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노주의 [독] Augustinianismus [한] ∼主義 [라] Augustinianismus [영] Augustinianism

아우구스티노(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사상은 교부학(敎父學)의 주요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교부들의 사상적 유산의 새로운 재구성(再構成)의 길을 거쳐서 유럽 중세의 사상권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동인(起動因) 역을 하고, 사상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의 전모(全貌)를 살피는 것을 피하고, 이른바 ‘아우구스티노주의’라는 보다 좁은 뜻의 개념만을 고찰하기로 한다. 우선 신학적 분야에서는 중세는 결정적으로 아우구스티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특히 그 대부분이 그의 텍스트를 인용함으로써 성립되는 롬바르도(Petrus Lombardus, 1100?~1160)의 ≪명제집≫(Sententiarum libri)에 의해 스콜라 학자들에게 신학적 사색의 기준을 제시해 주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노가 펠라지우스 논쟁에 의해 형성한 <은총론>은 교리사상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이지만 중세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충분히 계승 · 전개하지는 못했으므로, 좁은 의미의 아우구스티노주의에 의해서 종종 일면적(一面的)인 해석을 당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노파 수도회에 의해 대표된다. 그 전형적인 것은 9세기의 고트샬크(Gottschalk)의 이중예정설(二重豫定說)에서 볼 수 있는 은총론, 14세기에는 브래드와딘(Thomas Bradwardine)의 신학적 결정론에서 짙은 영향을 받은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사상이며, 더 나아가 17세기의 얀센주의에서도 볼 수 있다. 철학적 방면에서는 13세기 아우구스티노주의의 영향은 지배적이었다.

13세기를 포함해서 그 이후의 철학에도 아우구스티노주의의 흔적은 짙다. 특히 인식론에서는 그의 조명설(照明說)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과 전개가 있었다. 즉, 자연적 인식도 직접적인 신적 조명에 의해 성립되며, 그 때 신은 아비첸나(Avicenna)의 이른바 능동이성(能動理性)의 기능을 써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노적 조명설을, 개념은 추상에 의해 경험에서 얻어진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추상설에 결합하는 경향도 있었다(Alexander Halesius 및 Bonavetura 등). 또한 아우구스티노주의적인 형이상학으로서 아비체브론(Avicebron, 1020?~1058?)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주의 해석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주의에서 의지는 지성보다 우위를 유지한다고 하는 주의주의(主意主義)가 제창되고, 따라서 신의 지성적 인식에서보다는 신의 사랑에 있어서 영원한 지복(至福)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주의의 주요한 대표자로는 기욤 도베르뉘(Guillaume d’Auvergne, 1180?~1249), 크레모나의 롤랑(Roland, 13세기), 생 빅토르의 후고(Hugo, 1096~1141), 라로셀의 요한(Joannes),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21~1274),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 아콰스파르타의 마테오(Mathaeus, 1235?~1302), 페캄(John Pecham, 1210?~1292), 라마르의 기욤(Guillaume), 마르스톤의 로제(Roger) 등을 들 수 있다. 13세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우위성을 볼 수 있는 것 같지만, 아우구스티노주의는 지속적으로 스콜라학의 근저에 존재하면서 중세 말기에서 근대에 걸쳐 플라톤 부흥과 함께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참고문헌] J. Riviere, Le dogme de la redemption chez saint A., Paris 1928 / E. Krebs, Sankt Augustin, Koln 1930 / H.I. Marrou, S. Augustin et l’augustinisme,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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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수녀회 [한] ∼修女會

가장 알려진 것으로 성모승천회(Augustiniani Assumptionis), 넓게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참사수녀회(Canonesses Regular of St. Augustine)이다. 비르지타회(Virgittinae) 등처럼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회칙을 따르는 모든 수녀회를 포함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아우구스티노회 제1회에 의해 창설되었거나 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녀회를 말한다. 이들 중 대표적인 제2회는 1264년 네카르(Neckar)의 오베른도르프(Oberndorf) 봉쇄 수녀들이 남자 아우구스티노회 독일 관구 관할에 놓이면서 탄생되었다. 이들은 대개 독립적인 대수도원을 이루고 엄격한 봉쇄생활을 하였다. 1599년 스페인에서 환(Juan de Ribera) 대주교는 맨발의 아우구스티노회를 창설하였는데 그 뒤 스페인의 개혁가들(아우구스티노 레콜레티회)은 수녀들의 교육활동을 개발하고 이것을 외국에 성공적으로 소개하였다. 1965년에 제2회는 이탈리아에 28개와 스페인에 46개 등을 포함, 모두 93개회가 있었다. 현재 전세계에 4,701명의 종신서원자가 있다(1983년 교황청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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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 [라] Augustinus

