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니 [원] Bellini, Vincenzo

Bellini, Vincenzo(1801-1835).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근교의 퓌토(Puteaux)에서 죽었다. 1819년부터 1827년까지 나폴리에서 칭가렐리(N.A. Zingarelli) 등에게 사사하고, 1833년부터 파리에서 활약하다가 34세로 요절하였다. 그는 도니제티(Donizetti)와 같은 회가극적 소질, 로시니(Rossini)와 같은 대가(大家)의 소질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도니제티처럼 로시니와 협조하에 벨칸토 창법을 고수하면서 쇄신하여 쇼팽(Chopin)의 피아노곡 창법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주요 오페라 작품으로는 ≪Adelson e Salvina≫(1825), ≪Bianca e Fernando≫(l826), ≪Il Pirata≫(1827), ≪I Capuleti ed I Monteechi≫(1830), ≪La Sonnambula≫(l831), ≪Norma≫(l831), ≪I Puritani≫(1835) 등이 있다. 작품활동 초기에 미사곡과 성가곡 여러 편을 작곡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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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조 [원] Vellozo [관련] 주문모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포르투갈 이름. ⇒ 주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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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르미노 [라] Bellarminus, Robertus F.R.

Bellarminus, Robertus F. R.(1542-1621). 성인. 주교. 예수회 신학자. 변론가. 이탈리아의 몬테 풀치아노(Monte Pulciano) 출신이며 1560년 예수회에 입회 1570년 서품받았다. 예수회 학자로는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이 충돌하는 최전선인 루뱅(Louvain) 대학에서 강의하였으며(1569년), 가톨릭 신학의 수호를 위해 성서, 교회사, 교부학 연구뿐만 아니라 호교론에도 적극 참가, 변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576넌 신설된 로마대학(Collegium Romanum)의 호교론 교수가 되었으며, 추기경을 거쳐(1599년) 카푸아(Capua)의 대주교가 되었다(1602년). 그는 평생 자기희생과 청빈을 실천하였으며,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에게 특별한 존경을 바쳤다.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1606-1607년), 영국 국교회(1607-1609년), 바클레이(William Barclay)의 갈리카니즘에 대항하여 교황의 세속적인 권위를 옹호하였으나 세속문제에 있어서 교황은 간접적인 권한을 가질 뿐이라고 주장하여 교황 식스토(Sixtus) 5세로부터 의혹을 샀으며, 갈릴레이(G. Galilei)에 대해서도 동정적이었다(1616년). 가톨릭 개혁 후기의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로마 가톨릭 학자였던 그의 시성운동이 1627년에 시작된 이래 1930년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193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으며 축일은 9월 17일이다.

[참고문헌] F.Z. Arnold, Die Staatslehre des Kardinals Bellarmin, Munich 1934 / E.A. Ryan, The Historical Scholarship of Saint Bellarmine, New York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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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원] Belgium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입헌군주국. 프랑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3,051만 3.000㎢, 인구는 약 985만 명(1982년 추계)이다. 4세기 이전에는 벨기에를 포함한 이 지역 저지대 국가들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양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도교는 지중해 지방과 도시의 일부 특수 계층들만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그 뒤 그리스도교의 전파는 주로 로마와 라인지방을 왕래하던 상인들과 군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재 벨기에에서는 가톨릭이 매우 우세하여 국민의 91%인 약 897만 8,0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며 9개의 교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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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체슬라오 [라] Wenceslaus

Wenceslaus(?~929). 성인. 축일은 9월 28일. 보히미아공(公) 체코슬로바키아의 보호성인. 프라하 부근 스토초프(Stochov)에서 태어나 스타라 볼레슬라프(Stara Boleslav)에서 별세하였다. 920년경 그리스도 교도인 부친 보히미아공 라티슬라프(Ratislav)가 서거하자 이교도인 모친 드라호미라(Drahomira)가 어린 벤체슬라오의 섭정(攝政)이 되었다. 그보다 앞서 벤체슬라오가 그리스도교인인 조모 루드밀라(Ludmilla, 성녀)에게 교육받고 자라난 관계로, 모친은 그녀가 벤체슬라오에게 준 종교적 영향을 미워하여 921년 그녀를 살해토록 하였다. 922년 벤체슬라오는 그리스도 교도와 이교도 사이의 내분을 종식시키고 바바리아공 아르눌프(Arnulf)의 보히미아 침입을 막기 위해 친정(親政)에 들어갔다.

929년 우세한 독일군의 맹공격을 받게 되자 벤체슬라오는 독일황제 하인리히 1세가 대군주(大君主)임을 확인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하였다. 그는 성 비토(St. Vitus)의 유해를 프라하로 옮겨갔다. 통치자로서 성공적일 뿐 아니라 대외정책에도 솜씨를 발휘했으나 보히미아 국내에서 이교도의 반항을 진압시킬 수는 없었다. 벤체슬라오에게 아들이 탄생되자 그의 동생 볼레슬라프(Boleslav)는 통치권을 계승받지 못하게 된 것을 분개하여 스타라톨레슬라프로 형을 초청해서 살해하였다. 후에 벤체슬라오는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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