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수녀회 [한] ∼修女會 [영] Salesian Sisters

① 창립 : 정식명칭은 Daughters of Mary Help of Christians이다. 1872년 이탈리아의 신부 성 보스코(Giovanni Bosco)와 성녀 마자렐로(Maria Dominica Mazzarell)가 함께 이탈리아의 모르네제(Mornese)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의 여성 종교단체. 공동 창립자 보스코는 “청소년 교육 여하가 장래 사회의 건전성을 좌우한다”는 것을 믿고 청소년을 위한 살레시오

대가족(살레시오 수도회, 살레시오 수녀회, 살레시오 협력자회)을 창설하게 되었는데, 그중 이 수녀회창립은 마자렐로를 비롯한 11명의 서원자가 그가 작성한 회헌 아래 이루어졌다. 이 회의 기본정신은 보스코와 마자렐로의 영성을 본받아, 성체, 도움이신 마리아, 그리고 교황께 대한 3대 신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내게 영혼들을 주시오. 그 밖에는 모두 가져가시오”라는 모토 아래 특히 불우한 여성교육에 힘쓰고 있다.

② 한국진출 : 살레시오 수녀회는 1957년 4월 서울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초청으로 솔라리(Carmela Solari) 수녀 등 5명이 서울 도림동(道林洞) 본당에 부임함으로써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한편 이보다 앞서 1954년 광주 교구장 서리 헨리(Harold Henry, 玄) 신부는 마르텔리(Archimede Martelli) 신부를 비롯한 살레시오 수도회원을 광주에 초청, 2년 후인 1956년 살레시오 중학교를 개교한 바 있었는데, 운영난 때문에 광주교구가 기증받은 학교의 운영을 맡아줄 것을 일본관구장(日本管區長)에게 제의, 이것이 받아들여져 1958년 4월 살레시오 수녀회가 광주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발족된 광주분원(光州分院)은, 학교, 주일학교가 교리를 통한 여성교육, 그리스도교인 양성 등을 목적으로 설립하고, 1961년에는 살레시오 여자중학교가 설립을 보게 되었으며 1963년에는 초등학교도 설립되었다.

한편 1960년 한국 대표자 솔라리 수녀는 여학교 설립을 장려하는 노기남 주교의 알선으로 서울 도림동본당에 이웃한 신길동 야산 40,000㎡를 매입하고 미군의 도움으로 터를 닦아 1962년에 여학교 건물을 기공, 1964년 3층 9개교실의 교사를 완공하였다. 그러나 그 해 안젤라 베스파(Angela Vespa) 총장수녀는 성소자가 많은 사실을 기뻐하며 이 건물을 지원소로 사용목적을 변경케 했다. 초대 원장 카바르잔(Anna Maria Cavarzan) 수녀 등의 헌신적인 교육으로 1968년까지 6회나 청원자들을 길러 이탈리아에 있는 수련소로 파견하였다. 1968년 도림동 분원이 폐쇄되면서 이 지원소는 ‘도움이신 마리아’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1969년 수녀회 본부가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로마로 옮겨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지침에 따라 개최된 특별총회에서 새로이 선출된 총장 칸타(Ersilia Canta) 수녀를 선두로 한 쇄신된 활력은 한국에도 미쳐, 살레시오 수녀회는 성장기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76년에는 일본관구 관할에서 독립하여 총장 직속의 한국 위임구(委任區)로 승격, 초대 위임구장에 무어(Caterina Moore) 수녀가 임명되었고, 서울지원소가 본원으로 성장하였다. 성소자 양성면에서는 1970년 제 9회 청원자를 이탈리아 수련소로 보낸 것을 마지막으로, 1972년 본원에 수련소가 신설되어 국내에서 수련할 수 있게 되었고, 1980년 이 수련소가 광주로 이전되면서 성 요셉 분원으로 발족하였다.

서울에는 창립자들의 정신에 따라 불우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1971년 마자렐로 센터를 설립, 시골에서 올라와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무의탁 여공들을 기숙시키는 이 시설은 1976년에는 120명 수용의 시설로 증축되었다. 1979년에는 마산(馬山)에도 근로여성기숙시설인 아욱실리움 센터가 설립되었다. 현재 살레시오 수녀회 한국위임구 사무소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 5동 253의 245(전화 832-2654)에 있고, 회원수는 총 92명(지원자 20명, 청원자 7명, 수련자 9명, 유기서원자 14명, 종신서원자 4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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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라] Salesius, Franciscus

Salesius, Franciscus(1567-1622). 살(Sales)의 프란치스코라고도 한다. 성인. 축일은 1월 24일. 제네바의 주교. 교회학자. 이탈리아 귀족 출신으로 안네시(Annecy), 파리 및 파두아(Padua)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1593년 사제 서품되었다. 칼빈주의로 개종한 샤블레(Chablais)에 첫 부임하여 4년간의 사랑의 설교를 실시, 대부분의 주민을 가톨릭으로 복귀하게 하였다. 1602년 제네바의 주교가 된 뒤 교구 개혁과 재조직에 전념하였고 16510년 과부 샹탈(St. Jeanne de Chantal)과 함께 성모방문 수도회를 창설하고 리용의 한 방문 수도회에서 일생을 마쳤다. ≪신심 생활의 입문≫(Introduction a la vie devote, 初版 1609)과 ≪신애론≫(神愛論, Trait de l’amour de Dieu, 初版 1616)을 저술하였는데, 후자는 인간의 삶 속에 있는 신에 대한 사랑을 다룬 가벼운 논문으로 그의 가장 뛰어난 저서이다. 또한 과학, 예술 및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으로 프랑스 아카데미(Academie Francaise)가 세워지기 이미 30년 전에 안네시에 아카데미(Academie Florimontane)를 세웠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언론인과 저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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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여지전도 [한] 山海與地全圖

