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영] Franciscan Missionary Sisters of Assisi [한] ~傳敎修女會

1730년 1월 2일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에서 창립된 수녀회, 1980년 한국 진출. 1903년까지 질리오 프란치스코 수녀회로 반(半)관상적 생활을 하다가 1905년 전교 및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현재의 명칭은 1934년 7월 30일 성 프란치스코 수도3회에 가입하면서 개칭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이 가난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생활을 통해 예수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한다는 정신으로 1980년 7월 31일 꼰벤투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당시 부산교구장 이갑수(李甲秀) 주교의 주선에 의해 내한하였다. 현재 서울 종암동에 있는 임시 본원과 부산 대연동에 보육원인 프란치스코의 집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원장 마리아 미아텔로(Maria Miattelo) 수녀외 많은 회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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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스 [라] abbas [영] abbot [관련] 고위성직자

대수도원장(大修道院長). 의전(儀典) 사제 수도회와 대수도원의 장에 대한 호칭이자 직함. 동방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이자 영성적 스승을 ‘아빠’(abba)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특히 성 베네딕토의 수도회칙에 의해 서방 수도원에 소개되었다. 이를 분류해 보면, 그 수도원 내에서만 완전한 재치권(裁治權)을 향유하는 일반 아빠스(abbas regularis de regimine), 수도원이 속해 있는 특정 지역 전체의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에까지 실제적 재치권을 갖는 면속(免屬) 아빠스(abbas nullius), 한 수족(修族)의 장을 가리키는 총아빠스(archiabbas), 근대에서 베네딕토 연합회의 장을 가리키는 수석 아빠스(abbas primus) 등이 있다. 여성형은 ‘아빠티사’([라] abbatissa, [영] abbess)이다. (⇒) 고위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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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시니아 교회 [한] ~敎會 [라] Ecclesia Abyssinia [영] Abyssinian Church

이디오피아의 가톨릭 교회를 지칭한다. 4세기경 티레(Tyre)의 성 프루멘시오(Frumentius)와 에데시오(Edesius)에 의해 아비시니아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데서 유래한다.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수도대주교(metropolitan bishop)에 의해 이디오피아식 전례 양식에 따른 미사가 행해진다. 가톨릭 교회의 전례와 카논법은 아비시니아 교회의 전승들로부터 채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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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시대 교황 [한] ~時代敎皇 [영] Avignon Popes

1309년부터 1377년까지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교황좌에 올랐던 글레멘스 5세,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글레멘스 6세, 인노첸시오 6세, 우르바노 5세, 그레고리오 11세 등 7명의 교황을 아비뇽시대 교황 혹은 아비뇽 유폐기의 교황이라 한다. 신정적인 국제국가의 건설을 바랐던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세계 지배의 야망에 차 있던 프랑스의 필립왕과 싸워 패함으로써(1309년), 교황권에 대한 프랑스의 입김이 강해지고, 그 뒤 프랑스인의 추기경 수가 증가하면서 교황도 프랑스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글레멘스 5세는 교황이 되면서 로마로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리용에서 착좌식을 거행하고 1309년에는 그의 거처를 아비뇽으로 정함으로써 아비뇽시대가 개막되었다. 그 결과 어느 민족에게도 중립적이었던 보편적 교회가 야심적인 프랑스 군주의 입김을 받아 프랑스의 이익을 옹호하기도하여 후에 서구 대이교의 발생에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황직과 교회권위에 가장 심각한 타격이 되었던 것은 개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부당한 금전 징수였다. 이로 말미암아 교황청의 위신이 상당히 추락되고, 교회의 위계질서와 교황의 수위권을 부정하는 경향마저 대두되어 종교개혁과 공의회 우위설이 발흥하기도 하였다. 아비뇽시대 교황 7명 모두는 프랑스인이었고, 교황청이 로마로 돌아온 뒤 1379년에서 1411까지 아비뇽에서는 제네바의 로베르트(Robert, 대립교황 글레멘스 7세), 루나의 베드로(Petrus, 대립교황 베네딕토 13세) 등이 교황을 참칭(僭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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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원] Abraham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구약시대 성조. 기원전 20-19세기에 유프라테스강변 갈대아지방의 우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테라가 붙여준 이름은 아브람(Abram)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아내 사라와 조카 롯, 그리고 다른 식솔들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2:4). 99세가 되자 야훼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Abraham)이라 개명(改名)하였고, 그를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삼을 것을 약속하였다(창세 17:1-5). 하느님은 약속대로 그가 백 살이 되던 해 아들 이사악을 낳게 해 주셨고(창세 12:1-5), 또 다시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게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그의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 함으로써 그의 믿음을 드러내었다(창세 22). 175세에 그는 그의 재산을 이사악에게 물려주고 죽음을 맞이하였다(창세 25).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 최초의 위대한 족장(族長)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려졌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두 가지 주제, 즉 땅의 자손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과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믿음이라는 주제가 일관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인한 계약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관철되었고, 확대 재해석되었다. 초기의 교부들, 특히 로마의 글레멘스와 암브로시오는 고향을 떠나 가나안을 찾아 나선 순종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고, 아우구스티노는 이것을 개인의 소명의식의 전형적인 경우로 보았다. 테르툴리아노, 오리제네스 등은 이사악의 희생을 그리스도 희생의 예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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