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원] Honduras

중앙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공화국.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니카라과 다음으로 가장 넓고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콜룸부스가 제4차 항해 때 북쪽 카리브해 연안에서 심해까지 이어지는 강한 해류에 휩쓸려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온두라스(스페인어로 ‘길다’의 뜻)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전한다. 면적 11만 2,088 km2, 인구 약 396만명(1982년 추계)이다. 16세기에 온두라스에 주교구가 설정되었고, 독립 당시에 코마야구아(Comayagua) 주교좌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성직자가 부족한 것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 1964년에는 사제가 200명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그들 중 반수 이상이 수도회 출신들이다. 가톨릭 신자 약 308만 5,000명(1982년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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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 [한] 玉皇上帝 [관련] 상제

도교(道敎)에서 하느님을 옥황상제라고 한다. ⇒ 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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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 [한] 玉浦

순교자 묘소 소재지. 동래 출신 윤경문(尹景文) · 봉문(鳳文 혹은 봉용, 베드로 혹은 요셉) 형제가 183년의 박해를 피해 웅천(熊川, 현재의 진해)에 머무르면서 전교활동을 하던 때 복음이 전해졌다. 윤봉문은 당시 붓장사를 하면서 붓대롱 속에 교리 문답서를 감추고 다니면서 전교하였다. 1888년 대구에 있던 로베르(Robert, 金) 신부가 방문, 예비자 15명에게 영세를 베풀었다. 로베르 신부가 떠난 지 1개월만에 박해가 일어나 모든 교우들이 고문을 당하였다. 윤봉문이 끝내 배교하기를 거부하자 통영판관은 대구감영에게 보고하였고, 감사는 진주에 보내 사형에 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윤봉문은 1888년 2월 22일(음) 진주감옥에서 교살(絞殺)되었다. 그 뒤 그의 유해는 진주에서 옥포로 이장되었다. 경남 거제군 장승포읍 옥포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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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희 [한] 玉千禧

玉千禧(?∼1801). 순교자, 세례명 요한. 평안도 선천(宣川) 출신. 그의 입교시기는 알 수 없으나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을 지켰고 교회일에는 늘 앞장서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심부름으로 여러 번 중국에 내왕하면서 맡은바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황사영(黃嗣永)이 박해를 받고 있는 조선 교회의 사정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기 위하여 쓴 백서(帛書)를 중국을 내왕한 경험이 많고 또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옥천희가 황심(黃沁)과 함께 가지고 가기로 약속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그가 8월경에 잡히고, 이어 황심과 황사영이 잡힘으로써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그는 이 일로해서 1801년 12월 10일(음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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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본당 [한] 沃川本堂

청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 아기의 성 데레사’. 소재지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忠北 沃川郡 沃川邑 三陽里). 옥천지방은 1903년 공주본당 주임 파스키에(P. Pasquier, 朱若瑟) 신부의 전교로 공소로서 개설된 후 교세가 신장됨에 따라 1906년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홍병철(洪秉喆, 루가)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1909년 20여평의 성당을 짓고, 본당 소유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소작케 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전교하였다. 1913년 홍병철 신부가 급서하자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1915년까지 사목한 후 전임되었고, 그 후 대전본당의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28년 9월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재출발하였다. 그러나 1942년 윤예원 신부가 전임되자 다시 대전 본당의 공소로 격하되었고 1948년 9월 김영근(金永根, 베드로) 신부가 부임,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48년 30여평의 성당이 신축되고, 1953년부터는 메리놀회 신부들이 주임으로 부임하기 시작, 이때부터 본당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되어 1955년 옥천읍내에서 가장 큰 건물인 100여평의 성당이 신축되고, 성모의원(나환자 진료소)과 양로원이 개설되었다. 1955년 보은성당, 1956년 영동본당, 1957년 황간본당 등을 분할 · 독립시키고, 1958년 청주교구로 소속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 주임은 서정혁(徐廷赫, 프란치스코) 신부이고, 예수성심 시녀회 수녀들이 분원을 설치하여 본당사목과 전교를 돕고 있다. 1984년 현재의 교세는 신자수 1,272명, 공소 4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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