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인 [한] 柳夢寅

유몽인(1559~1623). 조선의 문신. 자는 응문(應文), 호는 어우당(於宇堂) · 간재(艮齋) · 묵호자(默好子). 본관은 흥양(興陽). 사간(司諫)을 지낸 충관(忠寬)의 손자이며 당(-)의 아들. 1582년(宣祖 15년) 진사가 되었고, 1589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문학(文學)이 되었다. 성혼(成渾)의 문인(門人)으로 문장과 서예가 뛰어나 설화문학(說話文學)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으나 성품이 경박하여 스승에게 절연당한 후 이이첨(李爾瞻)을 비롯한 대북(大北)파의 인사들과 교유, 중북(中北)파의 영수가 되었다. 선조 말년에 황해도관찰사, 좌승지, 도승지를 역임하고 1612(光海君 4년)년에 예조참판을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고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고 이이첨과 대립하여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화를 면했으나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아들 약(-)과 함께 처형되었다. 정조 때 신원되어 의정(義貞)의 시호와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홍양의 운곡사(雲谷寺) 고산의 삼현영당(三賢影堂)에 제향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어우야담≫(於于野談), ≪어우집≫(於于集) 등이 있는데 ≪어우야담≫에서 그는 천주를 유교의 상제(上帝)와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천주교에는 많은 이치가 있긴 하나 천당지옥설은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라고 ≪천주실의≫의 내용을 비판하는 한편 ≪교우론≫(交友論)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논평은 성호 이익(李瀷)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당파적인 입장에서의 비평이 아니라 순수한 학구적인 비평이었고, 이것은 결국 지식층에게 서학에 대한 관심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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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론 [한] 唯名論 [영] nominalism [독] Nominalismus

보편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이라는 입장의 학설로 명목론이라고도 한다. 중세 스콜라학의 보편논쟁에서 실재론에 반대하여 보편은 ‘개개의 사물 뒤에 있는 이름’(nomina post res)에 불과하다고 주장. 유명론이 제창된 시기는 11-12세기의 전기와 14세기의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에는 베렝가르, 로스케리누스, 아벨라르두스가 대표적이며, 후기에 오캄(Occam)은 유명론을 완성시켰다. 오캄에 의하면 보편은 수많은 개개의 사물을 대표하는 명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 명사설(terminism)이라고도 불린다. 또 개체란 나 눌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보편에서 연역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보편이란 개념을 신과 동일시한 유명론은 감각적 자연을 신으로부터 독립시켜 파악하려 한다. 감각적 자연의 파악은 감각적 경험에 의해서 가능하고, 이 경험에 의한 지각을 오캄은 직각적 인식이라 불렀다. 그리고 직각적 인식은 모든 지식의 기초인데, 직각적 인식이 곧바로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이성에 의해 추상적 인식의 단계로 높아질 때 비로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오캄은 바로 이 추상적 인식을 보편이라 불렀다. 이러한 유명론은 신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 되어 이단으로 몰린다. 즉 신을 이성적 보편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고, 개별적 의지로 파악한 유명론은 당시 성직자들에 의하여 금지당하고 오캄주의의 신봉자들은 옥스퍼드와 파리로 들어가 근세초기의 영국 유물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각만을 인정하여 추상적 관념을 부정하는 버클리(George Berkeley)의 극단적 유명론과 같이 주관적 관념론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서의 유명론은 의미론 철학에서 그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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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주의 [한] 唯理主義 [영] rationalism

보편타당한 진리의 인식은 경험에서 독립된 이성적인 인식이라고 하는 주장. 따라서 선험적이고 자명한 기본원리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만을 확실한 인식이라 생각한다. 많은 유리주의자들은 수학을 확실한 인식의 모델로 삼았으며 생득관념(生得觀念)을 인정한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의 철학이 유리주의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리주의는 인간이 이성은 자기충족적이어서 특별한 신의 계시 없이도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알 필요가 있는 지식을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 계시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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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원] Europe

4세기초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이래 그리스도교의 전파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의 하나였다. 따라서 유럽 전역에도 그리스도 신앙이 급속히 전파되었다. 당시 교회는 선교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처음에는 주로 영성적 교리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그 뒤 교회가 세속 군주들의 원조를 얻게 되자 그리스도교의 전파에 강압적인 방법이 종종 도입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비그리스도 교도들을 박해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던 종교재판소의 존재를 둘 수 있다. 사실상 당시 유럽에서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화국’의 일원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 역사에 있어 때로는 교권과 세속권의 이해관계가 수렴되기도 하고 뒤얽히기도 하여 종종 신랄한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했으나 양측의 본질적인 이해(利害)는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유럽의 문화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여 왔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는 분포지역으로나 신자수로나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가 되고 있으며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지역과 프랑스, 독일 남부,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의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교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1982년 현재 유럽의 총가톨릭 신자수는 2억 7,345만 명이고, 교구수는 697개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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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서 [한] ∼書

