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한] 西士

신부(神父)를 지칭하던 옛말. 원래 중국인(中國人)들이 사용했던 말로 천주교(天主敎)를 서양(西洋)에서 전래된 종교라 하여 서교(西敎)라 부르고 그러한 서양의 종교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신부들을 서사라고 불렀다. 예컨대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서양교사(敎士)인 서사와 중국의 학자인 중사(中士)와의 대화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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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조 [한] 徐丙朝

徐丙朝(?-1952). 세례명 베드로. 대구지방 교회 초창기의 큰 공로자이며 대구지방에 복음의 씨앗을 가져온 서상돈의 아들로 태어났고, 대륜학교(大倫學校,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우리나라 인재 양성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다년간 대구 계산동본당 평의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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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교회 [한] 西方敎會 [관련] 라틴전례 로마교회

⇒ 로마교회, 라틴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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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몰례 [한] 徐沒禮 [관련] 볼리외

볼리외(Beaulieu) 신부의 한국명. ⇒ 볼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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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만자 [원] Sivang [한] 西灣子

중국 내몽고(內蒙古)에 있는 마을. 북경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 고을에는 일찍이 프랑스 계통의 라자리스트(Lazaristae)회가 진출하여 전교함으로써 주민의 거의 다수가 가톨릭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에 입국하고자 하는 선교사와 조선 교우와의 연락이 이곳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조선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주교가 조선 입국을 시도하기에 앞서 1834년 10월 이 곳에서 모방(Maubant, 羅) 신부를 만난 후 조선으로 향하던 중 펠리쿠(哵唎溝, Pie-li-Koou)에서 선종하였고, 제2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도 조선 입국에 앞서 1837년에 이곳에 들러 조선 교우와의 연락을 취한 뒤 조선에 입국하였으며, 페레올(Ferreol, 高) 신부도 1840년에 여러 차례 이곳에 들러, 앞서 이 곳을 경유하여 조선에 입국한 앵베르 주교의 서신을 받은 바 있으며, 1842년에야 조선 교우들과의 연락이 이루어져 기해(己亥) 대박해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어 1843년 제3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1845년 드디어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서만자는 조선교구의 초대 교구장에서 3대 교구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성직자가 이곳에서 조선교회와의 연락을 가져, 그 곳으로부터 출발하여 조선에 입국한 초기 조선교회와는 매우 인연이 깊은 곳이다.

[참고문헌] Ch. Dallet,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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