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의 [한] 傳統主義 [영] traditionalism

하느님과 종교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모두 전통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설. 엄격한 의미의 전통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에 대하여 무엇인가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까지도 부정한다. 이 설은 인류가 말을 익히게 되었을 때, 하느님은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시적 계시를 우리의 선조에게 주셨다는 견해에서 비롯된다. 이 원시적 계시 가운데 하느님의 종교상의 기본적 진리를 모두 사람들에게 주시어 그것이 대를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이성과 상식에 의해, 이 전달은 그릇되지 않게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 증명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인간은 말을 통해 그것을 계승한다는 것. 종교상의 지식은 전면적으로 신앙의 지식이며 그 밖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도 한다.

엄격한 의미의 전통주의 제창자는 보날(L.G.A. de Bonald, 1754∼1840), 라므네(F.R. de La Mennais), 보탱(L.E.M. Bautain, 1796∼1867)등이다. 전통주의는 이성이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도달하는 능력을 부정하고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에선 신앙주의(fideism)라고도 한다. 전통주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서 일어난 사회사상이다. 프랑스 혁명을 개인과 이성의 승리로 특징짓는다면 전통주의는 이러한 이성적 개인은 결국 추상적 존재에 불과하고 현실의 인간은 일정한 민족이나 국민으로서 태어나는 존재라는 것. 따라서 거기서는 개인의 독주를 거부하고 사회의 질서를 중시함과 동시에 역사의식이 고양(高揚)되고, 중세의 그리스도교를 동경하였다.

[참고문헌]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ow York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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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한] 轉借 [관련] 전구 전달

옛 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를 의미한다. (⇒) 전달, 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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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상교육관 [한] 全眞常敎育館

1957년 9월 28일 국제가톨릭형제회(A.F.I)에서 교육사업을 위하여 명동에 설립한 교육관. 1956년 한국에 진출한 국제가톨릭형제회가 기숙사 운영을 통한 여성교육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일본식 목조건물을 매입, 개조하여 가톨릭여학생관이라고 불렀다. 1962년 개축하여 1층 시설은 가톨릭 단체활동을 위하여 개방하였고, 1970년 10월부터는 성인교육을 위한 ‘월요강좌’도 마련하였다. 1972년에는 개조공사를 하여 간접선교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에는 기숙사를 ‘가톨릭여학생관’으로, 교육관은 ‘전진상교육관’으로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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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 [한] 全知 [라] omniscientia [영] omniscience [관련] 하느님의 속성

모든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속성. 하느님은 자신에 관해서 뿐 아니라 피조물에 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신다. 피조물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하느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히브 4:13)이므로 “사람이 하는 일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시편 34:15)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속셈까지 꿰뚫어 보신다”(1역대 28:9). 하느님은 전지하시므로 세상을 효과적으로 섭리할 수 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지식을 대변하고(1열왕 20:25-38, 2열왕 19:1-7),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전달하였다(이사 14:26-27, 46:8-11, 바룩 3:15-38).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알리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인 강생하신 말씀을 세상에 보내셨으며(골로 2:2-3, 로마 11:33-36, 1고린 1:17-31), ‘십자가의 어리석음’(로마 1:19-25, 1고린 1:21-25)을 통하여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 (⇒) 하느님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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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한] 全州敎區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교구. 전라도에 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전주(全州)의 유항검(柳恒儉)이다. 그는 1784년 조선 교회가 창설되자 곧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權日身)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먼저 가족과 친척을 귀화시키고, 친구와 이웃에 전교하여 전라도 교회의 기틀을 잡았다. 이어 진산(珍山) 사람인 윤지충(尹持忠)이 서울에서 김범우(金範禹)의 권고로 세례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전교하니, 전라도에서 천주교는 급속히 전파되어 나갔다. 그러나 1791년에 윤지충과 그의 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조상제사문제로 체포되어 전주감영에 수감되었다가 그해 11월 13일에 순교하니 전라도가 첫 번째 순교자의 피로 물들여졌다. 이어 1801년 신유(辛酉)박해를 비롯한 거듭되는 박해로 유항검, 유종선(柳宗善)과 이루갈다 동정(童貞)부부 등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1886년 한불(韓佛) 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신교의 자유가 얻어지자 전라도는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 나날이 교세가 늘어났다. 그러던 중 1911년 조선교구(서울교구)에서 대구교구가 분할 독립되자, 전라도는 대구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전라도에는 전주, 안대동(安大洞), 강경(江景), 수류(水流), 목포(木浦), 제주(濟州), 정읍(井邑) 등 7개의 본당이 있었고, 한국인 신부로는 김양홍(金洋洪), 이상화(李尙華) 신부 2명과 피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5명이 있었다. 그 뒤 교세가 더욱 늘어나자 1931년, 즉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이 되던 해에, 전라남북도를 장차 자치교구로 키우기 위해 감목대리구로 설정하여 초대 감목대리로 김양홍 신부가 임명되었다.

1934년에는 전라남도에 애란(愛蘭)의 성 골룸바노(St. Columban) 전교회의 전교구역으로 위촉되어 감목대리구로 설정되고 1937년 4월 13일에는 전라남북도 감목대리구가 모두 교구[지목구]로 승격되어 전주교구장[지목]에 김양홍 신부가 임명되었다.

1942년 1월 5일에 김양홍 신부가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주재용(朱在用) 신부가 그 후임으로 취임하였다가 1946년 대구교구장으로 전임되자, 같은 해 1월 16일에 교구장 서리로 김현배(金賢培) 신부가 취임하였다.

1950년 6.25동란이 일어나 전라도지방이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가 교구장 이하 거의 모든 신부가 체포 감금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으나, 다행히도 풀려나, 전란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교회를 복구하여, 1957년 1월 21일에는 전주교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었고 그해 5월 21일 김 교구장이 초대 주교로 승품되었다.

1960년 4월 30일에 김 교구장이 별세하고 1961년 1월 3일자로 서울 성신대학 학장이던 한공렬(韓-烈) 신부가 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그해 3월 12일에 로마에서 성성식을 가졌다. 1962년 3월 10일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의 설정에 따라 정식 교구가 되었으며 1973년 2월에는 김재덕(金在德) 주교가 제5대 교구장으로 취임하였고 1982년에 박정일(朴正一) 주교가 제6대 교구장으로 취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전주교구의 관할구역은 전라북도 전역이며 현재의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7만 7,901명, 본당 40개소, 공소 194개소, 한국인 신부 86명, 외국인 신부 3명, 한국인 수녀 92명, 외국인 수녀 1명, 남자수도단체 1개, 여자수도단체 11개, 병원 2개소, 양로원 1개소, 나병수용소 9개소, 유치원 14개소,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 주일학교 40개소 등이다.

[참고문헌] 金九鼎 · 金榮九 共著 天主敎湖南發展史, 全州敎區,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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