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한] 告解聖事 [라] Sacramentum poenitentiae [영] Sacrament of penance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로 하여금 성세받은 이후에 지은 죄에 대하여 하느님께 그 용서를 받으며 교회와 화해하도록 해 주는 성사. 인류를 교회로 불러 모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은 성세성사를 통하여 원죄와 자신이 지은 죄(본죄)의 사함을 받고 교회안에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한다. 그러나 성세를 받은 신자에게도 악으로 이끌리는 경향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다시 범죄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위해 고해성사를 세우셨다. 성서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사죄권(赦罪權)을 가지셨고(마태 9:1-8) 이 권한을 교회의 지도자들인 12사도들에게 주셨다(마태 18:18). 이는 지상(地上)에서 ‘맺고 푸는’ 권한 행사의 효과가 하늘에서도 그대로 유효한 권한이요,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를 한 형제들에게 행사하는 권한이다. 이 권한은 요한복음 20장 19-23절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사도들의 이 사죄권은 다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그 협조자인 신부들에게 계승됨으로써 지상에서 죄 사하는 그리스도의 직무가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고해성사의 회수, 사죄(赦罪)의 대상이 되는 죄의 종류, 참회의 방식 등 그 구체적인 형태는 교회 역사상 조금씩 달랐다.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고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칠성사의 하나로서 성세받은 이후 범한 사죄(死罪)를 용서해 주는 제도이므로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 필요성의 정도는 성세의 경우와 같아서[화세] 위급할 때에는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원의(願意)를 가짐으로써 실제로 성사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고해성사를 이루는 표지는 참회자의 통회, 고백, 보속과 고해신부의 사죄이다. 이를 고해성사가 집행되는 순서에 비추어 볼 때 참회자는 먼저 양심적으로 성찰을 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정개(定改)하고 나서 고해신부 앞에 나아가 죄의 고백을 한다. 그러면 고해신부는 사죄를 하고 보속을 정해 준다. 참회자는 받은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고해성사가 끝난다.

통회에는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리게 되었음에 주목하고 이 점을 크게 마음 아파하는 상등통회가 원칙적인 모습이나 이와 달리 범죄의 결과 처벌을 받게 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뉘우치는 하등통회도 고해성사의 유효요건이 된다. 참회자는 성세이후 범한 죄 가운데 고해로 용서받은 적이 없는 사죄를 기억나는 대로 모두 고백할 의무가 있으며 경죄(輕罪)의 고백도 권장하고 있다(교회법 제988조). 고백한 내용은 고해비밀로 보장된다. 죄에 대한 보속을 함으로써 참회자는 하느님의 정의의 엄격함과 죄의 무게를 체험하며 악으로 이끌리는 경향을 거슬러 싸워 죄를 피하고 죄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깊이 참여하게 된다. 고해성사의 집전자는 사제이며(교회법 제965조) 그가 사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을 뿐 아니라 재치권을 부여받아야 한다(교회법 제966조). 그 행사는 사죄경을 염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사죄권의 범위는 참회자의 통회를 전제할 때 죄의 종류나 회수를 묻지 않고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예외 교회법 제982조). 한편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연령에 달한 모든 신자는 적어도 일년에 한 번 그들의 사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을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989조). 이와 같이 고해성사는 참회자의 통회, 고백 및 보속행위와 사제의 사제행위로 이루어진 결과에서 참회자는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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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비밀 [한] 告解秘密 [라] sigillum confessionis [영] seal of confession

고해성사에 있어서 성사적 고백으로 알게 된 모든 내용에 대하여 절대 비밀을 지킬 의무. 이는 자연법과 신법(神法) 및 교회법상 인정되는 의무이다. 자연법상 개인이 고백한 죄는 그 자체 비밀에 붙여둘 성질의 것이요, 남의 명예를 존중해야 하며, 특히 고해신부와 고해자 사이는 비밀을 지킬 묵시의 계약이 맺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법상으로 비밀보장 의무는 고해성사를 세운 그리스도가 명하는 바이다. 비밀이 침해되면 고해성사를 세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법은 “고해비밀은 침해될 수 없다”(제983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해비밀로써 보호하는 이익은 고해자의 명예와 고해성사의 성성(聖性)이다. 교회사에서 고해비밀이 논의된 것은 4세기 말엽 몇몇 저술가들에 의해서였고, 6세기 아르메니아 주교회의에서 이것이 언급되고 두지(Douzy) 공회의(874년)에서 이를 규정하였으나 일정지역에 국한된 것이었다. 고해비밀을 일반적인 교회법으로 처음 규정한 것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였다.