중국 선교사인 예수회 소속 리치(Matteo Ricci, 利瑪寶)가 제작한 동양최초의 근대 세계지도라고 알려져 있다. 산해여지전도는 조경판(肇慶版, 1584), 조심당판(趙心堂版, 1584-1599), 남경판(南京版, 1600), 귀주판(貴州版, 1604)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조경판과 남경판은 리치가 직접 제작했다고 하며, 나머지 둘은 방각본(倣刻本)으로 각각 조가회(趙可懷), 곽자장(郭子章)에 의해 간행되었다고 전한다. 지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지도의 내용과 규모 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음 몇가지의 문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즉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1602) 오좌해(吳左海)의 서문, 풍응경(馮應京)저 재임증(載任增)역 ≪월령광의≫(月令廣義, 1602),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之峰類設), 알레니(J. Aleni, 艾儒略)의 ≪이마두선생행적≫(利瑪竇先生行蹟), 리치의 ≪입연기록≫(入燕記錄), 바들리(J.F. Baddeley)의 <마테오 리치의 중국지도>(Father Matteo Ricci’s Chinese World-Map, Gegraphical Journal, Oct. 1917)등이 <산해여지전도>의 자료를 담고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하면 리치는 1583년 광동성 조경(肇慶)에 도착하여 중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선교의 한 방법으로 서양식 세계지도를 번역하였다 한다. 최초의 판인 조경판은 조경총독 왕반(王伴)의 요청으로 오르텔리우스(A. Ortelius)의 세계지도≪Treartum Orbis Terrarum≫(1570)를 한자로 번역, 표기했다고 한다. 다만 대형의 한자를 넣기 위해 도폭(圖幅)을 원도(原圖)보다 확대하였다. 지도는 중국인 학자들의 호평을 받았고 이로써 리치는 남경과 북경에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조경판은 리치가 중국에 도착한 지 2년만에 제작되어 한문번역에 미숙함이 많았고 따라서 리치 자신도 오류가 많았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던 중 남경 오좌해(吳左海)의 도움으로 남경판을 제작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金良善, 明末淸初 耶蘇會宣敎師 製作한 世界地圖, 한국천주교회사논문선집, 제1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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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영] Santa Claus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로부터 전화(轉化)된 말.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고 다니는 붉은 외투 차림에 흰 수염의 노인. 미국에 이주해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전해져 세계 여러 나라에 대중화되었다. 원래는 4세기 전반에 터키의 남부에 있는 지금의 담브레(Dembre)의 미라(Myra)에 살았던 성 니콜라오(St. Nicholaus) 주교를 지칭한다. 그는 어린이와 선원들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러시아, 자선단체, 동업조합 등 여러 형태의 수호 성인으로 동방 · 서방교회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나 미라의 주교였으리라는 사실 외에 그의 생애를 밝혀 줄 역사적인 자료는 확실치 않다. 유럽에는 그에게 봉헌된 교회가 수십 개에 달한다. 그의 유해는 1087년 미라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바리(Bari)로 이장되었다. 교회는 12월 6일을 축일로 기념한다. 13세기 수도원학교에서 예전부터 행해져 오던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의 관습인 ‘소년 주교 의식'[소년들 중 주교를 뽑아 12월 28일의 축일까지 주교 행세를 하게 함]이 이날로 옮겨졌다.

또한 자선심이 많고 특별히 어린이를 사랑했던 성 니콜라오가 어린이들을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전설과 결부하여 축일 전날 밤, 어린이들의 양말 속에 장난감과 과자를 가득 채워주는 풍습이 발전되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이러한 옛 가톨릭 관습을 그대로 보존, ‘신비의 사람 방문’이란 관습으로 되살려 12월 5일에서 25일 사이에 실시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것이다. 그러나 성인과 그 축일의 근본적인 면은 도외시하여 그를 ‘자비로운 요술쟁이’로 대치시켜 ‘산테 클라아스’라 불렀고 이 발음이 영어화되자 어린이들이 더 정답게 부르게 되어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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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한] ∼大聖殿 [이] Santa Maria Maggiore

로마의 4대 바실리카의 하나. 일명 눈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한국식 옛 명칭은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 하였다. 교황 리베리오(Liberius, 재위 : 352-366)가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창건, 교황 식스토 3세(재위 : 432-440)가 재건하였다. 리베리오 교황의 성당 착공에 앞서, 성모마리아는 로마의 한 귀족에 대한 발현(發顯)에서 교황이 성당을 세우려고 원하던 에스퀼리노 언덕에, 한 여름철인데 눈이 내리게 해서 장소를 정해 주셨다는 전설이 있다. 식스토 3세의 재건 때(432년) 이 성당은 성모에게 봉헌되었다. 봉헌축일은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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