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한 [한] 獄中書翰

순교자들이 옥(獄)에서 쓴 수기, 일기, 편지 등을 말한다. 신약성서 중 사도 바울로의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등은 가장 대표적인 옥중서한이다. 한국교회에서는 1784년 교회창설 이후 100여년간 계속된 박해로 인해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면서 자신들의 열절한 신앙과 옥중생활을 아름다운 필치로 남겨 왔는데 1791년 진산(珍山) 사건으로 체포되어 순교한 윤지충(尹持忠)의 수기 <죄인 윤지충일기>를 비롯하여 1801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李順伊)의 편지, 1827년 전주에서 옥사한 이경언(李景彦)의 수기, 1846년 순교한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회유문 <교우들 보아라> 등이 대표적 옥중서한들이며 이중 이순이의 편지는 신앙의 순결과 그리스도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이순이의 편지와 이경언의 수기는 <누갈다 초남이 일기 남매>라는 제목으로 엮어져 필사되어 현재에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이외에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종한(金宗漢)의 편지, 1827년 순교한 신태보(申太甫)의 편지, 1839년 순교한 이문우(李文祐)의 편지 등이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에 상세히 소개되어있다. 또한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도 체포된 후 모방(Maubant, 羅) 신부와 샤스탕(Chastan, 鄭) 신부에게 자헌(自獻)을 권하는 편지를 썼고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Ridel, 李福明) 주교도 자신의 체포에서 추방까지를 기록한 옥중수기를 남겼다.

이러한 옥중서한들은 자신의 체포 · 신문과정 · 옥중생활에 대한 기록, 친척 및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언형식의 권면과 위로 등이 주된 내용이며 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사목서한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박해 속에서도 교우들에게 전해져 널리 읽혀짐으로써 교우들의 신앙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上·中·下, 분도출판사, 1979∼1980 / 韓國敎會史硏究所 編, 순교자와 증거자들,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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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운동 [한] ~運動 [영] Oxford movement

1833년에서 1845년까지 옥스퍼드 성직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영국 교회의 신앙 부흥 및 교회 개혁 운동. 영국 교회는 종교 개혁 때부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의와 예배가 혼합되어 있었다. 2개의 분리된 요소들이 국가적인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융합되어 있었는데, 1688년 혁명으로 프로테스탄트당(黨)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신앙의 궁극적인 권위를 국가에 귀속시키면서 국교회의 자주성을 위협하였을 뿐 아니라 침례교도들의 운동이 발흥함에 따라 많은 신자들이 국교회에서 이탈하는 사태를 맞게 되었다. 이에 가톨릭의 전통, 특히 고교회파의 신학적인 전통으로 국교회의 자주성을 확립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최초의 움직임은 1833년 아일랜드에서 10명의 영국주교가 억압당하고 있을 때에 일어났다. 케블(J. Keble)이 교회의 세속화에 대하여 <국민의 배교>(National Apostasy, 1833. 7. 14)라는 설교를 통해 비판하고 나섰으며 이어 옥스퍼드 운동의 거장 뉴먼(J.H. Newman)이 운동의 이념과 신학적 기초를 41권의 소책자에 실어 배포하면서 운동은 급진전하였고 1839년에 절정에 달하였다. 운동의 발전과 함께 자유 진영의 반격도 거세졌다. 그러나 운동의 소멸은 뉴먼이 로마 가톨릭에 개종함과 함께 시작되었다. 뉴먼의 개종 후 급진적인 운동가들 다수도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운동은 막을 내렸다. 이 운동은 영국 교회를 자각시켰고 성직의 권위를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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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낙안 [한] 玉樂安 [관련] 에카르트

에카르트(A. Eckardt) 신부의 한국명. ⇒ 에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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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 데이 [라] Opus Dei

① ‘하느님의 사업’을 뜻하는 라틴어이며, 신자들이 자신의 생활환경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사도직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고 영적 생활을 열심히 영위하기 위하여 모인 단체[성가(聖架)사제회(Societas Sacerdotalis Sanctae Crucis)]를 일컫는 이름. 이 단체는 다양한 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성덕 높은 생활을 널리 보급시킴을 목적으로 한다. 입회자격은 모든 평신도와 성직자에게 있다. 평신도 회원은 입회 후에도 평신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직업과 세속활동에 자유를 누리며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도덕에 반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외에 특수한 제한을 받는 일도 없다. 수도원이나 공동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성직자 회원 또한 소속교구에 적을 둔 채 그 교구장의 사목행정 명령에 복종한다.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단체는 한 사람의 총장 휘하에 남녀 두 지회로 병립하고 있는데 전자는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드 발라게(Jose Maria Escriva de Balaguer) 몬시뇰에 의하여 마드리드에서 1928년 10월 2일에, 후자는 1930년 2월 14일에 창설되었다. 이는 1950년에 성청의 인가를 받았는데 수년 내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남태평양 등지에 전파되었다. 오푸스 데이회의 사도적 사업은 가톨릭대학교(스페인), 과학 · 기술 대학(케냐), 언어연구원(일본) 등 주로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일이다. 그 밖에 노동자 · 농민의 직업훈련센터, 진료소, 간호학교, 저개발국가 내 자선기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② 베네딕토회원이 성무일도(聖務日禱)를 가리키는 용어. 성무일도는 수도자인 회원 자신의 특수한 의무이며 하느님께 대하여 첫째가는 책임이라고 하여 ‘하느님의 사업’ 즉 ‘오푸스 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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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르트 [원] Oppert, Ernst Jacob

Oppert, Ernst Jacob(1832∼?). 유태계 출신의 독일 상인. 1866년 2월 영국인 모리슨(Morrison)과 함께 충청도 해미(海美), 강화(江華) 등지에서 통상을 요구했으나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실패하자 상해(上海)로 돌아가 조선과의 통상을 목적으로 대원군(大院君)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 묘를 발굴하여 그 발굴품을 미끼로 대원군과 협상할 것을 계획하였다. 1868년 조선 선교사이던 페롱(Feron, 權) 신부, 미국인 젠킨스(Jenkins) 등과 함께 다시 충청도 홍주(洪州)에 내항, 수로(水路)를 통해 남연군의 묘가 있는 덕산(德山)의 가동(伽洞)에 도착하여 남연군의 묘를 파헤쳤으나 퇴조(退潮)에 시간의 임박과 주민들의 반격으로 계획을 포기하고 도주하였다. 그 뒤 다시 인천의 영종진(永宗鎭)에 상륙하여 조선 수병(水兵)과 충돌을 일으키며 재차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고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서양인들에게 분노를 느낀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시켰고 천주교에 대해서도 더욱더 혹독한 박해를 가하였다. 오페르트의 저술로는 조선의 역사 · 지리 · 산물 · 상업 · 언어 · 풍속 · 법 · 정치 등을 소개한 기행문 ≪조선기행≫(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 Hamburg 1880)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조선에 대한 관찰과 판단에 많은 오류와 결함이 있음을 시인하면서 이 저술로 말미암아 금단(禁斷)의 나라인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기를 바란다고 두 차례에 걸친 조선 여행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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