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겜 [원] Okeghem, Jan van

Okeghem, Jan van(1430?∼1495). 네덜란드의 작곡가. 동부 플랑드르 출신. 제2 네덜란드학파의 지도자. 소년시절에 앵베르 대성당의 소년가수로 있었고, 1453년부터 프랑스 왕 샤를르 7세의 궁내성당에 근무, 1459년 투르의 생 마르탱 대수도원 경리담당으로 있었다. 1461년부터 루이 11세 궁내 성당 악장, 1465년에는 그 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15개의 미사곡, 7개의 경문가곡(經文歌曲) 등 50여곡을 남겼다. 대위법과 전칙곡(典則曲)에 능숙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미사곡이 경문가곡보다 예술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고, 대위법에서 음향적 균형도 잡히게 되었다. 그는 또한 후일 다성악(多聲樂)에서 절대적 중요성을 지닌 모방의 수법을 창시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오캄주의 [한] ~主義 [라] Ockhamismus [영] Ockhamism [관련] 유명론

오캄과 그의 제자들의 학풍을 오캄주의라고 하지만, 그들과 같이 전통적인 학문을 비판하고 파괴하는 경향을 오캄주의라고도 한다.

오캄(William Ockham, 1285∼1349)은 중세 말기의 영국 철학자로 잉글랜드지방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옥스퍼드대학과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하였다. 강의 중 옥스퍼드대학 총장 라테렐(J. Latterell)에 의하여 교황청에 제소되었고, 그는 아비뇽에 소환되어 그의 사상을 심사받았다. 교황은 그를 파문하고 추방령을 내렸다.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4세의 비호 아래 교황에게 대립하다가 1349년 뮌헨에서 죽었다. 논리학과 인식론에 뛰어난 오캄의 철학적 입장은 유명론(唯名論)이었다. 이에 따르면 직관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개체만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고, 언어나 개념은 개체의 기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또한 보편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 신의 인식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앙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오캄과 함께 그의 제자들은 명확하고 직접적인 인식에 기초한 논증 외에는 모두 진리가 아니라고 하여 13세기의 여러 철학과 신학체계를 비판하고, 파괴하였다. 특히 당시의 학계를 풍미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대항하여 이성의 권리를 수호하려 하였다. 이리하여 당시의 오캄주의자들은 자신들을 ‘현대인’(moderni)라고 불렀으며, 세상 사람들은 낡은 사고 방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상체계를 세우려 한 그들의 운동을 새 방법(via moderna)이라고 하였다. 오캄주의의 영향은 베이컨(R. Bacon) 이래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파리대학의 인문학부에서는 오캄주의에 대한 비난과 탄압 속에서도 널리 퍼졌다. 오캄과 그의 학설은 전통적인 스콜라학을 비판하는데 이용되었고, 그 뒤 그의 경험주의와 유명론은 철학과 신학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의 이론적인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오캄주의는 루터에게 영향을 미쳤고 근대의 경험주의사상이 생성하는데 가교(架橋) 역할을 수행하였다. (⇒) 유명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오자남 [원] Ozanam, Antoine Frederic

Ozanam, Antoine Frederic(1813∼1853). 프랑스의 문학사가, 철학자.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창립자의 한 사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별세하였다. 프랑스 리용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1833년 평신도의 빈민구제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창립에 주동역할을 하였다. 1836년 법학박사학위를 취득, 리용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1839년부터 1년간 리용대학 상법교수로 있었다. 한편, 1841년 파리대학 비교문학교수, 1844년 정교수로 승진하였다. 1848년 가톨릭 사회주의의 이상을 발표하기 위해 라코르데르(D. Lacordaire), 마레(Maret)와 함께 잡지 <신세대>(L’Ere Nouvelle)를 창간하였다. 이어서 프랑스 국내,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을 여행한 후 1852년 신병으로 파리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으로 전지요양했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귀국 도중 마르세이유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위대한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과 덕성(德性)이 가득 넘쳐 있었고, 그의 종교적 저술로써 한층 더 애호를 받았으며, 웅변가로서도 인심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인들에게 단테, 프란치스코의 시(時)를 소개하고 중세 초기의 문명에 대해서도 광명을 던졌다. 대표적 저술로는 ≪제5세기 문명사≫(Histoire de la civilisation au Ve siecle Etudes, germaniques, 2권, 1847∼1849)가 있고, 또한 전집 ≪Oeuvres completes≫(8권, 1855)이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1923년 그의 시복(諡福)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오월법 [한] 五月法 [영] May laws [관련] 문화투쟁

1973년 프로이센 국회(Preussen Landtag)가 제정한 일련의 법률. 이 법들은 교회를 로마와 단절시켜 교회를 국가의 지배아래 두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성직자의 양성과 임면, 교회의 재판권 관장 등의 권리를 국가가 가지고 수도회의 폐쇄(간호업무에 종사하는 수도회만은 제외), 성직자의 재산몰수 등을 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법들은 1887년까지 효력을 가졌었고, 그해 근본적인 수정을 거쳐, 1905년 폐지되었다. (⇒) 문화투쟁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오용진 [한] 吳龍鎭

오용진(1906∼1983). 교육자 · 수학자 · 이학(理學)박사. 세례명 요한, 호는 석봉(石峰). 경북 출신.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1926년 대구고보(大邱高普)[경북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1932년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대구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1935년 이효상 · 김주석 · 서정섭 · 김용화 등 젊은 평신도들과 ‘육우회’(六友會)를 조직, 전교와 문맹퇴치에 힘쓰는 한편, <천주교회보> 간행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등 대구교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그 뒤 경북중학교장을 거쳐 1948년 대구사범학교[경북대학교의 전신] 교수로 부임, 197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경북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1975년에서 1979년까지는 대구 대교구 사제양성후원회 회장직을 맡아 교구내의 사제 양성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교육과 교회 사업에 대한 공헌으로 1970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고 1974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평신도사도직 수훈포상을 수여받았다. 1983년 1월 15일 대구 대명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 경북 고령군 선산에 안장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