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철 [한] 劉∼

유대철(1826~1839). 성인(聖人). 세례명 베드로. 성인 유진길(劉進吉)의 아들. 축일은 9월 20일.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의 모범을 따라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천주교에 대해 적대적인 모친과 누나에게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으나 그 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누나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교우들이 영웅적으로 순교하고 또 부친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순교를 결심하고 자수, 포청에서 14세의 어린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 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라고 대답했고 화가 난 형리가 다시 시뻘건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자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를 놀라게 하였다. 포청에서 총 14차의 형벌과 100여대의 매, 그리고 40도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항상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표정을 띠었다. 10월 31일 포청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위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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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한] ∼敎 [관련] 유태교

⇒ 유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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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영 [한] 柳達榮 [관련] 리우빌

리우빌(Liouville) 신부의 한국명. ⇒ 리우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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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편지 [라] Epistola Catholica Beati Judae Apostoli [영] Letter of Jude

1, 필자문제, 수신인, 집필연대 : 필자는 자신을 주님의 형제로 소개하고 있으나(마르 6:3, 마태 13:55 참조) 오늘날 신약학계에서는 유다서를 가명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주님의 형제들이 생존하고 있었을 때 이런 ‘비라’ 같은 회람서한이 씌어질 수 없었다는 점, 또한 ‘성도들에게 오직 한 번 맡겨진 믿음’(3절, 20절)이라든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언한 말씀’(17절) 같은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실 이런 표현들은 오래 전의 일에 언급하는 말들이다. 아마 후대의 어느 열심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이미 교회의 유산으로 고정화된 신앙을 옹호하려고 본서를 썼을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수신인은 필자가 아는 일부 지역교회, 심중팔구 팔레스티나 본토 밖의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살고 있었던 이방계 신도들로 짐작된다. 집필연대는 서기 1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가명작품에 대해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 둘째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항 참조).

2. 내용과 목적 : 먼저 신도들이 ‘맡겨진 믿음’을 위해 이단자들(방탕한 생활을 하던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해서 싸우도록 격려할 목적으로 본서를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3-4절). 이어서 구약의 예화를 들며(5-7절) 이단자들이 에녹의 예언대로 반드시 심판을 받고 멸망하리라고 확언한다(8-16절). 그리고 이런 이단자들의 출현을 미리 예고했던 사도들의 말씀을 상기시키며(17-19절)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간직하라고 권고한다(20-21절). 끝으로 이단자들의 죄는 미워하되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힘쓸 것을 당부하고(22-23절) 영광송으로 서간의 끝을 맺는다(24-25절). 필자는 구약성서의 고사와 유태교의 묵시문학(에녹서) 및 전설을 많이 원용하고 있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 2장에는 이 유다의 편지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金允柱)

[참고문헌] 장 엘마로 역주, 유다서, 200주년 신약성서 12, 분도출판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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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라] Judas(Thaddaeus)

성인, 축일 10월 28일. 12사도의 한 사람. 마태오 복음서 10장3절, 마르코 복음서 3장 18절, 루가 복음서 6장 16절, 사도행전 1장 13절에 그 이름이 나온다. 그는 소(小)야고보의 형제요, 따라서 ‘예수의 형제’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에게는 소서한(小書翰)이 남아 있다. 그는 선교활동을 팔레스티나에서 한 것 같다. 그곳에는 그의 손자가 로마황제 트라야누스 시대까지 거주하고 있었다. 서한에 의하면 유다는 정력적인 힘을 가진 인물이며 중후(重厚)한 심성의 논쟁가였던 것 같다. 18세기말부터 그는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서 특히 어려움을 당했을 때 대도(代禱)의 대상이 되어 왔다. 축일은 사도 시몬과 같은 날이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대개 이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표상(表象)은 사도의 상징인 책 또는 곤봉(棍棒)이다. 성서에서는 그를 이스카리오테의 유다와 엄밀히 구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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