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석 [한] 李順石

이순석(1905~1986). 공예가. 세례명은 바오로, 호는 하라(賀羅). 충남 아산(牙山)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 남대문 상업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에 건너가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동경 미술학교에 입학, 도안(圖案)을 전공하고 1931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 한국 근대 그래픽 디자인의 개척자로서 활약하였으나, 일제(日帝)의 식민지 정책이던 조선미술전람회(鮮展) 공예부 참가는 일절 거부하였다. 반면, 그는 가톨릭 집안의 미술학도로서 1923년에 서울 중림동 성당을 위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두 상본화(像本畵)를 반신상 유화로 그려 성당 안 양 벽에 걸게 했었으나, 6.25전쟁 중에 파괴되어 없어졌다. 8.15광복 후에는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로 지내고, 1969년에 정년퇴임하고는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다. 1954년에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개최된 종합적인 첫 성미술전(聖美術展)은 장발(張勃)을 중심으로 하여 그가 조직하였고, 그 공예 부문에 <십자가의 촛대>를 출품했으며, 1970년에 서울 가톨릭미술가협회가 창립되자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어 다음해부터의 회원작품전에 빠짐없이 출품하였다. 순수 작품활동으로는 1947년 이후 1978년까지 국내외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전(國展)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그밖에 상공미술전(商工美術展)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주로 돌공예에 열중하였다. 1961년에 유럽의 현대 공예를 연구시찰한 뒤 제1회 세계공예 회의(1964년, 뉴욕)와 제2회 회의(1969년, 인도)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69년에는 또 독일 시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국제공예전에 대리석 작품 5점을 출품, 우수상에 뽑혔다. 그러한 여러 공로로 서울시 문화상(1955년), 대한민국문화훈장 대통령상(1962년), 한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1969년)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성미술 작품으로는 <순교자>(1971), <성모승천>(1973) 등이 있다.

[참고 : 이순석은 1986년 10월 7일 82세로 선종하여,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산북리 청량리 본당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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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 [한] 李睟光

이수광(1563~1628). 조선조 중엽(中葉)의 정치가이며, 유학자, 시인(詩人)으로 실학운동의 개척자. 1563년(明宗 18년) 2월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태어나 자(字)를 윤경(潤卿), 호를 지봉(芝峰)이라고 하였다. 조선 건국의 주동자인 태종(太宗)의 7대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겨 읽고 16세 때에 이미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했고, 22세 때에는 별시대과(別試大科)에 합격함으로써, 관계에서 출세의 길을 달리게 되었다. 그는 선조(宣祖)와 광해군(光海君), 인조(仁祖)의 3대에 걸쳐 이조(吏曹), 병조(兵曹), 공조(工曹) 등의 판서를 위시하여 홍문관(弘文館) 대제학(大提學), 대사헌(大司憲)과 여러 고을의 부사(府使)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정치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했고,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 등 전란(戰亂)으로 황폐해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또한 재위기간 중 3차에 걸쳐 북경에 사신으로 왕래하는 동안, 그곳에서 접촉하게 된 서양학술사상에 관한 지식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써 실학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시문(詩文)에 능통했던 그는 연행사(燕行使)로 중국 북경에 다녀올 때마다 견문을 넓힘과 아울러 이를 시문으로 적어두고, 북경에서 얻어온 책들을 탐독하여 그 개요를 적어 두었었다. 이렇게 해서 60평생 동안 적어 두고 저술한 책은 ≪지봉유설≫(芝峰類說)을 비롯하여 모두 78권에 이른다.

그의 이와 같은 저술은 그의 생존시부터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지봉유설≫은 그 속에서 서양의 여러 나라와 종교를 소개함으로써, 주자학에만 사로잡혀 있던 당시의 국민들에게 그들의 우주관 내지는 인생관을 일신케 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수광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의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와 ≪교우론≫(交友論) 등 천주교 서적들을 소개하면서 약간의 비평까지도 가해 천주교를 우리나라에 소개하였는데, 이런 것이 인연이 되어서인지 그의 후손으로 8대손인 이윤하(李潤夏), 그리고 그의 아들 이경도(李景陶), 딸 루갈다 등은 모두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柳洪烈, 李睟光의 生涯와 그 後孫들의 天主敎信奉, 韓國天主敎會史論文選集, 第1輯,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 崔奭佑,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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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지 [한] 李~

이성지(1778~1835). 순교자. 세례명 세례자 요한. ≪일성록≫(日省錄)에는 이름이 유진(儒震)으로 나온다. 충청도 덕산 높은뫼(현 지명은 忠南 禮山郡 古德面 夢谷里)의 양반 가정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유(辛酉)박해 후 동생들과 함께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전라도 고산(高山)으로 이사하였다. 그러던 중 1827년 정해(丁亥)박해가 일어나자 온 가족 13명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감영(全州監營)으로 압송되었고, 그곳에서 숱한 형벌과 고문을 이겨내고 9년간의 옥살이 끝에 1835년 4월 11일(음)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그의 동생들 중 이시임(李時壬)은 1816년 대구에서, 막내 이성삼은 1827년 전주에서 각각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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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삼 [한] 李~

이성삼(1795~1827). 순교자. 세례명 요한. ≪일성록≫(日省錄)에는 이름이 유정(儒定)으로 나온다. 충청도 덕산(德山) 높은뫼(현 지명은 忠南 禮山郡 古德面 夢谷里)의 양반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입교하여 두 형과 누이 이시임(李時壬)과 함께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27년 정해(丁亥)박해가 일어났던 당시 전라도 고산(高山)에 살고 있었는데 이 해 3월(음) 큰 형 이성지를 비롯하여 집안 식구 13명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감영(全州監營)으로 압송되었고, 그 곳에서 혹형과 고문을 받아 9월 14일(음)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함께 체포된 큰 형 이성지도 9년간의 옥살이 끝에 1835년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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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례 [한] 李聖禮

이성례(1800~1840). 순교자. 성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의 아내,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 세례명은 마리아. ≪일성록≫(日省錄)에는 성례(性禮)로 표기되어 있다.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출생, 18세 때 최경환과 결혼하였고 서울로 이주하였으나 외교인들의 괴롭힘으로 강원도 금성, 경기도 부평 등지로 이주하였다가 경기도 과천(果川) 수리산에 정착, 남편을 도와 교우촌을 이루었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7월 31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포청에서 300대 이상의 곤장을 맞고 형조에서도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고수, 1840년 1월 31일(음 1839년 12월 27일) 당고개[唐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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