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영] Vatican [이] Vaticano

이탈리아의 로마시 북서부에 있는 독립 시국(市國)으로 정식명칭은 바티칸시국(State della Citta del Vaticano)이다. 교황에 의해 통치되는 신권국가로 가톨릭 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이며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현재 바티칸이 있는 곳은 고대 로마인들이 ‘점(占)치는 언덕’이라 부르던 곳으로, 이곳이 교회와 연관을 맺기 시작한 것은 사도 베드로가 순교당한 후 이 언덕에 묻히면서부터이다. 그 뒤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고 5세기경에는 바티칸 궁전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이후 역대의 교황들이 바티칸 궁전 주변의 땅을 매입하였고, 8세기부터는 베드로의 세습령, 즉 교황령을 통치하는 교황의 정식 주거지가 되었다. 번창하던 바티칸은 19세기부터 주변 군주들의 침입으로 교황령이 위축되고, 1870년 이탈리아왕 빅토르 엠마누엘 2세에 의해 로마가 점령되면서 이탈리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교황들의 교황령에 대한 전통적인 권리를 계속 주장한 결과 그 타당성이 인정되어, 1929년 2월 11일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 사이에 라테란 조약이 체결되면서 바티칸은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독립국가로 재출발하였다.

면적은 0.44㎢이며 바티칸 궁전,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도서관,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방송국 외에 교회행정과 학술. 문화. 과학 등을 관장하는 많은 건물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인구는 856명(1984년 현재)으로 그중 537명만이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단순한 거주자에 지나지 않는다. 바티칸의 시민권은 출생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직책으로 인하여 바티칸에 상주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증서로 그 직책에서 물러나면 자동적으로 시민권도 소멸된다.

바티칸은 다음 3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전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를 통할하고 대표하는 교황청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둘째 국제법상 독립국가로서 교황령을 통치하는 정부라는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셋째 로마교구의 교구청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바티칸은 전세계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현재 108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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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 [원] Vacant, Alfred

Vacant, Alfred(1852-1901). 신학자. 모르퐁텐(Morfontaine)에서 출생하여 낭시(Nancy)에서 별세. 메츠(Metz)에 있는 소신학교 및 대신학교에서 고전과 철학을, 파리의 생 쉴피스(SaintSulpice)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876년 6월 10일 사제가 되고 1879년 신학교수 자격을 얻은 뒤 낭시에 있는 신학교에서 호교론과 교의신학을 가르쳤다. 철학에 관하여 많은 논문을 썼고 조제(Jaugey)의 ≪Dictionnaire apologetitique≫에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Etudes theologiques sur les constitutions du Concile du Vatican d’apres les Actes du Concile≫(2권, 1895)이다. 신학 연구에 있어서 역사적인 방법을 개발시킨 학자 중의 하나이며, ≪Dictionnaire de Theologie Catholigue≫의 창간자이자 펀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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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공의회 [한] ∼公議會 [라] Concilium Basileense [영] Council of Basel [관련] 공의회 공의회수위설

바젤 공의회(1431-1442). 제17차 공의회. 교황 마르티노(Martinus) 5세(재위 : 1417-1431)에 의하여 바젤에서 소집되었고. 그의 후임 교황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재위 : 1431-1447)에 의해 추인(追認)되었다. 원래 바젤 공의회는 교회 내의 개혁을 위해 소집되었으나 교황권과 공의회 수위설을 주장하는 공의회 측의 대립으로 파쟁(派爭)에 휘말렸다. 2년간의 분쟁에서 승리한 공의회 측은 공의회 수위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여러 가지 칙령을 반포하여 교황권을 축소시켰다. 특히 교황청에 납부하던 여러 가지 세금의 납부정지는 교황청 재정을 크게 압박하였다. 1437년 교황청과 공의회 측은 동방교회와 합동 공의회를 어디서 개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대이교를 수습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던 공의회 수위설이 바젤 공의회에서는 오히려 이교의 원인이 되었다. 즉 공의회를 페라라로 이전하려는 교황의 결정에 불복한 공의회 측은 1439년 대립교황 펠릭스(Felix) 5세를 추대하였다. 물론 이번 이교에는 아비뇽 교황시대(1309-1377년) 이후 잔존해 있던 프랑스와 독일의 입김이 공의회 수위설 주장자들에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437넌 페라라로 이전된 공의회는 1439년 피렌체, 1442넌 로마로 각각 이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바젤 공의회 16회기 이후 결정된 사항들은 보편교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교황이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의회의 결정사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공의회, 공의회수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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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덴 [원] Weyden, Rogier van der

Weyden, Rogier van der(1399?-1464). 플랑드르의 종교화가. 프랑스명은 Roger de La Pasture. 북부 르네상스 화가로는 아이크 형제(Hubert van Eyck와 Jan van Eyck)말고는 가장 영향을 많이 준 화가였다. 1426년 브뤼셀의 여인과 결혼한 뒤부터 투르네이(현재 벨기에에 있음)에 있는 캄핀(Robert Campin)의 공방(工房)에 들어갔다. 그 뒤 독립해서 브뤼셀에 정착, 명성이 높아지면서 메디치가를 위시하여 많은 부르간디 궁정으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게 되었으며, 그의 미술은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의 제자로는 멤링(Hans Memling)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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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리노 [라] Paulinus, a Nola

Paulinus, a Nola(353-431). 성인. 축일 6월 22일. 정식 이름은 Pontius Meropius Anicius Paulinus. 프랑스 보르도에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이탈리아 놀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보르도에서 오소니오(Decimus Magnus Ausonius)에게 학문을 배운 후, 379년경 캄파냐(Campania)의 행정장관이 되었다. 그 후 스페인의 재산가의 딸과 결혼했었다. 389년 보르도에서 영세한 후 바르셀로나(Barcelona) 부근에 정착, 빈민구제에 힘썼다. 395년 사제로 서품, 409년 놀라의 주교가 되어 많은 성당을 세우고, 최초로 성당에서 종(鍾)을 사용케 하였다. 만족(蠻族)이 캄파냐에 침입했을 때 놀라시(市)를 구제하였다.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등과 친교가 있었다. 교부시대의 라틴 시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시 · 서간이 많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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