① 아우렐리오~(Aurelius A., 354~430). 성인. 히포(Hippo)의 주교. 교회학자. 축일 8월 28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agaste) 출신. 모친 성녀 모니카(St. Monica)가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그는 신앙의 분위기에서 성장, 카르타고대학에서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했는데 이 당시 그리스도교를 떠나 정신적 방황을 하였다. 15년간 지속된 방탕생활에서 아데오다투스(Adeodatus)라는 아들을 보게 되었다. 치체로(Cicero)의 ≪Hortensius≫를 읽고 감명받았으며(373년), 마니교를 통해 진리를 얻으려고 9년간이나 시도, 383년에는 수사학 교사로 로마에 갔다. 이듬해 밀라노로 이주, 성 암브로시오와의 해후로, 그의 영향,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성 바울로에 대한 독서를 통해 개종을 결심, 카시치아쿰(Cassiciacum)에서의 침잠 후 387년 부활 전야에 세례받았다. 388년 타가스테에 일종의 수도원을 세우고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규칙을 만들었다. 391년 고향의 연로한 주교 발레리우스(Valerius)에게서 서품, 수도원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곧 아프리카 교회문제의 중요인물이 되어 395년 발레리우스의 보좌주교를, 396년부터 사망 때까지는 그 곳 주교를 지냈다.

그의 탁월성은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에 있다. 사제기간 중 크게 3가지의 이단 즉, Donatus 이단, Pelagius 이단, Manichaeism 문제와 대결, 이를 통해 자신의 신학을 형성하였다. 교회와 성사, 성사적 은총 등의 문제와 관련된 교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이를 통해 서양신학이 형성되었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구성원들의 상호 자선행위를 통해 하나를 이루며 그 구성원 때문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 신성하다. 교회 안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모두 있으며 최후의 심판 때까지 악한 자는 남아 있을 것이다. 교회 밖에도 선한 이들이 있지만 죽기 전에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성사의 집행에 있어서의 ‘합법성’과 ‘규칙’ 사이의 구분을 발전시켰다. 속권을 신국(神國)의 일부로 받아들이나 그것은 진정한 신에 대한 숭배와 정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한에 있어서이며, 이단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의 조력을 인정하나 사형제(死刑制)는 간곡히 금하였다. 후기에는 펠라지오주의 논쟁에 종사, 타락과 원죄, 그리고 예정설(豫定說)에 대한 교의를 발전시켰는데 특히 예정설은 말기의 저서에서 형식을 갖추어 뒷날에 루터 ·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단과의 논쟁을 통한 저서 외에 ≪고백록≫(告白錄, Confessiones, 400?)과 ≪신국론≫(神國論) 등의 대작이 남아있는데, 전자는 개종까지의 자서전이며, 후자는 로마가 알라릭에 의해 함락(410년)된 이후에 씌어진 최초의 역사철학서이다. 방대한 ≪삼위일체에 관하여≫(De Trinitate)와 자신의 문학작품을 정리한 ≪Retractation≫ 등도 전하고 있다. 후대 철학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실로 지대하여서 중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철학의 전 내용과 서양 신학의 현재의 모습을 결정짓게 하였다.

