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말 [한] 四末 [관련] 종말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마지막 문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결국 죽어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리고 나서는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죽음, 심판, 천당, 지옥을 천주교 요리문답에서 사말이라 불렀다. (⇒)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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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영] Samaria [그] Samareia [히] somron

그리스도의 시대에 팔레스티나는 3개의 지구로 형성되어 있었다. 북부의 갈릴래아, 중앙에 사마리아, 남부에 유다가 있었다. 사마리아는 요르단강에서 서쪽으로 지중해까지 펼쳐져 있었다. 구약시대에 12부족이 가나안땅을 분할 소유할 때 에프라임족(族)과 마나세족이 후에 사마리아 지방이라 불리게 될 부분을 소유하였다. 솔로몬왕 시대 이후에 사마리아는 북왕국, 즉 이스라엘 왕국으로 알려지게 되어, 남쪽의 유다 왕국과 구별되었다. 특히 사울, 다윗, 솔로몬 등 몇 사람의 왕들의 시대에 남북은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강생 이전의 거의 모든 시대에 남북 양국은 적대관계에 있었다. 많은 유태인들은 그리스도가 사마리아인에게조차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요한 4,8-9). 사마리아가 가장 번영한 것은 기원전 8세기였다. 그러나 그 뒤 앗시리아군(軍)의 침략으로 사마리아인이 추방 유형당하였다. 현재 사마리아는 요르단의 북서부로 편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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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원본당 [한] 沙里院本堂

이 본당의 전신인 봉산검수(鳳山劍水) 본당이 재령(載寧) 본당에서 분리 독립한 것은 1900년이었는데 초대 신부로 이종국(李鍾國, 바오로) 신부가 부임했으며, 1905년부터 6년간은 손성재(孫聖載, 야고보) 신부, 1911년 샤보(Julius Chabot, 車麗松) 신부, 1913년부터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2년간 전교한 후 서흥(瑞興) 본당에서 또 1년간 전교하고, 1916년 마침내 사리원 본당신부로 부임, 이 본당은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이기준 신부는 사리원의 그 전의 공소는 물론 황주 · 서흥 · 봉산군 외에 평안도 중화지방과 황해도 신계지방 일부까지도 포함한 총 35개 공소의 1,500여명 신자를 관할하였다. 1936년 서울교구 황해도 감목대리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4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감목대리구도 사리원 본당으로 옮겨왔다.

1934년 서울의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서 4명의 수녀가 파견되어 전교사업과 유치원 및 성모성심학원 일을 맡아보기 시작하였다. 1937년을 전후하여 김명제 신부는 황해도 내에서 가장 웅대한 2층 벽돌 성당을 비롯하여 사제관(2층), 수녀원(4층) 등 일련의 건축공사를 완료하였으며, 그 무렵의 본당 총교세는 1,326명이었다. 1942년 5대 박우철(朴愚哲,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8.15광복 이듬해인 1946년 12월 서울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명에 따라 27세의 전덕표(全德杓, 안드레아) 신부가 38선을 넘어 사리원 본당 보좌로 부임하였다. 그는 회갑이 넘은 박신부를 잘 보좌하면서 북괴 정치보위부의 감시하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열심히 사목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사리원 시내가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혼란 속에서도 성직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다가 그해 10월 정치보위부에 감금되어 혹독한 전기고문을 당한 후 살해당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후 유엔군의 1.4후퇴 때 신자들은 박우철 본당신부와 함께 남으로 피난함으로써 이 본당은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역대 주임신부는 1대 이기준(토마스, 1916-1923년), 2대 백남희(白南熙, 베드로, 1923-1933년), 3대 박정렬(朴貞烈, 바오로, 1933-1936년), 4대 김명제(베드로, 1936-1942년), 5대 박우철(바오로, 1942-1950년) 신부였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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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교회 [한] ∼宣敎會 [영] Convent of the Missionaries of charity

