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리본당 [한] 西井里本堂

평택 본당 관할의 공소로 출발한 서정리는 성녀 소화 데레사를 주보로 모시고, 이 지방의 중심에 위치하여 날로 교세가 발전함에 따라 1932년 5월, 몰리마르(Josephus Molimard, 牟) 신부가 평택본당 신부로 있으면서 이곳에 본당을 세우기 위하여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松炭面) 서정리에 대지 200평을 구입, 근방 20여 공소의 성금을 모아, 1934년 10월에 연와조 57평의 성당과 사제관을 세웠다. 몰리마르 신부는 평택에 주재하면서 주일마다 이곳을 찾아와 미사를 드리다가 1938년 10월에는 프랑스인 교우들의 지원으로 고딕식 100평의 현 성당과 65평의 사제관을 짓고, 그 자신이 서정리본당의 신부로 옮겨와서 1947년 8월까지 사목활동에 열중하였다.

그 뒤 클리어리(Patrick Cleary, 吉) 신부가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는데 6.25 동란으로 귀국하니, 한때 사제 없는 본당이 되기도 하였다. 1952년 7월 유수철(柳秀徹, 도미니코)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교육사업에 뜻을 두고 야간학교를 개설하였다. 1953년 5월 유 신부는 효명중학교(曉明中學校)를 설립하고 1955년 미839부대의 지원을 얻어 285평의 교사를 증축, 그 뒤 고등학교까지 병설하여 실업계 공업학교를 거쳐 종합학교로 발전시켰다. 1961년 4대 강원유(康元裕, 요한) 신부를 거쳐, 윤병희(尹炳熙, 바오로) 신부가 5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자 1962년 12월 ‘레지오 마리에 샛별 꾸리아’를 창단하여 지도신부를 겸하였다. 1963년 김덕제(金德濟, 치릴로) 신부가 6대 신부로 재임 중 수원교구에 편입되었다. 이 본당에는 현재 2,019명의 신자가 있고, 공소는 8개소이며, 배문한(裵文漢, 도미니코) 신부가 13대의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그 동안 이 본당을 맡았던 주임신부는 1968년 유진선(柳眞善, 레오) 신부, 1970년 장금구(莊金龜, 크리소스토모) 신부, 1971년 강주희(姜周熙, 방그라시오) 신부, 1975년 조원규(趙源奎, 야고보) 신부, 1977년 한종훈(韓鍾勳, 스테파노) 신부, 1981년 최경환(崔敬煥, 마지아) 신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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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도 [한] 徐廷道

徐廷道(1866-1964). 대구교구 소속 신부. 교회음악가. 세례명 베르나르도. 경상북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다. 1911년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수업을 닦던 중 1914년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 창설과 함께 성 유스티노신학교에 편입,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한편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德望) 신부와 페셸(Peschel, 白鶴老) 신부에게 오르간과 음악이론을 배웠다. 1923년 5월 26일 사제서품을 받고 1년간 부산 범일동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한 후, 안동본당 주임(1924-1937년), 고성본당 주임(1937-1942년) 대구교구 부주교겸 계산동본당 주임(1942-1944년), 문산본당 주임(1944-1948년), 함양본당 주임(1948-1950년), 화원본당 주임(1950-1954년) 등을 거쳐 1954년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남 감목대리구가 설정되자 부감독에 피임되었다. 그러나 1954년 12월 대구교구장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가 사망, 후임 교구장에 경남 감목대리구장이던 서정길(徐正吉, 요한) 신부가 임명되어 이듬해 주교로 성성되자 다시 대구교구 부주교에 피임되었고, 이어 상서국장에 피임되었다. 그 후 남산동본당 주임(1960-1962년)을 거쳐 1962년부터 경북 경산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중 1964년 11월 지병인 위궤양으로 경산본당 소속 용성공소에서 휴양하다가 11월 23일 선종하였다. 유해는 대구교구 주교관 내의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서정도 신부는 바쁜 사목활동 중에서도 많은 성가를 작곡, 1924년 간행된 ≪조선어성가집≫에 그가 작곡한 <무변해상새 별>, <오주예수 천주심을>, <너에게 하례하오니> 등이 실려 있고, 이외에 <교우로다>, <죄인의 바람이신>, <오 만나여> 등의 성가를 작곡하였는데 작곡활동 시기가 1917년을 전후한 시기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한국인에 의한 서양음악 작곡의 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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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길 [한] 徐正吉

徐正吉(1911~1987). 제7대 대구(大邱) 대교구장. 대주교. 세례명 요한. 경남 울산군 두서면 미호동에서 출생. 1932년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 중등과 · 철학과를 거쳐 1938년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부산 청학동본당 주임신부, 1943년 부산 범일동본당 주임신부, 1945년 대구교구 경리부장, 1948년 대구 계산동본당 주임신부, 1954년 경남(慶南) 감목대리 겸 부산 범일동본당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고, 1955년 제7대 대구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해 9월 15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1962년 3월 한국 교회의 교계체제가 확립됨과 동시에 대구교구가 대(大)교구로 승격되자 이해 7월 5일 대주교로 서임되었고 이어 1965년까지 제2차 바티칸공의회 1·2·3·4차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972년 이문희(李文熙) 신부를 보좌주교 겸 총대리로 임명, 대구 대교구의 행정을 맡게 하였다.