제2경전에 속하는 유딧서는 토비트서나 에스텔서와 마찬가지로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서, 위태로운 사태에 직면해서 하느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가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1. 저자와 저작연대 : 유딧서의 원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본 작품을 저술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말엽 또는 그 이후에 어떤 희랍인 편역자가 이 원본을 기초로 해서 그에 충실하게 직역 또는 임의대로 의역하면서 희랍어로 된 번역본을 우리에게 넘겨 준 것으로 본다.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원본에 관한 한 희랍인들의 박해에 대항하여 싸운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시대에 완성되었음이 분명하다. 느부갓네살만을 온 누리의 유일한 신으로 받들어 섬길 것을 강요하는 장면(3:8, 6:2)은, 다니엘이 불경한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누스를 겨냥해서 던진 말씀들(다니 11:36-37)과 잘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마도 좀 더 오래된 옛 설화들을 인용하면서 종교와 율법과 성전에 관해 위협을 받고 있는 자기 동족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상숭배로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극도의 위험 속에서도 당신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원수들의 계획을 꺾어 버리신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선포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딧[‘유태인 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라는 명칭은 이제 외국 박해자들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불림을 받는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 교훈서로서의 유딧서 : 유딧서는 역사서도 역사소설도 아니다. 단지 사실일 수 있는 핵심적 요소가 구약성서 이곳저곳에 산재한 설화들로 부연된 채 자유롭게 다루어진 일종의 교훈서다.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 속의 여러 사건들, 예를 들어 다말의 속임수(창세 38장), 에훗에 의한 에글론 암살사건(판관 4-5장),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1사무 17장), 다윗과 아비가일(1사무 25장) 등의 사건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당대의 사실적인 사건 줄거리 위에 앞서 언급한 사화들을 인용, 부연하면서 자유롭게 본 작품을 저술해 냈다고 결론지을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은 결국 독자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3. 정경성(正經性) : 성서 정경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원후 95년경 얌니아(Jamnia, 지금의 Yabne)에 모인 유태교 랍비들은 유딧서를 정경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이유로 초대 교회 역시 몇몇 다른 성서들과 함께 유딧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고심했으나. 가톨릭 작가들은 물론 유딧서의 성신 감도성에 대해 신학적인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들까지도 이를 이미 폭넓게 인용하고 있었다. 결국 405년 성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은 유딧서와 그 밖의 모든 저서를 경전으로 인정했으며, 그 뒤 1442년 피렌체 공의회,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 그리고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재천명하였다.

비록 신약성서가 유딧서를 직접 인용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초대 교회 신자들이 본 유딧서를 널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몇 가지 표현양식들을 밝혀 볼 수는 있다. 유딧 1:11과 루가 20:11, 유딧 8:6과 루가 2:27, 유딧 13:18과 루가 1:42, 유딧 13:19과 마태 26:13.

4. 메시지 : 유딧서에서 유다 백성에게 구원을 전달해 준 중심신물은 평범한 유태인 여인이다. 이 여인은 모든 백성들이 실의에 잠겨 있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서, 베툴리아를 방어하고 있는 장군들을 우선 안심시킨 뒤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 그리고서 장군들의 도움 없이 묘안을 구상, 이를 실천에 옮겨 끝내 외적을 격퇴시킨다. 유딧서에서 우리는 구약성서 이곳저곳에 나타나는 여권신장주의를 훨씬 뛰어 넘는 남녀동권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유딧의 속임수는 엄격하게 말해서 덕행의 한 표지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급 윤리행위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약성서 설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에 관한 여러 실례들과 비교해 볼 때, 모든 것이 유딧에게 전적으로 유리하다. 그 한 예로 판관기 4장의 야엘과 비교해 보자. 유딧은 정당방위를 위한 전투에서 유다 국가와 종교를 위태롭게 하는 적장을 살해했으나, 야엘은 자신의 남편이 하소르의 왕이며 시스라의 주인인 야빈과 화해상태에 있었음에도, 또한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스라를 살해했기 때문이다(판관 4:17-22). 유딧은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로 유혹하려 애쓰지 않았으며, 오직 조심스럽고 품위있게 행동했을 뿐이다. 강직하고 순결한 이 여인에게 절호의 기회를 선사했던 사람은 바로 적장 그 자신이었으며, 하느님의 도우심이 보장되는 동시에 자신을 자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엄격한 기도생활 덕분에 유딧은 이와 같은 위태롭고도 중대한 순간을 잘 극복하여 유다 백성을 구출할 수 있었다.

유딧서에서 우리는 엄격한 율법정신을 찾아 볼 수 없다. 신앙심 깊은 과부 유딧의 단식행위는 슬픔과 회개에 대한 자발적인 표현이었을 뿐 율법을 준수하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으며, 더구나 유딧은 축제일에 그 단식행위를 임의로 중단하였다(8:6). 자식이 없었던 유딧은 신명기 25:5-10절이 명하는 수혼제(嫂婚制)[자식이 없었던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를 따르지 않았으며(16:22-25), 이방인 암몬 사람 아키오르를 율법이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신명 23:4, 민수 13:1-3) 유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14:10). 이와 같은 사실은 율법준수라는 이유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만을 보호하려는 정신을 뛰어 넘어, 모든 이가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다가 갈 수 있다는 좀 더 진취적인 사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구약성서의 영원한 수수께끼라고 볼 수 있는 고통은 이제 백성전체 또는 개개인의 범죄를 질책하는 응벌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백성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시련 또는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고된 학과목으로 받아들여진다(8:25-27). 과거와는 달리 유다 백성 중 우상숭배를 일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8:18-20), 이 점에 관한 한 유딧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포위된 유다 백성이 감수해야 할 시련은 하느님의 분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고귀한 덕행을 쌓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과정으로 새롭게 이해된다(8:21-24). 따라서 유다 백성은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이 시련을 당연히 받아들여 극복해야만 한다(8:25). (金建泰)

[참고문헌] La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 TOB, Cerf, Paris 1973 / W. Harrington, Record of the Promise(The Old Testament), The Priory Press, Chicago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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