① 1950년 10월 7일 마더 데레사(Mother Theresa)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Calcutta)에서 창설된 수녀회. 1981년 6월 한국 진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봉사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하는 이 수녀회는 1981년 5월 데레사 수녀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초청에 의해 6명의 회원수녀가 처음 내한하였다. 서울 봉천동(奉天洞)에서 1981년 9월 현재의 서울 용산구 산천동으로 이전하여,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맹인부모와 그 자녀들에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 분원장 래티시아(Laetitia) 수녀 외에 6명의 회원수녀와 한국인 지부장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② 1963년 마더 데레사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에서 창설된 남자 선교수도회(Missionary Brothers of Charity). 1977년 7월 5일 한국에 진출. 버림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활동 목적으로 하는 이 수도회는 1975년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어 철수한 후 극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2명의 회원수사가 내한하였다. 서강대학교 예수회 신학원 내의 임시숙소에서 1977년 7월 20일 서울 삼선동(三仙洞)에 소재한 국제가톨릭형제회(A.F.I.)의 건물 일부를 빌어 이전하였다. 1979년 10월 한국인 첫 서원식을 가졌고 1980년 2월에는 한국지부에 극동관구 본부를 설치하였다. 1983년 12월말 현재 한국지부장 성낙두 수사 외에 21명의 회원들이 서울 용산 · 남대문 · 중부시장 · 정신박약아 수용소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편 무의탁 중풍환자 등을 수용하여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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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라] amor [영] love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서로 사랑하라” – 신약성서에서 이러한 사랑의 정의가 내려지기 전에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나름으로 내린 순진한 인간적 사랑의 개념을 승화시켜야 했으며 이는 십자가를 통하여 실현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상 서로 다른 성질의 혼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동시에 쾌활하며 포용력이 있는 동시에 파괴적이다. 인간은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사랑하는데, 동물, 직장, 동료, 친구, 친척, 자식들 그리고 이성(理性)을 사랑한다. 다윗의 역사, 솔로몬의 아가 등에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은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는 안다는 것이 곧 사랑한다는 것이며 사회에 대한 충성과 친근한 유대관계는 완전히 영성적이고 자유로운 자발성과 합쳐졌다(창세 24:49, 여호 2:12, 룻기 3:10, 스바 7:9). 성서에 기록된 인간은 사랑의 위험성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나(잠언 15:17), 그들의 사랑의 개념은 종교적 심리학을 넘어서 풍부하고 확고한 인간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수많은 질문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느님같이 위대하고 순수한 분이 스스로를 낮춰 보잘 것 없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해 준다면 인간은 어떻게 이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 여러 종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그들 나름으로 노력해 왔으며 때로는 한 쪽에 치우친 극단적인 견해를 낳기도 한다. 즉, 하느님과 인간간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으로 추방시키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 영역으로 추방시키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 영역으로 끌어내려 완전히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성서는 이러한 인간적 고민에 대한 확연한 해답을 주고 있다. 즉, 하느님은 인간과의 사랑의 대화의 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의 사랑의 이름으로 인간들을 구속하고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 구약성서에서 : 창조설화(창세 1:2-3)에는 ‘사랑’이라는 용어가 직접 기록되지 않았으나 아담과 하와가 대상이 되고 있는 선하심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들에게 완전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셨고 이를 명하심으로써 하느님이 사랑의 대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아담은 그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들에 대해 주인처럼 행세함으로써 죄를 지었으나 사랑의 신비는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더욱 깊어져 그에게 구원의 언약을 하기까지에 이른다(창세 3:15).

하느님은 이교도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의 친구가 되게 하셨으며(이사 41:8) 하느님은 그의 사랑을 우정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그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된 것이다(창세 18:17).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의 사랑의 요구들에 응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특히 예언자들에게 개별적 사랑을 쏟으셨고(아모 3:7), 이들을 기쁨으로 채우셨으며 이 예언자들은 야훼의 사랑과 진노의 증인이 되었다(아모 3:2). 하느님은 항상 불충실한 이스라엘의 신랑이며 그의 정열적이고 시기심 많은 사랑은 단지 배은망덕과 배반으로 보상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은 죄보다 강하며 한때 고통을 당하나(호세 11:8) 사랑은 용서하고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새롭고 뜨거운 사랑으로 되살아난다(호세 2:21, 예레 31:3, 20:22, 에제 16:60-63, 36:26). 신명기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은혜로우며 이스라엘은 그의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은 숭배와 복종을 통하여 표현되며(신명 11:13, 19:9)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신명 4:9-28, 30:15-20). 그러나 이는 오직 하느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의 껍질을 벗겨 할례를 베풀어주고 그들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야훼를 사랑하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2. 신약성서에서 :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극적인 사랑의 대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오심’은 무엇보다도 성부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은 구약성서의 예언들과 언약들에 의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시고(요한: 1:18), 구원자 메시아이며 그의 외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사랑을 명백히 하셨다(로마 8:39, 요한 3:1, 4:9, 루가 2:11, 마르 1:11, 9:7, 12:6, 요한 3:35, 10:17, 15:9, 골로 1:13). 성부의 사랑은 아무도 침범치 못할 방법으로 그 자신을 표현하며 우리는 새로운 계약의 완성과 인류와 ‘신랑’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결합을 깨닫게 된다.

성부의 아들을 영접함에 있어 인간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자만심과 오만을 버려야 하며 인간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로마 5:6, 1요한 4:10-19). 하느님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요한 3:16)는 것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완전한 인성 안에서 그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그의 사랑의 열렬하고 진실됨을 이해시키기 위해 오신 하느님이다. 그의 이러한 인성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참고문헌] R.O. Johann, The Meaning of Love, Westminster 1955 / J. De Finance, La Motion du Bien, Greg 1958 / G. Gilleman, The Primacy of Charity in Maral Theology, Westminster 1959 / F.E. Crowe, Complacency and Concern in the Thought of St. Thomas, 1959 / C.S. Lewis, The Four Loves, London 1960 / F.D. Wilhelmsen, The Metaphysics of Love, New York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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