1955년 대구교구장으로 임명된 이후 현재까지 많은 수도회와 수녀회를 대구 대교구로 초치, 전교와 교육을 전담시켰고 또 부산(釜山)교구, 안동(安東)교구 등을 분할, 독립시키는 등 대구 대교구와 한국 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 : 서정길 대주교는 1987년 4월 7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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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권논쟁 [한] 敍任權論爭 [라] Controversia de investituris [영] investiture controversy

황제나 제후 등 평신도인 영주가 대수도원장이나 주교로 선출된 자에게 반지나 주교지팡이를 수여하며 축성(祝聖) 전에 충성의 맹세를 받는 권리에 대한 논쟁. 11세기말에서 12세기초에 걸쳐 일어났지만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간의 투쟁은 실제적으로 13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자체가 봉건영주인 고위성직자는 신하가 영주로부터 봉토(封土)를 부여받고 충성의 맹세를 바치던 봉건시대의 관습에 따라 서임식을 통해 세속재산을 물려받았으나 여기서 사용된 상징물들이 다의적(多義的)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어서 물의를 빚었다. 교황 니콜라오(Nicolaus) 2세는 로마 공의회(1059년)에서 이것을 단죄하였고, 1075년 이후 1076, 1078, 1080년에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7세(재위 : 1073- 1085)는 평신도에 의한 모든 성직서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Heinrich) 4세 사이의 분쟁은 광범위한 정치문제를 야기시켰으며 흡사 교회와 제국간의 투쟁 양상을 띠었다. 특히 파문된 황제의 카노사(Canossa)에서의 참회(1077년)는 한때 교황의 우위를 입증하는 듯이 보였다. 영국에서는 성 안셀모(St. Anselmus)와 헨리(Henry) 1세 사이에서 이 논쟁은 첨예화되어 충성맹세와 평신도에 의해 서임된 주교에 대한 축성을 거부한 안셀모에 대하여 런던 교회회의를 통해 헨리왕은 성직자의 서임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교회의 수입재산을 위한 충성선서만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트로예(Troyes) 공의회(1107년)에서 명확히 평신도의 성직서임이 금지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 합의는 보름스(Worms) 정교조약(1122년)에서 내려졌으며, 제1차 라테란 공의회(1123년)에서 재확인되었다. 이로써 황제나 봉건영주는 서임식에서 반지와 지팡이 대신에 홀(笏)을 통해 세속재산을 하사하는 데서 주교직에 내리는 속권과 성스런 권한이 구분되었다. 그러나 고위성직자의 선거에 통치자가 반드시 입회하게 함으로써 선거에 있어서 정도는 다르지만 속인 통치자들의 영향력이 암암리에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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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식 [한] 誓願式 [라] ritus professionis [영] profession rite [관련] 서원

수련기를 마친 수도지원자는 수도서원을 함으로써 비로소 정식 수도자가 되는데, 그 때의 의식을 서원식이라고 한다. 단순서원수도회(congregatio)에서는 1년 이상의 수련기를 거쳐야 서원식에서 서원을 할 수 있고, 성식서원수도회(ordo)에서는 단순서원 후 3-4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서원식의 전형(典型)은 6세기 베네딕토가 만든 수도회칙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당시의 규정은 전례적인 점에 중점을 두었다기보다는 법률적인 점에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7세기 이후에는 서원식이 주로 미사와 함께 거행됨으로써 전례적인 요소가 늘어나게 되었다. 10세기에 이르면 서원식이 <로마노-게르만 주교 예식서>(Romano-Germanium Pontificale)의 영향을 받아 성인의 호칭기도 중에는 부복(俯伏)하는 등 서품식의 요소들도 많이 포함하게 되었다. 현재의 서원식은 수도회의 규정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질문과 응답, 서원자를 위한 기도, 성인호칭기도, 서원문 낭독, 서원표지 수여, 장엄축복(sollemnis consecratio), 평화의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성사경신성성에서는 이러한 서원식의 절차를 교령 <프로페시오니스 리투스>(professionis ritus)를 통하여 공인한다. 최근 이 교령은 1970년,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한편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a Concilium)을 통하여 미사 중에 서원식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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