② 캔터베리의~(A. Cantuariensis, ?~604). 성인. 주교. 축일은 5월 27일. ‘영국의 사도’로 불린다. 로마 태생. 로마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성 안드레아 수도원 원장으로 있던 596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명을 받고 앵글로 색슨 민족의 그리스도교화를 위해 30명의 수사와 함께 영국 켄트에 파견되어, 597년 캔터베리 주교, 603년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결혼 전부터 그리스도 교도였던 켄트왕 에델버트의 비(妃) 베르타의 도움으로 국왕으로부터 특별한 편의를 제공 받아, 전도 수개월만에 그리스도교는 공인(公認)되었다. 국왕을 위시한 많은 국민이 그리스도교도가 되어 결국 켄트는 그리스도교국가가 되었다. 그는 유스토(Justus)를 로체스터주교로 앉혀서 메드웨이 강 서쪽의 전도를, 멜리토(Mellitus)를 런던 주교로 앉혀서 이스트 색슨족의 전도를 각각 맡아보게 하였다. 유해는 캔터베리에 있는 성 베드로 및 성 바울로 대수도원에 안장되었고, 이 수도원은 후에 성 아우구스티노 대수도원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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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스딩 [관련] 아우구스티노

⇒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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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원] Asia

대륙 중에서 제일 광대한 대륙으로 면적 4억 440만 5,618㎢, 인구 약 27억 3,217만명(1982년 추계)이다. 아시아는 높은 산맥이 많아 기후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아시아의 29분의 3은 북극해 지역에, 20분의 1은 열대에 4분의 3은 온대성 기후에 속한다. 인종으로는 퉁그스족, 티베트-지나족, 인도-이란족, 몽고족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한자(漢字)와 유교사상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중국문화가 중국 · 일본 · 한국 · 월남의 문화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티베트 · 몽고 · 캄보디아 · 버마의 문화 형성에도 기여하였다. 그 다음으로 아시아지역의 문화 형성에 기여한 문화는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한 인도문화였다.

이 지역에서의 그리스도교 전파는 이 대륙이 너무 광대하고, 쉽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많은 민족이 고도의 독자적인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12사도 중에서 성 토마스(St. Thomas)가 중국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했다는 주장은 오늘날 근거가 없는 것으로 부인되고 있으며, 그가 인도에 있었다는 사실도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지역에 대한 포교의 물결은 간헐적으로 있었으나 그나마도 14세기의 처참했던 흑사병(1346~1353년)의 창궐로 2500만 명의 유럽인이 사망하고 2,300만 명의 아시아인이 떼죽음을 당하여 그 때까지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아시아지역의 가톨릭 세력이 거의 전멸해 버리고 말았다.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하여 아시아에 대한 가톨릭 포교가 본격화 되었다. 초기의 가톨릭 포교에는 포르투갈 · 스페인, 17-18세기에는 네덜란드와 파리외방전교회(M.E.P.) 소속 선교사들이 많았다. 포르투갈 프라치스코회에서 세일론과 말레이 반도에 복음을 전파한 것은 1511년이었고, 이어 1533년에는 아프리카 전부와 극동(極東)을 포함하는 교구를 고아(Goa)에 세웠으며(1533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rancis Xavier)가 예수회와 함께 1544년 인도에 들어갔다. 사베리오는 그 뒤 일본을 거쳐(1549년) 중국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상륙 직전에 죽고, 중국에 대한 포교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를 중심으로 한 예수회의 열성으로 크게 발흥하였으나, 스페인 출신의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소속의 선교사들이 예수회의 포교 방식에 크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명한 중국의 의례 논쟁을 야기하게 되었다.

1622년 교황청은 포교성성(布敎聖省, Congregation for the Propagation of the Faith)을 세워 포르투갈의 관할 하에 있지 않은 교구는 지역 성직자에게 위임하도록 하였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활동은 1663년에 시작되어 그 이듬해에 로마의 인준을 얻었다. 18-19세기에 들어와서 아시아의 지역 국가에서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전통사상의 완강한 저항이 일어나, 이를 두둔하는 정치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박해가 가해지기도 하였고, 구미 선진국가의 아시아지역 국가에 대한 식민지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본토인에게 재치권(裁治權)을 부여하는 여러 조치가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나왔으니, 그것은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한 (1919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한 (1926년) 칙령 등이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2차 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얻었으나 중국 본토 · 월남 · 베트남 · 북한 등이 공산화되어 신앙의 자유를 잃고 교회의 종소리는 침묵하고 있다. 이 지역의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6,698만 9,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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