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법규 [한] 典禮法規 [라] rubrica [영] rubrics

전례를 집행하는 순서와 의무를 제시하고 있는 법규를 전례법규라 하는데 미사경본, 성사예식, 전례거행서, 낭독집 등에는 이러한 전례법규들이 붉은 활자로 인쇄되어 있다. 라틴어의 ‘rubrica’란 법령의 붉은 제목을 나타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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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 [한] 典禮曆 [관련] 교회력

⇒ 교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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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한] 典禮 [라] liturgia [영] liturgy

전례는 교회의 의식(儀式)이다. 교회가 성서나 성전(聖傳)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는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안에서 그 전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Missa)이며, 그밖에 성사 및 준성사, 성무일도, 성스런 행렬, 성체 강복식 등이 전례 속에 포함된다.

이 말의 원어(原語)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0:11에 나오는 그리스어의 ‘liturgia’이며, ‘민중(laos)에 대한 봉사(ergon)’를 의미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구빈사업(救貧事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였다(2고린 9:12). 그런데 민중에 대한 봉사나 구빈사업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뒷날에는 교회의 의식이 전례라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를 통해서 우리 속죄의 구원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하는 데 가장 큰 도움”(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 되는 것이 전례라고 말한다.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되어야 할 인간들과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곧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세계의 창조주로, 또한 주재자(主宰者)로 공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속죄를 드리며 기원한다.

전례의 주체는 교회다. 교회 안에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현존(現存)한다. 미사에도, 성체형상에도, 사제의 인격 속에도, 말씀 속에도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모인 곳에는 나는 그 가운데 있다”(마태 18:20)는 복음과 같이 교회에는 하느님이 현존한다. 비록 전례가 성직자에 의해 거행되더라도, 그것은 그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전례는 교회의 위임에 따라 지정된 성직자가 거행하는 의식적 행위 전체라고도 정의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교회의 사제직이 지진 독특한 성격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사제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뿐이다. 그는 대사제이며, 다른 모든 사제는 그의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에 있어서 그 권능(權能)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아 거룩하게 된 사제는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들의 대변자다. 그리스도교의 전례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종교의 의식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민중이 참여하고, 같이 기도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성당의 설계도 다른 종교의 사원(寺院)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보통 사원은 신상(神像)을 안치하는 하나의 작은 방인데 비하여, 성당(ecclesia)은 신자들의 집회소(集會所)이다. 때문에 사원이 외양(外樣)을 위주로 한 건축인데 비해, 내부를 위주로 한 건물이 성당이다. 여기서 전례가 바로 신자 공동체를 위한 의식이고, 공동체를 위한 기도라는 점이 나타난다. 신자는 이 공동체에의 참여를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일미사와 부활절 및 지켜야 할 축일에는 반드시 전례에 참여해야 한다.

전례는 외적인 형식을 존중하고, 기도와 성가도 큰소리로 불러야 하며, 일정한 장소와 때를 지킨다. 왜냐하면 모든 공동체적인 행동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정된 중심과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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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전교약기 [한] 全羅道傳敎略記

1933년 박제원(朴齊元)이 구술(口述)하고 김 베드로가 필기(筆記)한 전라도지방의 전교사(傳敎史). ≪전라도전교 약기≫는 1886년 한불(韓佛)조약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시기의 전교상황을 총 102장(張)의 분량에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22장에서 72장까지의 내용으로 구술자 박제원이 영세, 입교한 1885년 이후부터 10여년간의 전라도지역 전교상황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지하교회에서 해방된 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둘째 부분은 72장 이후의 내용으로 고산 되재[升峙], 전주(全州), 수류(水流), 나바위[羅岩]본당의 창설내력과 연혁 등이 서술되어 있다. 이 외에 책의 첫머리와 끝에는 서(序)와 발(跋)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

구술자 박제원은 원래 경상도 거창(居昌) 사람으로 1885년 전라도에 와서 조스(Josse, 趙)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은 뒤 가족들과 함께 전라도로 이주하여 사망하기까지 조스, 라프르카드(Lafourcade, 羅),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 등 9명의 신부를 복사(服事)하며 전라도 지역의 전교에 힘썼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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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본당 [한] 殿洞本堂

조선조시대의 전주는 한양 이남에 있는 손꼽히는 웅도(雄都)이며,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있던 고도(古都)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전동’은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1791년 신해(辛亥)박해 때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처형되었던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곳에 현재의 전동본당이 터 잡고 있다. 신유(辛酉)박해 때(1801년)에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柳觀儉)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尹持憲), 김유산(金有山), 이우집(李宇集) 등이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러한 연혁이 얽힌 이 고장에 1889년 책임을 맡고 부임한 보두네(Baudounet, 尹) 신부가 1891년에 소양면 대성동(所陽面 大成洞)[당시 지명]에 성당 대지를 매입, 1908년에 프와넬(Poisnel, 朴) 신부 설계로 성당 준공을 보아, 초대(1889∼1915년) 주임신부로 취임 활약하였다.

이리하여 2대(1915∼1918년) 라크루(Lacrout, 具瑪瑟, 마르셀로) 신부는 성당 내부와 외부의 미화작업을 끝냈고, 1차 대전으로 인하여 출전하게 되었다. 3대(1918∼1920년)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거쳐 4대(1920∼1929년) 라크루 신부가 재취임, 사제관을 신축하고, 여교당(학원)을 설립, 최정숙(崔貞淑, 베아트릭스)에게 교장직을 위임하여 처녀들에게 교리와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다. 1929년 8월 11일 라크루 신부의 선종 뒤, 5대(1929∼1937년)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1931년 전라도 감목대리구 감목대리직을 겸하였는데, 이 당시 부호 교우인 이학수(李學秀, 바오로) 회장과 그 아들 3형제는 경제적인 협조로 성당의 중요기관을 설치하는데 크게 도움을 끼쳤다. 1937년 전주교구 승격에 따라 김 신부는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뒤를 이은 6대(1937∼1938년)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신부는 1938년 3월 이미 건축되어 있던 교사에다 해성여학교(海星女學校)를 정식 설립하였다. 7대(1938∼1940년)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8대(1940∼1941년)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9대(1941∼1942년) 최민순(崔玟順, 요한), 10대(1942∼1944년) 김후생(金後生, 바오로), 11대(1944년)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12대(1944∼1947년) 이상화 신부, 13대(1947∼1954년) 이약슬(李若瑟, 요셉), 14대(1954∼1961년) 강윤식(姜允植, 베네딕토), 15대(1961∼1963년)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 16대(1963∼1967년) 김종택(金鍾澤, 요셉), 17대((1967∼1969년)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 18대(1969∼1972년)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19대(1972∼1974년) 범석규(范錫圭, 마티아), 20대(1974∼ )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 신부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동본당은 전주시 전동 200의 1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 방지거 사베리오를 주보로 하고 있다. 건평 189평, 대지 4,000평이며, 부속건물은 160평이고, 1947년도에 설립된 성심유치원이 부속기관으로 되어 있다. 1984년 현재 신자총수는 3,564명이고, 전주 중앙본당(中央本堂)이 주교좌 성당이 되기 전까지에는 전동본당이 전주 주교좌 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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