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 [한] 不可知論 [라] Agnosticismus [영] Agnosticism [독] Agnostizismus

어원은 그리스어 ‘agnostos’ 즉 ‘알려지지 않는다’, ‘알 수 없다’에서 나온 말로서, 1870년께 헉슬리(T.H. Huxley, 1825∼1895)가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나, 그런 주장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인간의 의식에 부여된 감각적인 경험을 뛰어넘은, 그 배후에 있는 객관적인 실재는 인식할 수 없다. 즉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의 궁극점에 관한 지식이나 확증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바로 ‘불가지론’이다. 고대의 ‘회의론'(懷疑論)에서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흄(David Hume)을 거쳐 오늘의 논리실증주의(論理實證主義)에 이르는 극단적인 불가지론은, 실재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여 왔다. 하지만, 칸트, 콩트(A. Comte), 스펜서(H. Spencer) 등의 불가지론은, 설혹 인식은 안된다 하더라도 ‘물자체’ 같은 객관적인 실재를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이 불가지론의 주장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사물의 본성이나 본질, 멸하지 않는 영혼의 존재, 우주의 기원, 사후의 생명, 인격신(人格神)의 존재와 완전성에 대한 부실함의 강조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신학적으로 보면, 불가지론은 모든 종교적인 지식 특히 자연적인 신 인식 및 가신성(可信性)의 동인(動因, motiva credibilitatis)의 가능성의 부정을 가리킨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당시의 회칙 (Denz. 2027)에서는 불가지론을 배척하였다. 신의 존재는 인간 이성에 태어나면서 갖추어지는 ‘자연의 빛’에 의하여 알려지며, 신의 본체는 계시에 의하여 알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실한 지식을 요구하고 그 지식의 영역을 주장한다고 해서 불가지론의 주장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요, 불가지론의 주장인 이른바 ‘확실한’ 지식으로 간주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늘 그대로 남게 마련이다. 개별과학의 성과로만 확실한 지식을 추구할 때 세계의 근원, 질서, 의미 등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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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원] Bulgaria

면적 11만 912㎢, 인구 약 890만명(1982년 추계)의 유럽 국가, 터키,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홍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불가리아에 일찍 들어가, 343년에는 사르디카(지금의 소피아)에서 유명한 공의회가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슬라브족과 기타 종족들이 이 지역에 침입하자 점차 사라졌다. 오늘날의 기독교의 기원은 콘스탄티노플의 사제에게 864-865년에 보리스(Boris) 1세가 세례를 받고 개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콘스탄티노플 제4차 공의회에서 불가리아는 교황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의 재치권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이후 불가리아는 비잔틴 정교회에 통합되었다.

19세기 중엽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 그리스와의 사이에 해묵은 독립투쟁을 벌였다. 그리스는 불가리아의 독립 교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터키정부가 1870년에 이를 인정하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불가리아 교회를 파문에 처하였다. 이 금령이 1945년까지 계속되었고, 1953년에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허락 없이 치릴로를 불가리아의 총대주교로 뽑았다. 1961년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이 개혁에 동의하여 분쟁을 종식시켰다. 불가리아의 가톨릭 신자등 중 일부는 라틴 전례를 준수하기도 한다. 1945년 공산당이 정권을 잡자 학교의 모든 종교교육을 금지시켰으며, 1947년 헌법에서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공포하고, 이어 1948년 모든 가톨릭 학교와 연구소를 몰수하고, 선교사는 추방당하였다. 현재 불가리아에는 가톨릭계 신학교도 연구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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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론 [한] 分枝論 [영] branch theory

일부 앵글로 가톨릭주의자들의 주장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 동방정교회 등은 교회의 줄기라 할 수 있는 교회, 즉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枝) 교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3 교회만이 참된 교회이고, 그리스도로부터 계승된 참된 주교직과 사제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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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심잡념 [한] 分心雜念

