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경 [한] 李獻慶

이헌경(1719~1791).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몽서(夢瑞), 호는 간옹(艮翁). 1743년 진사에서부터 1784년 대사간(大司諫)이 되기까지 관직을 두루 거쳐 1790년 한성부 판윤(判尹)이 되어 관계에서 은퇴하였다. 척사론자(斥邪論者)인 안정복(安鼎福)과 동시대 사람인 이헌경은 역시 ≪천학문답≫을 지어 천주학을 비판하였는데, 특히 그는 유교의 상제가 천주교의 인격적인 천주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안정복과는 달리 주자학적인 입장에서 서학을 비판하고 배척한 것은 아니다. 저서로서 ≪간옹집≫(艮翁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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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신자사목부 [한] 離鄕信者司牧部 [영] Migrants Pastoral [관련] 이주사목위원회

1960년대 이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집중하는 인구가 급증하여 이향자에 대한 새로운 사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65년 1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틀리에(Olivier Tellier, 太) 신부는 이러한 사실에 관심을 갖고 이들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통하여 자료를 수집한 다음 이를 각 본당에 발송하여 이향자사목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1971년 주교회의 가을총회는 이향신자에 대한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하여 심의한 후 1972년 봄 총회에서 이향신자사목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1981년 주교회의 가을총회는 이향신자사목부와 해외교포사목부의 통합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합, 이주사목위원회로 개편했다. 이향신자 사목부는 이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교적(無敎籍) 신자를 파악하여 교적을 회복시켜 냉담(冷淡)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향신자명단 접수, 전입본당 및 해외본당 확인, 이향신자 카드작성, 이향신자에 대한 조사서 작성. 이들 자료를 각 해당 본당에 발송하는 일을 하고 있다. (⇒) 이주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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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로 [한] 李恒老

이항로(1792~1868).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 척사론자. 초명은 광로(光老),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경기도 양근(楊根)에서 이회장(李晦章)의 아들로 태어났다. 3세 때 천자문을, 6세 때 십팔사략(十八史略)을, 12세 때 상서(尙書)를 각각 떼고 17세 때인 1808년(순조 8년) 한성시(漢城試)에 합격했으나 과거(科擧)에 부정이 있음을 알고는 이후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1840년(헌종 6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휘경원 참봉(徽慶園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퇴했고, 1862년(철종 13년) 이하전(李夏銓)의 옥사 때 김순성(金順性)의 무고로 체포되었다가 무죄임이 밝혀져 석방되었다. 1864년 고종이 즉위하자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가 되고 이어 전라도 도사(都事), 지평(持平), 장령(掌令) 등을 역임한 후 1866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어 병인박해 때에는 휘하의 문인(門人)들과 강력한 척사론을, 병인양요 때에는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였다. 그 후 공조참판에 승진, 경연관(經筵官)으로서 대원군의 경복궁중건과 과중한 조세정책에 반대하여 이로 인해 사망할 때까지 대원군의 배척을 받게 되었다. 이항로의 학설은 주리론(主理論)에 입각한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했고, 또 직언자(直言者)로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을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휘하에는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저서로는 ≪화서집≫(華西集), ≪화동합편강목≫(華東合編綱目), ≪벽계아언≫(蘗溪雅言), ≪주자대전집차의집보≫(朱子大全集箚疑輯補), ≪주역석의≫(周易釋義), ≪문인어록≫(門人語錄), ≪벽사록변≫(蘗邪錄辨) 등이 있다. 저서 중 ≪벽사록변≫에는 그의 척사론이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학문적 근거보다는 고루한 존왕양이의 대의명분 위주로 척사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편협하고 비합리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사후 내부대신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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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합규 [한] 李鴿逵

이합규(?~1801).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노비(奴婢) 출신으로 모친에게 문교(聞敎)했고 황사영(黃嗣永)이 주도하던 명도회(明道會)에 가입, 홍필주(洪弼周)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축일을 지내고, 매월 7일 김이우(金履禹)의 집에서 오현달(吳玄達)을 비롯한 몇몇 교우와 함께 교리를 연구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체포되어 이해 5월 14일(음 4월 2일) 정철상(丁哲祥), 최필제(崔必悌)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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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권 [한] 李太權

이태권(1781~1839).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 1791년 포졸에게 잡혀 수감되었다가 배교로 석방되었다. 이 때 아버지 이무명은 동생 이여삼과 함께 전라도 금산(錦山)으로 피신하였으나, 금산에서 1801년초 잡혀 홍주로 이송되었다. 이 때 이태원도 다시 체포되어 그들은 공주감영으로 다시 이송되어 아버지는 전라도로 유배되고, 이태권과 숙부 이여삼은 석방되었다. 1810년 전라도로 유배된 아버지는 1804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했고, 이태권은 공주로 갔으나 그 곳에서 다시 체포되어 신문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렇듯 그는 심약하여 배교로 석방되기는 하였으나 그 뒤로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더욱 열심히 신앙을 지켰다. 1827년 그는 세 번째로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 투옥되었는데, 이번에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리하여 10여년에 걸친 옥중생활을 이겨 나가 1839년 5월 29일 58세로 평소에 바라던 참수치명으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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