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주 [한] 崔昌周

최창주(?∼1801). 순교자. 세례명 마르첼리노. 경기도 여주(驪州) 출신. 원경도(元景道)의 장인. 1791년에 체포되어 광주감영(廣州監營)에 갇히었는데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그 뒤 이를 참회하고 더욱 열심히 천주를 믿어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리하여 1800년 10월에 여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감옥에서 3개월 동안 고생하는 가운데에도 함께 갇힌 신자들에게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교리를 강론하여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1801년 4월 25일(음 3월 13일) 여주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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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정 [한] 崔昌鼎

최창정(1937∼1984).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 요아킴.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남천리에서 출생.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61년 12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후암동본당 보좌신부로 첫 성직생활을 시작하여 1963년 7월 군종신부로 육군에 입대했고, 1971년 6월 예편과 동시에 이문동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1975년 서울대교구 재경분과위원에 임명되고 이듬해 이문동본당에서 청담동본당을 전임되어 레지오 마리에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1980년 9월 서독의 포교사목을 맡아 서독으로 건너갔으나 간암으로 귀국, 투병생활을 하던 중 1984년 11월 1일 강남 성모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용인교회묘지 내의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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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한] 崔昌根 [관련] 르장드르

르장드르(Le Gendre) 신부의 한국명. ⇒ 르장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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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혁 [한] 崔智爀

최지혁(1808∼1878).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선일(善一). 충청도 공주(公州) 출신으로 8∼9세 경 부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고 1846년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에게 영세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아내와 6남매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자 만주로 건너가 치푸(芝罘)에 머무르면서 리델(Ridel, 李福明) 주교를 보좌하며 ≪한불자전≫과 ≪한어문전≫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1872년부터는 조선을 왕래하며 선교사들의 조선입국을 준비하였는데 이 때 이아기(李阿只)와 재혼하였다. 1874년 귀국하여 선교사 영입을 위해 서울 새문[新門] 밖에 집을 마련한 뒤, 다시 만주에 다녀와 1876년 황해도 장연(長淵)을 통해 블랑(Bland, 白圭三) 신부, 드게트(Deguette, 崔東鎭) 신부를 맞아들였고 이듬해 리델 주교,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 등을 맞아들였다. 그러나 1878년 1월, 리델 주교와 함께 체포되어 이해 7월 14일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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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장 [한] 崔鍾張

최종장(1925∼1981). 기업인. 진덕(珍德)그룹 창설자. 세례명 요셉. 경상북도 대구(大邱)에서 출생. 1943년 대구공업중학교 3년을 중퇴하고 실업계에 투신하였다. 1949년 대구 계산동본당에서 영세 · 입교하고, 1951년 유정호(劉貞浩, 루시아)와 결혼하였다. 1966년 대구 매일신문사 이사(理事), 1967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서울사무소 소장 등을 역임한 후 1969년에는 진덕산업을 설립하고 이어 1973년 진덕발효주식회사, 1976년 칠포개발주식회사 등 자회사(子會社)를 설립했으며, 1979년 2월에는 진덕그룹을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하였다. 1980년 다시 도고온천개발주식회사를 설립, 기업을 확장시키고 1981년 6월 18일 국내 건설사업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석탑(錫塔) 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뿐 아니라 교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대구 삼덕동본당 총회장, 가톨릭실업인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말년에는 성소후원회를 비롯한 각종 교회단체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1981년 4월 교회와 사회에 대한 공로로서 교황청으로부터 기사대장의 칭호와 함께 성 그레고리오 십자훈장이 수여되었으나 병환으로 수여식이 연기되던 중, 이 해 12월 17일 간암으로 선종, 용인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평소 기업의 이윤추구보다는 기업윤리의 구현에 앞장서서, 1970년대 대다수 기업의 비인간 · 비윤리적인 이윤추구 현상을 비판, 배격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기업 운영으로 일관해 왔다. 또한 대구매일신문사옥, 서울대교구청, 강남성모병원, 성 라자로 마을, 성 바오로 서원 등 많은 교회건물을 지어 교회발전에 크게 공헌했고, 이 외에도 1970년대 교회와 정부 간에 정치적 경제적 마찰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 교회를 위한 중재자로 나서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1981년 12월 21일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장례미사에는 ‘평생 교회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추도사와 함께 성 그레고리오 십자훈장이 그를 대신한 장남 진국(珍國)에게 수여되었다. 유족으로 3남 4녀가 있고, 미망인 유정호 여사는 그의 교회 활동을 이어받아 성소후원회를 비롯한 각종 교회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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