마음이 산란하고 주의가 분산되어서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종교적으로는 수도(修道) 또는 수행(修行)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생각을 ‘분심잡념’이라고 표현하여 왔다. 이 옛말은 오늘날의 ‘주의산만’이나 ‘주의력 산만’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따르면, ‘잡념’은 ‘distraction’ 또는 ‘vaine pensee’의 뜻이고, ‘분심잡념’은 ① 기도에 소홀하다, 부주의하다, 방심하다(distraction dans les prieres), ② 걱정, 염려, 불만, 혹은 무엇에 마음을 빼앗김(preoccupation)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첫째번의 ‘주의산만’ 즉 ‘distraction’은 그 어원인 라틴어의 ‘distrahere’ 즉 ‘갈라놓다’, ‘떼어놓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주의산만’이란 미리 정해 놓은 대상으로부터 주의력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기도한 때의 주의산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의식적인 경우와 무의식적인 경우인데, 하느님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주의 집중 노력을 하지 않을 때는 의식적인 주의산만이며, 이것은 ‘소죄(小罪)가 된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주의력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이 죄가 됨은, 정신의 주의력이 기도 중의 특정의 생각으로부터 빗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대하여 주의력을 집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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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정의 [한] 分配正義 [라] justitia distributiva [영] distributive justice [관련] 정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正義)를 분배의 균등이라고 정의(定義)하였다. 즉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된 부(富)가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히 분배될 때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원시공동체 사회의 해체와 함께 형성된 계급사회에 있어서 분배정의는 한갓 구호에 불과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분배는 항상 불균등 그 자체였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제외된 무산노동자 사이에 분배의 불균등은 크게 확대 · 심화되었다. 자본가는 자신에게 귀속되는 부의 양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압적으로 강요하였다.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부당하고 비인격적인 대우, 실업이라는 사회악을 노동자에게 전가시켰다. 이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여 두 계급을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이 한 국가 내에만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에 퍼졌다”(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바오로 6세, 1967). 국제 사회에서는 선진국에 의한 후진국의 제국주의적 혹은 신(新)제국주의적 지배는 선진국에 의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시켜 선진국을 풍요의 삶으로 인도하는 대신, 후진국을 기아와 빈곤의 늪으로 빠뜨렸다. 또 선진국의 지배권쟁탈을 위한 식민지전쟁은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명살상의 대비극을 초래하였다. 분배정의는 이제 단순히 구호로만 그치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로 되었다. 세계 주교회의에서는 <세계 안의 정의>라는 메시지를 통해 “현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하지 않는다면 모든 권력과 부와 결정권은 일부 소수의 지배층에 귀속되고, 인류는 파멸로 빠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참여의 봉쇄 등의 상황을 무시하고서 인간의 기본권과 시민권은 결코 찾을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만큼 정의에서 벗어나 있다. 필요한 것을 빼앗기고, 무슨 일을 시작할 수도 없고, 직업을 택할 수도 없으며, 문화적 · 사회적 ·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마저 거부당한다면 부당한 침해를 폭력으로 몰아 내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국제적인 불균등, 국내에서 가진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불균등이 하루 빨리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됨을 강조하였다.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와 교사>(1961)는 분배정의에 대한 가톨릭적인 입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 즉 “국가적인 면에서 최대다수의 노동자가 고용될 것, 임금과 물가 사이의 균형이 유지될 것,

모든 부와 시설이 국민 최대다수에게 이용될 것, 각 산업부문 사이에 불평등이 해소될 것” 등이며 “국제적인 면에서 각국간의 부당한 경쟁과 불균등이 해소될 것, 실제적 이해성을 가지고 국가간에 협력을 도모할 것, 경제적으로 후진지역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것” 등이 회칙의 정신이다. 분배정의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주의와 관심은 항상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주어져야 함은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주장된 바 있다. (⇒) 정의

[참고문헌] R. Niebehr, ed. D.B. Robertson, Love and Justice, 1957 / P. Tillich, Love, Power and Justice, 1960 /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이해남 역, 1961 / 가톨릭출판사 편, 사회정의 : 가톨릭의 입장, 1976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 김남수 역, 1967 / 池學淳, 정의가 강물처럼,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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