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한] 異邦人 [라] gentes [영] gentiles

유태인의 세계관에는 하느님이 세계 여러 민족 중에서 유태인을 특별히 선택하여 선민으로 세웠다는 자부심이 짙게 배어있다. 이러한 선민사상에 입각하여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인은 할례를 받지 않은 비유태인을 천시하며, 그들은 하느님이 내리신 특권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방인이란 유태인 이외의 세계 여러 민족을 가리킨다(사도 49:6, 로마 2:14). 이러한 개념은 바빌론 유배기 이후의 묵시문학과 외경, 후기 유태교문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배기에 들어간 유태인에게는 배타적인 사상의 경향이 농후해지고 유태인 공동체의 특권의식을 강조하였다. 이방인들과의 교제나 식사를 엄격히 금했다. 이러한 편견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남으로써 시정될 수 있었다. 복음은 유태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모두 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과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음을 선포하였다. 여기서 유태교는 민족종교에서 그리스도교라는 세계종교로 전환했음을 뚜렷하게 나타내 준다. 실제로 바울로는 이러한 복음을 가지고 이방인에게 전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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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르바라 [한] 李∼

이바르바라(1825∼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성녀 이정희(李貞喜) · 이영희(李英喜)의 조카. 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 청파동에서 자라났고 어려서 부모를 여윈 후로는 두 이모 이영희 · 이정희에게 의지하고 살았다.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이해 4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여러 차례의 신문을 받은 후 형조로 이송되었고 형조에서 어린 것이 배교하지 않는다고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배교하지 않자 포청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포청에서 전보다 훨씬 잔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꿋꿋이 참아 내며 함께 옥에 갇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던 중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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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식 [한] 李敏植

이민식(1829∼1921). 1846년 병오(丙午)박해 때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시신을 운반한 사람. 세례명 빈첸시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목격하고 40여일동안 김 신부의 시신을 거두려고 노력한 끝에 10월 26일 밤 포졸들의 감시를 뚫고 김 신부의 시신을 거두어 미리내에 안장했고, 그 뒤 1901년 시복 수속 관계로 김 신부의 유해를 발굴하게 되자 유일한 증인으로 발굴에 참여하였다. 평생을 자신이 거두어 안장한 김대건 신부의 묘소를 돌보다가 1921년 12월 9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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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희 [한] 李文熙

이문희(1935∼ ). 대구(大邱) 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 세례명 바오로. 경북 대구에서 출생. 1954년 대구 경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에 진학, 1959년 동(同)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사제의 뜻을 품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1962년 리용대학, 1966년 파리 가톨릭대학을 각각 졸업했고 파리 가톨릭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5년 12월 사제서품을 받았다. 1966년 7월 프랑스에서 귀국, 잠시 대구 동촌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다가 이해 12월 청주(淸州) 교구로 파견되어 청주 내덕동본당 보좌신부로 1년간 사목했고 1967년말 대구 대교구로 복귀한 후 교구 가톨릭액숀 지도신부를 지냈으며 1969년 종군신부로 공군에 입대, 국방부 군종실에서 복무하였다. 1972년 대위로 전역하고 대구 대교구청에 근무하던 중 이해 10월 7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11월 30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이어 총대리로 임명되었다.

그 뒤 대구대교구의 총대리로서 교구의 행정을 총괄하는 한편 1979년 교구 전교 추진 5개년 계획을 수립 주도했고, 1983년 200주년 기념 대구 대교구위원회를 결성하여 부총재로 200주년에 대한 대구 대교구의 독자사업을 벌였으며 그 밖에도 대구 대교구의 여러 심신운동을 주도하였다. 현재 대구 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와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 성직주교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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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우 [한] 李文祐

이문우(1809∼1840).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일명 경천. 세례명 요한.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 양친을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독신생활을 원했으나 양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순종으로 양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몇 년 후 아내와 어린 두 자녀가 사망하자 주위의 재혼 권유를 뿌리치고 독신으로 생활하였다. 그 후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는 한편 주교를 보좌하며 지방을 순회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된 교우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사방에서 희사를 모으고 주교에게 박해상황을 보고하며 회장의 직무를 다하였다. 그러나 11월 11일 자신도 체포되었는데 이 때 “주님께서 특은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당황해 하는 포졸을 재촉해서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후 이듬해 2월 1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堂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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