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콕토 [원] Jean Cocteau [관련] 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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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선 [한] 張致善

장치선(1810∼1868).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성인 장주기(張周基)의 조카.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비롯한 7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자 이 해 6월말 최인서(崔仁瑞) 등 10명의 교우와 함께 조선의 박해상황을 프랑스에 전하려는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를 중국으로 탈출시켜 주었고, 이어 이해 9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자 리델 신부를 태우고 강화도에 정박중인 프랑스 군함에 승선, 조선에 남아있는 칼레(Calais, 姜) 신부, 페롱(Feron, 權) 신부의 소식과 박해상황을 리델 신부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온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1868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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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기 [한] 張周基

장주기(1803∼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요셉. 일명 낙소(樂詔). 경기도 수원의 느지지(現, 화성군 양감면 육당리)에서 태어났다. 1826년 영세, 입교한 후 박해와 친척들의 방해를 피해 충청도 배론[舟論]으로 이사하여 회장직을 맡아 보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고, 1855년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될 때 자기의 집을 신학교로 쓰게 하는 한편 자신은 신학교에 달린 토지의 농사일과 잔일을 맡아 하였다. 1866년 3월 1일 포졸들이 배론신학교를 습격하여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와 프티니콜라(Petinicolas, 朴) 신부를 체포하자 제천 근처의 노럴골로 피신했으나 다른 교우들의 피해를 입을까 염려되어 자수, 서울로 압송되었고, 3월 30일 충남 보령의 갈매못(일명 고마수영)에서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 위앵(Huin, 閔) 신부, 오메트르(Aumaitre, 吳) 신부, 황석두(黃錫斗) 등과 함께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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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교 윤시제우서 [한] 張主敎輪示諸友書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지도서(指導書). 조선 교구 4대 교구장에 의해 1857년 8월 2일자로 반포된 이 교서(敎書)는 그 해 3월 25일 다블뤼(Daveluy, 安敦伊) 보좌주교의 성성식(成聖式)을 이용하여 소집한 3일간에 걸친 최초의 성직자회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데, 윤서(輪書)의 형식으로 수신인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모든 신자로 되어 있다. 당시는 교회 내에 인쇄시설이 없었으므로 교서를 회람형식으로 전달하여 이를 베껴 두게 하였으므로 윤시라고 하였다. 이 서한은 교우들의 행동지침, 도리, 칠성사(七聖事), 성영회(聖嬰會) 규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엄격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혼인에 있어서 자녀의 의사를 존중할 것, 과부의 재혼을 권고하는 등, 당시의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용단이었다. 또한 고아나 기아(棄兒)를 거두어 양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영회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서한은 간행된 적은 없으나, 그 뒤 한국교회지도서에 부분적으로 수록되었고, 많은 필사본이 오늘날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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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온 [한] 張貞溫

장정온(1906∼1950?). 수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초대 원장. 세례명 마리아. 수도명 앙네다. 경기도 인천 화수동에서 장기빈(張箕彬)과 황루시아의 3남 4녀 중 2녀로 출생하였다. 1922년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도미(渡美)하여 메리놀회 수녀회에 입회, 1925년 4월 30일 첫 서원을 한 후 귀국했고 귀국 후 평북 의주본당에서 전교수녀로 활동하다가 1931년 다시 일본 성심(聖心)여대에 유학, 1935년 동(同)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교육담당 수녀로 활동하였다. 1938년 동 수녀회가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자 수련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 내 모든 메리놀회 신부와 수녀들이 일제(日帝)에 체포되어 이듬해 6월 강제 추방되자 오셰아(O’Shea) 주교에 의해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원장으로 임명되어 일제말기의 가중되는 종교탄압 속에서도 회지 를 창간하는 등, 수녀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광복 후 이북에 수립된 공산정권에 장면(張勉) 박사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탄압을 받았고 1950년 6.25동란 중 평남 대동군 송림리 공소(영유본당 관할)에 피신해 있다가 이해 10월 4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행방불명되었다.

[참고문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50년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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