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격적결합 [라] unio hypostatica [한] 位格的結合 [영] hypostatic union

성자의 한 위격 안에 천주성과 인성이 결합한 사실. 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인 동시에 인간이 되었다. “그는 하느님으로서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였으나, 인간으로서 시간 안에 그의 어머니한테서 태어났다. 그는 완전한 하느님이요, 영혼과 육신을 갖춘 완전한 인간이다. 하느님이요 인간이시나 그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그리스도이다. 이는 그의 천주성이 육신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성을 하느님이 취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인 것은 본성의 혼합 때문이 아니고 그가 하나의 위격을 갖기 때문이다”(아타나시오 신경).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이단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신학적인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가현론(假顯論), 아리아니즘(Arianism), 아폴리나리아니즘(Apollinarianism)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실재를 부정하였고 아리아니즘, 유리주의(唯理主義), 모데르니즘(Modernism)은 그의 천주성을 공격하였다. 네스토리아니즘(Nestorianism), 양자론(量子論), 단성론(單性論), 그리고 단의론(單意論)은 위격의 일치의 방식을 오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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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격 [한] 位格 [라] persona [영] person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곧 성부, 성자, 성신을 각각 가리키는 말. 이는 배우의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prosopon)에서 유래하였으며 배우의 역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각 개인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인간 개인을 지칭할 때는 특히 인격(人格)이라 불린다. 이 용어는 스콜라 철학에서, 특히 강생(降生)과 삼위일체의 교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에시오(Boethius)에 의하면 위격이란 이성적 본성의 개체적 실체(實體)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에서 실체란 우유(偶有)를 배제한 개념이며 ‘개체적 실체’란 유(類)나 종(種)으로서의 추상적 실체가 아니고 개체속에 구체적으로 존속하는 실체라는 뜻이다. 또 ‘이성적 본성’이란 위격이 지성적 존재에 한정하여 사용되는 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과 그리스도의 인성(人性)도 위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게 되는 부당한 결론에 도달하므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위의 정의에서 ‘개체적 실체’란 부분을 보완하여 “타 존재와 독립하여 그 자체로 존속하는 완전한 실체”라고 하였다. 이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영혼은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완전하지 못하고 인간 본성의 일부를 구성할 뿐이므로 즉 인격을 지닌다고 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의 신성과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으므로 또한 위격을 가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어 타당하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사랑은 이를 주고받는 인격체와의 관계 즉 위격성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교는 위격적 종교요 하느님은 위격적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삼위(三位)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말씀의 위격이시며, 그리스도 교인은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위격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위격적 친교를 누린다. 모든 신학분야는 궁극적으로 성삼위(聖三位)의 위격적 실재를 이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 교인은 성삼위의 신비를 지향하고 깊이 살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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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학교 [한] 月山學校

황해도 장연본당의 문화(文化)공소에서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1907∼1911년 사이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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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근 [한] 元亨根 [관련] 라리보

라리보(Larribeau) 주교의 한국명. ⇒ 라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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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본당 [한] 原州本堂

원주교구 소속 본당으로서 현재는 강원도 원주시 원동 85의 1소재 주교좌 원동본당(園洞本堂)이며, 본당주보는 ‘천주 성총의 모친’이다. 원주본당은 1896년 강원도의 세 번째 본당으로 풍수원본당에서 분할되어, 풍수원을 맡고 있던 르메르(Le Merre, 李) 신부가 원주군청 가까이에 거처할 집을 구입하고 그해 8월 17일 초대(1896∼1898년)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본당 창설 당시 신자수는 1,137명이고 관할공소는 20개였다. 1898년 7월 2대 리굴로(Rigoulot, 陸) 신부가 부임하였으나, 당시 군수가 천주교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원주읍내에는 신자가정이 넷밖에 없고 예비자도 대부분 공소에 있었으므로 곧 시골로 본당을 옮기려 하다가 1900년 3월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그해 5월 14일 3대 드브레(Devred, 兪)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당시 관할지역은 원주 · 원성 · 양평 · 제천 · 영월 · 단양 · 여주 등지였다. 1902년 신부댁 부근의 가옥 열두 채를 모두 매입하여(부지 2,000명) 성당 신축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1904년 4월에는 용소막본당(龍召幕本堂)을 분할하였다. 1906년 8월 시잘레(Chizallet, 池) 신부가 4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2년간 500여명에게 성사를 베풀면서 성당 신축을 위한 목재를 비축하였다. 1909년 1월 조제(Jaugey, 楊) 신부가 5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1910년 문맹퇴치를 위한 야학(夜學)을 설립, 운영하였고, 1913년에는 마침내 건평 70평의 고딕식 성당을 신축,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이 성당은 그 뒤 6.25동란으로 전소되고 말았음). 조제 신부가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어 원주본당은 용소막본당에서 관할하다가 1919년 조제 신부가 귀임, 다시 사목하게 되었다. 1923년에는 6대 폴리(Polly, 沈) 신부가 부임하여 엄격한 인품과 유창한 강론으로 신자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많은 교회 토지를 확보하였다. 1928년 7대 정규량(鄭圭良, 레오) 신부가 부임하여 10년간 사목하는 동안 원주본당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1931년 4년제 사립학교를 설립, 운영하였으나 1937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었고, 1934년에는 소화유치원을 설립,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부임하여 소화 유치원과 소화학원 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쳤다. 1937년말의 신자수는 1,193명이었는데, 1939년 춘천지목구가 설정됨에 따라 서울교구로부터 이에 편입되었다. 1954년에는 건평 120평 규모의 현재의 성당을 신축하여 춘천교구장 퀸란(Quinlan, 具)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1958년 원주시 학성동본당, 1960년 단구동본당이 분할되었고, 1965년에는 원주교구의 설정으로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로 소속이 바뀌었다. 1972년 원주시 봉산동 본당, 1976년에는 일산동 본당이 분할되었고 현재는 원주교구 주교좌 원동본당으로서 신자수는 3,434명이며, 관할공소는 3개이다. 7대 정규량 신부 이후 역대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8대(1938~1939년) 유영근(兪榮根, 요한) 신부, 9대(1939~1941년) 배난(Bannan, 安) 신부, 10대(1941~1942년) 김교명(金敎明, 베네딕토) 신부, 11대(1942~1945년)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 신부, 12대(1945~1948년) 디어리(Deery) 신부, 13대(1948~1949년) 레일리(Reilly, 羅) 신부, 14대(1949~1950년) 커머포드(Comerford, 孔) 신부, 15대(1960~1956년) 디어리(Deery) 신부, 16대(1956~1966년) 양대석(梁大錫, 알로이시오 곤자가) 신부, 17대(1966~1969년) 최창규(崔昌圭?, 발도로메오) 신부, 18대(1969~1969년)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 19대(1969~1971년) 이학근(李學根, 베네딕토) 신부, 20대(1971~1976년) 이영섭(李永燮, 프란치스코) 신부, 21대(1976~1979년) 최기식(崔基植, 베네딕토) 신부, 22대(1979~1983년) 김지석(金智錫, 야고보) 신부, 23대(1983~1984년 현재) 안승길(安承吉, 로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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