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멘스2 [라] Clemens, Alexandrinus

Clemens, Alexandrinus(150?~215?). 3세기의 교부. 알렉산드리아 초기 신학 학파의 대표적 인물. 아테네 출신으로 추정된다. 여러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와 철학을 배운 뒤 알렉산드리아 교리 문답학파의 지도자 판테누스(Pantaenus)의 제자가 되어 190년에는 그를 계승하였는데 202년 박해로 그곳을 떠났다. 당시는 영지주의(靈知主義)의 시대였으므로 종교적 지식 혹은 해명을 뜻하는 그노시스(gnosos)를 그리스도교적인 완성의 최고요소로 주장하는데 동의하였으나 그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의 ‘그노시스’는 사도에 의해 창립되고 신의 계시를 보유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반면, 그가 인류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고 본 그리스 철학의 이념들로써 교회 신앙을 설명하고 보완하였다. 로고스, 삼위일체의 제2위인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 이성의 근원이며 인간에 대한 신의 해석자이다. 그는 최고의 계시를 주기 위해 인간이 되었고 그를 통해서 인간은 불멸성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 성세와 성체 성사는 도구적인 것이다. 글레멘스는 무지와 실수를 죄보다도 더 근원적인 악으로 악으로 보았으며, 비록 인간이 모두 축복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지만, 최악의 실수일지라도 궁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인에게 주는 훈계》(Protrepti), 그리스도교인의 생활과 예법에 관한 《Paedagogus》, 그리고 《신변잡기연구들》(Stromatei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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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멘스1 [라] Clamens [영] Clement [관련] 글레멘스의 편지

Clemens, 1세(30?~101?). 성인, 교황(재위 : 88?~97). 별칭 로마의 글레멘스(Clemens Romanus). 사도교부(使徒敎父). 《제1 글레멘스의 편지》의 저자. 이레네오(Irenaeus)(Adv. haer. Ⅲ, 3, 3)에 의하면 성 베드로에서부터 3대째의 로마주교였다고 한다(Q. S. F. Tertulliannus, 기타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베드로 후계자로서 2대째 주교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필시 잘못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리제네스(Origenes)(Comm. in Joan. Ⅵ, 36) 이래로 그를 필립비서 4:3의 글레멘스와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었으나 그 진위(眞僞)는 분명치 않다. 또한 로마황제 도미시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의 종제(從弟)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 150?~220?)와 동일시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잘못임이 드러났다.

그의 중요성은 로마교회의 명의로 써보내진 《고린토인에 대한 첫 번째 편지》(제1 글레멘스서)가 그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 편지는 고린토 교회에서의 장로 배척운동에 대해 장로 · 집사 등의 사도적 전승과 그 권위를 주장하고, 장로의 추방을 철회하고, 회개하여 교회의 올바른 평화를 회복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당시 교회의 상황, 사상 등을 아는데 귀중한 문헌이다. 또한 그의 이름을 붙인 《고린토인에 대한 제2의 편지》 (제2 글레멘스서)는 그가 쓴 것이 아니고, 후에 로마 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이른바《가짜 글레멘스 문서》도 역시 동방에서의 그의 전설에 입각하여 후에 쓰여진 것이며, 그가 저작한 것은 아니다. 후대에 이르러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널리 유포되었다. (⇒) 글레멘스의 편지

[참고문헌] E. Caspar, Die alteste rom. Bischofsliste, 1925 / L. Sanders, Le Lellenisme de St. Clement de Rome et le Paulinisme, 1943 / H.v. Campenhausen, Kirchliches Amt u. deistliche Vollmacht in den ersten Jh. (BHTh 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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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회 [한] ~會 [라] Clarissae [영] Poor Clares

1212년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창설한 관상 봉쇄수도회이다.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건네받은 18세 소녀 글라라는 산 다미아노 (San Damiano)에 수녀원을 세우고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에 따라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수도회칙은 성 프란치스코가 이들을 위해 마련해준(formula vitae)것을 기초로 하여 성녀 글라라가 손수 작성하였고 1253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인가되었다. 글라라회가 유럽의 다른 나라로 진출하면서 초기의 수도회칙은 점차 이완되기 시작하였는데, 15세기 초 프랑스의 성녀 콜레트(St. Colette de Corbie)는 초기의 엄격성을 회복한 콜레트의 글라라회(Colettine Poor Clares)를 발전시켰다.

글라라회의 수도생활은 엄격한 성무일도, 관상기도, 정신 및 육체노동으로 이뤄지며 성식서원 수도회다. 이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속기도를 바치고, 참회를 위해 엄격한 봉쇄규범을 지킨다. 1960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786개 수도원이 있고 종신 서원자의 수는 1만 7,699명이 있다.

글라라 관상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72년 6월이다. 이보다 앞서 1960년 당시 광주교구장이었던 헨리 주교의 초청을 받아 196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한국 진출과 독립된 글라라회로 인준 받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글라라회는 1969년 23명의 수녀들을 서울에 파견하여 2년간 한국어 교육을 시킨 후 1972년에 제주도에다 수녀원을 개설하고 정식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1974년 건물을 신축하기 전까지는 이시도로 목장에서 임시로 거주하였고, 1980년에는 봉쇄 소성당, 외부성당, 수련소를 증설하였다. 총 회원수는 13명이고 제주도 남제주군 한림읍 금악리에 있다. 관상수녀회이므로 사도직 활동은 하지 않으며 다만 자급자족을 위해 회원들이 소규모의 목축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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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봉쇄수녀회 [한] ~封鎖修女會 [라] Ordo S. Clarae [영] Order of St. Clare

이 수녀회는 성 프란치스코 제 2회로서 1243년 성년 아시시의 글라라(Clara)에 의해 독일 레겐부르크에서 ‘보속의 여자수도원’으로 설립되었다. 엄격한 봉쇄를 지키는 이 회의 회칙은 1253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인가되고, 1260년 ‘성 글라라 수녀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수녀원의 특성은 글라라 성녀의 말대로 ‘가난한 동정녀로서 가난한 그리스도를 모시는 가장 고귀한 청빈생활과 고독 속에 침묵하고 기도하는 은거 생활 중에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한국 진출은 1980년 5월 서독 본원의 부원장과 현분원장 마리아 그라치아 수녀가 한국 진출을 위해 현지 답사차 방한(訪韓), 전주교구 소관인 전북 익산군 팔봉면 월성리의 해바라기 농장 일부를 수녀원 부지로 기증받음으로써 진출이 구체화되었다. 1981년 6월에는 임시수녀원 기공식이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집전으로 거행, 8월15일 수녀원이 축성되었다. 수녀들의 첫째 과제는 봉쇄수녀원의 특성에 맞추어 수녀원을 봉쇄구역과 외래객이 출입할 수 있는 성당과 응접실을 구분하여 숨은 생활을 보존시키고, 아울러 수녀원의 고유의 사명, 즉 지존하신 성체께 흠숭드릴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현재 서독의 모원(母院)의 회원수는 26명, 한국분원에는 5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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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관상수녀회 [한] ~觀想修女會 [영] Order of St. Clare [관련] 글라라회

⇒ 글라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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