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렬 [한] 李光烈

이광렬(1795~1839).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요한. 일명 경삼. 성인 이광헌(李光獻)의 동생. 명문양반인 광주이씨(廣州李氏) 가문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 때 형 이광헌 일가와 함께 입교했고 그 후 교회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 · 유진길(劉進吉) · 조신철(趙信喆) 등을 도와 두 차례나 북경(北京)을 왕래하며 조선 교회의 상황을 북경 교회에 알리고 성직자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북경에서 성세성사를 받고 귀국해서는 육식을 금하고 인내와 극기의 동정(童貞)생활을 결심, 평생을 혼자 살며 수계(守戒)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4월 7일 형의 일가, 김장금(金長金)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형과 함께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이겨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이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위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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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 [한] 李啓先

이계선(1918~1979). 신부. 세례명 레오. 서울에서 출생.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11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서품 후 인천본당 보좌신부, 1946년 명동본당 보좌신부겸 청년연합회 지도신부, 1948년 이천본당 주임신부, 계성 여자중 · 고등학교장 등을 역임하고 1954년 로마에 유학했으며 그 뒤 공부를 마치고 파리로 와 사망할 때까지 소르본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9년 5월 14일 심장병으로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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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이 [한] 李瓊伊

이경이(1813~1840).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아가다. 시골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났다. 혼기에 이르러 어떤 내시에게 속아 결혼했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고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에게 청하여 그 결혼이 무효임을 인정받았다. 그 뒤 부친을 여의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모친을 외삼촌에게 맡기고 상경, 한영이(韓榮伊) · 권진이(權珍伊) 모녀의 집에 기거하며 두 모녀와 함께 열심히 수계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한 배교자의 밀고로 한영이 ·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평소 이경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을 탈출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숨어 있던 교우의 집에서 다시 체포되어 1840년 1월 31일 당고개[堂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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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언 [한] 李景彦

이경언(1790∼1827). 순교자. 세례명 바오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교육을 받아 참된 신앙으로 일생을 살았다. 일찍이 아버지[李潤夏]를 여읜 데다가, 형 이경도(李景陶)와 누이 이순이(李順伊)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므로, 늙은 어머니와 홀로 된 형수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갔으나 생계를 지탱할 수 없어 1815년에 어머니와 형수는 연풍(延豊)으로 낙향하고, 그는 성서를 필사하고 성화를 그려서 교우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이런 가난 속에서도 북경으로 가는 밀사(密使)들을 위해 여비를 마련하는 일에 가장 많은 힘을 썼다. 그리고 교우들을 가르치고 외교인들을 귀화시키는 일에도 정성을 다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827년 전라도에 박해가 일어나자 그가 필사한 교리책과 상본이 고발되어 전라감영(全羅監營)에서 파견한 포졸들에 의해 1827년 4월 21일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4월 28일 전라감영으로 압송된 그는 무수한 고문을 당한 끝에 평소에 그토록 원했던 참수치명을 못한 한을 남기고 6월 27일(음 윤 5월 4일) 그곳에서 옥사하였다. 그가 옥중생활에서 틈틈이 쓴 옥중수기(獄中手記)가 1965년에 발견되어 교회사(敎會史)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며, 명도회(明道會)의 회원이었던 그는 명도회 회장과 회원들에게 보내는 옥중 편지도 남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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