고해비밀의 의무를 지는 자는 고해신부와 고해자의 통역자, 기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의 고백내용을 알게된 모든 사람이다(교회법 제938조). 고해비밀에 포함되는 것은 성사적으로 고백한 모든 죄들을 사죄(死罪)나 경죄(輕罪)를 묻지 않으며, 성사적 고백과 관련되는 모든 것, 예컨대 훈계한 말이나 보속의 내용뿐 아니라 고백을 들어 비로소 알게 된 고해자의 결함, 즉 그가 사생아(私生兒)라는 사실 따위이다. 고해비밀은 직접누설이나 간접누설의 방식으로 누설될 수 있는데, 양자 모두 금지된다. 전자는 고백으로 알게된 사람을 고해자의 이름을 밝히며 누설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고백으로 알게 된 지식을 이용하여(교회법 제984조) 말이나 행동을 보임으로써 타인이 고해자의 비밀을 추측하게 될 때이다. 간접누설에는 특정인의 덕망을 칭찬하는 자리에서 그의 고백을 들은 신부가 불쾌한 듯 침묵하는 태도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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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편 [한] 苦鞭

고행(苦行) 도구의 하나. 고행자(苦行者)나 수도자들이 모든 악(惡)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고 극기하며 덕(德)에 정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때리는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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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신비 [한] 苦痛~神秘 [라] mysterium doloris [영] sorrowful mysteries [관련] 로사리오 기도 영광

로사리오 기도의 세 가지 신비 중 두 번째 신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내용으로, 예수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 예수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 예수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 예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 예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심 등의 5단으로 이루어진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친다. (⇒) 환희의 신비, 영광의 신비, 로사리오 기도

[참고 : 현재 개정된 고통의 신비 5단은 다음과 같다]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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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한] 苦痛 [라] dolor [영] suffering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고통에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있으며 후자는 다시 걱정이나 두려움등과 같은 감정적인 것과 실의에 빠졌을 때와 같은 의지적인 것, 인생의 궁극문제와 관련하여 느끼는 영적(靈的)인 고통 등이 있다. 인간이 왜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그 해답을 찾으려고 애써 왔다.

구약성서는 고통을 죄의 결과로 보며 그 궁극적인 원인은 원죄에 있다고 한다. 고통은 개인이나(출애 21:12) 국가가(신명 8:28) 저지른 죄에 대하여 하느님이 내리시는 징벌이다. 인류의 연대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자신의 죄 뿐 아니라 타인의 죄로 인해서도 고통을 당한다(여호 7:10-15). 고통은 치유의 목적도 아울러 가진다. 하느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의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레위 26:40-45).

고통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유배기 이후 새로운 계시로 인하여 발전되었다. 에제키엘은 말하기를 한 인간은 조상이나 국가의 탓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 때문에 일생을 통하여 상이나 벌을 받는다고 하였는 데 이는 잠언과 시편과 집회서에서 되풀이 되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의로운 자가 고통을 당하고 불의한 자가 현세적인 행복을 누리는 현실과 부합되지 않았다. 욥서와 시편의 일부는 의인의 고통을 하느님의 섭리와 조화시키려고도 했는데 이 문제는 후세에서 받게 되는 영원한 상과 벌에 대한 계시에 의하여 해결을 보았다(지혜 1-5장, 다니 12:1-3). 한편 고통에는 인간의 덕행과 하느님께 대한 성실성을 시험하는 측면도 있으며(집회 2:4, 지혜 3:5) 타인의 죄를 대신 보속하기 위하여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이사 42:1-4, 49:1-7).

신약성서에서 고통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분명해진다. 그리스도는 고통을 위한 고통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그는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괴로웠고(요한 12:27) 고통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도하며(루가 22:42)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고통당하였다(마태 27:46). 그렇지만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였고(요한 14:31), 고통이 인류의 구원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마르 8:31-33). 초기 케뤼그마와(사도 2:23-24, 3:13-14) 바울로와(로마 5:9,1고린 15:3) 베드로는(1베드 2:21-25) 이 같은 취지를 가르친다.

그리스도 교인은 스승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부정하며 기꺼이 고통당하기를 배워야 한다. 성세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은 죄에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그 완전한 모습은 종말에 나타난다. 더구나 성세로 새 생명을 받은 그리스도 교인에게는 아직도 악에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신랑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 구원의 완전한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그리스도교인은 “신랑을 빼앗겨 버리고”(마태 9:15) 단식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처럼 단식과 고통을 당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의 남은 것을 채움으로써”(골로 1:24) 그리스도 교인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가까워지도록 돕는다.

그리스도교적 전통은 자발적인 고통의 감수와 고신극기(苦身克己)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방하는 수단의 하나로 여겨왔다. 그리스도 교인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현존하시는 모습을 시간과 공간안에 볼 수 있게 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기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었다. 그리스도 교인은 주님안에 이미 형제가 되었거나 미래에 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 사랑에 가득찬 고통을 자발적으로 당하기까지 하는 것이다(히브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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