에 세워진 독일 기사수도회(Teutonic Knight)인데 후자는 뒤에 프로시아를 정복하고 개종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이론적인 면에서는 드 페이앙의 요청에 따라 를 쓴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가 기사 수도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세워진 기사 수도회들도 역시 성 베르나르도와 요한 기사수도회 및 성전 기사수도회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1158년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칼라트라바(Calatrava) 기사수도회를 비롯한 레용(Leon) 의 알칸타라(Alcantara) 기사수도회, 포르투갈의 오비츠(Oviz) 수도회, 아라곤(Aragon)의 몬테사(Mantesa) 수도회 등을 비롯한 대부분이 시토(Citeaux) 수도회와 제휴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 수도회의 융성도 예루살렘 성지의 함락과 이베리아반도의 통일과 더불어 그 빛을 잃게 되었으며 중세 말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왕들이 기존의 기사 수도회를 차츰 귀족의 명예단체로 변환시키자 근대 이전에 대개 사라지고 말았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기명학교 [한] 箕明學校 [관련] 성모보통학교

평양 성모보통학교의 전신. 1905년 9월 1일 평양 관후리 본당의 르 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가 설립한 남자 초등교육기관. (⇒) 성모보통학교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기림리본당 [한] 箕林里本堂

1940년 평남 평양시 기림리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평양 관후리(舘後里)본당이 커짐에 따라 1940년 1월 관후리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어 기림리를 중심으로 평양시의 서부지역을 관할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 메리놀회의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가 부임, 모란봉 밑의 폐쇄된 요양원을 인수하여 성당으로 사용하며 교세신장에 역점을 두고 사목했고,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해 클리어리 신부가 평양교구에서 사목하던 메리놀회의 신부들과 함께 일제(日帝)에 체포되자, 1942년 5월 춘천교구에서 파견된 김교명(金敎明)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김 신부도 부임 5개월만인 1942년 10월 진남포본당으로 전임되어 기림리본당은 관후리본당으로 이관되었으나 1943년 4월 홍도근(洪道根)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그 후 한도준(韓道俊) 신부가 4대 주임신부로 1945년 10월부터 1946년 9월까지, 조문국(趙文國) 신부가 5대 주임신부로 1946년 9월부터 1948년 9월까지 각각 사목했고, 1948년 10월 이재호(李載虎) 신부가 6대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나 이듬해 12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자 그 후로 본당도 폐쇄되었다. 기림리본당 내의 신심 단체로는 홍도근 신부가 조직한 남녀 청년회, 부인회, 성모성심회, 탈시시오복사회 들이 있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기리에 [라] Kyrie [그] Kyrie

자비를 구하는 기도. 그리스어 Kyrie eleison(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준말로, 미사 때에 참회예절 때, 대영광송 전에 드리는 기도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향한 간구이다. 초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서 Kyrios 주님은 신의 이름이고 성부와 동등하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고유한 칭호였다. 중세기에 와서 이 기도는 각각 세 번씩을 외어 삼위일체적 의미를 부각시켰고 그 중 둘째 번의 호칭을 그리스도께 귀속시켰다. 현재는 두 번씩 왼다. 신도들이 외기가 더 쉬운 까닭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