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 [원] Klee, Heinrich

Klee, Heinrich(1800∼1840). 독일의 신학자. 뮌스테르마이펠트(Munstermaifeld)에서 출생하여 뮌헨(Munchen)에서 별세. 마인츠에서 교회사, 성서주석학(1824년)과 철학을(1825년), 본에서 교의신학과 성서주석학(1829년)을 가르치고 뮌헨(1839년)에서 묄러(J.A. Mohler)의 뒤를 이었다. 스승 리베르만(B. Liebermann)의 비합리적이고 보수적인 접근방법에 대하여 클레는 현대철학에 대한 개방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헤르메스주의(Hermesianism)에 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몇 권의 성서주석서 외에 저서로 ≪Die Beichte≫(Mainz 1827),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2v., Mainz 1837∼1838), ≪Katholische Dogmatik≫(3v., Mainz 183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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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렛 [원] Claret, Antonius Maria

Claret, Antonius Maria(1807∼1870). 성인. 축일은 10월 14일. 스페인의 가톨릭 성직자. 스페인의 살렌트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프롱프르와에서 세상을 떠났다. 직조공의 아들로서 청년시절까지는 바르셀로나의 방직공장에서 직조공 · 디자이너로 근무하였다. 1835년 비크(Vich)의 주교가 되었고, 1840년부터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설교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1849년에는 ‘성모성심애자회’(聖母聖心愛子會, Congregation of the Missionary Sons of the Immaculate Heart of Mary)를 창립하였다. 1850년 쿠바의 산티아고 드 쿠바의 대주교로 부임, 이 섬의 불우한 원주민에 대한 선교에 힘썼다. 1857년 스페인에 돌아와 여왕 이사벨라 2세의 고해사제(告解司祭)가 되었다. 카탈로니아 지방 빛 마드리드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의 가톨릭문학 출판을 위한 협회를 조직, 그 자신도 많은 집필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궁정에서의 그의 직위는 교권을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의심과 적의를 불러 일으켰으며, 1868년에 그는 스페인에서 강제 출국당하여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8∼1870)에 참석, 1870년 5월 31일 공의회 석상에서 교황무류성을 변호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는 프랑스 프롱프르와에 있는 시토수녀회 수도원에서 생애를 마쳤다. 1934년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諡福), 1950년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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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관상수녀회 [한] ∼觀想修女會 [관련] 글라라 관상수녀회

⇒ 글라라 관상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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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라] Clara [관련] 글라라

⇒ 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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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첨례표 [한] ∼瞻禮表 [관련] 첨례표

한국 교회에서는 19세기 중엽부터 한 장으로 된 축일표(祝日表)를 사용해 왔는데 이를 첨례표(瞻禮表)라 불렀다. 첨례표는 1911년 대구교구 신설 이후 각 교구마다 고유의 것이 만들어져 사용되었으나 1924년 경향잡지사에서 소책자로 된 <매일첨례표>(每日瞻禮表)가 간행되어 두 가지가 함께 쓰이게 되자 <매일첨례표>와의 구별을 위해 ‘큰첨례표’로 불리게 되었다. 큰 첨례표는 6.25동란 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C.C.K.)에서 각 교구의 양식을 통일, 하나로 만들어졌고 그 뒤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에서 ‘첨례’라는 용어를 ‘축일’로 개정하자 1969년 명칭이 <천주교회 축일표>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1973년부터 <천주교회 축일표>는 간행되지 않고 대신 <매일축일표>만이 간행되고 있다. (⇒) 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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